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Aug 23. 2024

12.  런던 킹스크로스역 플랫폼 9와 3/4

네벨영노스덴에핀-60대 부부 여행기


*2024.05.24.(금)     


  에든버러 웨이벌리역을 출발한 기차는 런던을 향해 남쪽으로 달렸다. 왼쪽 창으로 보이던 바다는 점점 거리를 벌리더니 어느 순간 시야에서 사라졌다. 기차는 간간히 역에 멈춰 사람들을 내려주고 새로운 사람들을 태운 후 다시 남쪽을 향해 달렸다.     

 


  기차가 뉴캐슬역을 막 지났을 때 똑같이 생긴 붉은 벽돌 주택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장면에서 왜 산업혁명 이후 영국의 공업도시를 중심으로 노동자 계층을 위해 지어졌던 연립주택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의 계급투쟁> 같은 영국을 배경으로  책들과 영국 복지정책의 그늘과 잔인한 노동시장을 그린 켄 로치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미안해요, 리키> 영국과 관련된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으로 물밀어 들었다.      


 

  에든버러를 출발한 기차는 4시간 40분 만에 런던 킹스크로스역에 도착했다. 3박 4일 내내 비가 내려 을씨년스러웠던 에든버러와는 달리 도착한 날의 런던은 따뜻했고 장막을 하나 걷어낸 듯한 밝음과 번다함이 느껴졌다. 킹스크로스역에 왔으니 9와 3/4 플랫폼을 놓칠 수는 없는 일. 해리포터가 호그와트행 기차를 탔던 곳이다.


    플랫폼이 다른 건물에 위치해 있어 가방을 끌고 열심히 찾아갔는데 호그와트행 플랫폼은 다시 개찰구를 통과해야 접근이 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개찰구 너머 플랫폼에는 북적여야 할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개찰구 옆에 서 있는 직원에게 물으니 등 뒤를 가리켰다. 돌아보니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한 곳을 향해 서 있었는데 바로 그곳에 해리포터가 기둥으로 밀어 넣었던 카트가 벽에 꽂혀 있었다. 해리포터 굿즈를 판매하고 있는 가게의 외벽이었다. 사람들은 줄을 서서 가게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런! 너무 순진한 기대를 품었었나? 기대가 아쉬움으로 바뀌는 순간.



   4박 5일간 런던에서 우리의 발이 되어줄 오이스터카드를 구입하고 40파운드를 충전했다.  숙소가 있는 얼스코트역까지는 지하철 피커딜리 라인을 이용하면 됐다. 피커딜리라니! 서울 한복판에는 개관한 지 70년 가까이 된 영화관 피카디리가 있지 않나. 여기서 온 이름이었구나. 익숙하고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런던에서는 지하철을 튜브(tube) 혹은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라고 불렀다. 우리가 처음 이용한 지하철은 둥근 튜브처럼 생긴 것으로 실내 폭이 좁아 여행 가방을 앞에 세우면 마주 앉은 사람무릎이 가방에 닿을 듯 가까웠다. 다양한 체형의 다양한 인종이 타고 있는 지하철 실내는 혼잡한 데다 입고 있는 니트 탓인지 덥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숙소는 얼스코트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었다. 빅토리아 양식의 아름다운 주택들이 있는 동네였다. 예약한 숙소 역시 빅토리아 양식으로 지어진 저택을 레지던스로 운영하고 있는 곳이었다. 체크인을 하고 인근 마트에서 저녁에 먹을 장부터 봤다. 전날 칼튼힐과 홀리루드 일대를 돌아다니며 비에 젖었던 게 문제였는지 살짝 근육통과 미열이 느껴졌지만 저녁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 숙소와 멀지 않은 켄싱턴궁과 하이드파크에 다녀오기로 했다.


  켄싱턴궁으로 가기 위해 동네를 가로질렀는데 현관 앞에 작은 정원을 가꾼 빅토리아풍의 집들은 하나같이 예쁘고 조용해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까지 평화롭고 행복할 것 같았다. 숙소를 알아볼 때 켄싱턴궁과 가까운 동네라서 치안이 좋은 부촌이라고 했었다.


켄싱턴궁과 켄싱턴가든

  동네를 빠져나와 대로를 건너 구글맵이 가리키는 빌딩옆 작은 입구로 들어서니 시야가 열리며 넓은 공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켄싱턴궁 앞에는 빅토리아여왕의 동상이 있고 그 앞으로는 백조들이 노니는 넓고 아름다운 연못이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숲이 지평선까지 닿은 듯한 켄싱턴 가든이 있었다. 탁 트인 전망과 초록의 기운이 가슴속 깊이까지 스며들어 기분 좋은 상쾌함이 느껴졌다. 


  켄싱턴가든을 지나면 헨리 8세의 전용 사냥터였던 하이드파크로 이어진다. 하이드파크는 1637년에 대중에 공개된 런던에서 가장 큰 공원이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해가 지는 런던의 긴 오후가 계속되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스테이크를 구워 맥주를 한 잔 했다. 빅시티 런던의 첫날이 천천히 저물어 가고 있었다.


하이드파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