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3편 조선 (2-1) #29
구려句驪와 진眞 (2/4)
이제 마지막으로 살펴볼 북쪽 변방 사람들[胡]은 진-번[眞-番]에서 보이는 진眞이라는 이름의 무리입니다. 번番 사람들이 따랐으며, 본래 있던 곳에서 함께 움직여 뒤에 고구려 동명-성왕이 성, 곽을 쌓았던 곳, 보다 뒤에 산-상-왕이 환-도-성에 도읍하기까지 머물던 곳에 훨씬 앞서 이르렀던 무리입니다.
이러한 진眞 사람들은 앞서 그리고 뒤에 과연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요? 자료들은 그들을 어떤 이름으로 적었을까요?
앞서 살펴본 바 있는 자료, 옥해가 인용한 일주서가 적고 있는 무리들, 성주에서의 모임에 있던 무리들 가운데 독록獨鹿에 대한 공조의 주석은 묘한 내용을 적고 있습니다. 독록 앞의 고이, 그리고 독록 뒤의 고죽부터 산융까지는 무리들의 이름에 대해 동북쪽의 동쪽 변방 사람들이다[東北夷]라고 적었는데, 독록에 대해서만은 서쪽 땅의 서쪽 변방 사람들이다[AR-2:②]라고 적었습니다.
AR-2 옥해 인용 일주서 주석: <① 독록獨鹿은 ② 서쪽 땅[西方]의 서쪽 변방 사람들[戎]이다.> <①獨鹿②西方之戎也>
이 주석은 서-진[西-晉]의 변방 사람들에 대해 적은 진서 이역열전 흉노편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니, 그 구절들은 선우의 국國에서 쓰는 호들[號][AS:①]을 적으며 그 가운데 좌-독록-왕[左-獨鹿-王][AS:⑫]과 우-독록-왕[右-獨鹿-王][AS:⑬]이 있다고 적었습니다. 곧 독록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독록을 떠나 흉노로 들어갔다는 이야기입니다.
AS 진서 사이열전 흉노편: ① 그(=선우單于의) 국國의(=국에서 쓰는) 호들[號]에는 ② 좌-현-왕[左-賢-王], ③ 우-현-왕[右-賢-王], ④ 좌-혁려-왕[左-奕蠡-王], ⑤ 우-혁려-왕[右-奕蠡-王], ⑥ 좌-어륙-왕[左-於陸-王], ⑦ 우-어륙-왕[右-於陸-王], ⑧ 좌-점상-왕[左-漸尙-王], ⑨ 우-점상-왕[右-漸尙-王], ⑩ 좌-삭방-왕[左-朔方-王], ⑪ 우-삭방-왕[右-朔方-王], ⑫ 좌-독록-왕[左-獨鹿-王], ⑬ 우-독록-왕[右-獨鹿-王], ⑭ 좌-현록-왕[左-顯祿-王], ⑮ 우-현록-왕[右-顯祿-王], ⑯ 좌-안락-왕[左-安樂-王], ⑰ 우-안락-왕[右-安樂-王] ● 무릇 ⑱ 16등等이 있으며, ⑲ 모두 ⑳ 선우의 피붙이[親]인 아들들[子], 아우들[弟]을 쓴다(=아들들, 아우들이 맡는다). ①其國號②有左賢王③右賢王④左奕蠡王⑤右奕蠡王⑥左於陸王⑦右於陸王⑧左漸尙王⑨右漸尙王⑩左朔方王⑪右朔方王⑫左獨鹿王⑬右獨鹿王⑭左顯祿王⑮右顯祿王⑯左安樂王⑰右安樂王●凡⑱十六等,⑲皆⑳用單于親子弟也
그런데, 독록 사람들이 떠나기에 앞서 있던 독록[涿/獨鹿]이라는 곳에 이어지는 또 다른 자료가 있습니다. 삼국유사 기이편은 최치원의 말을 인용하여 진-한[辰-韓][AT:①]은 연을 떠났던 연 사람들이며[AT:②-③] 그렇기에 탁涿이라는 물줄기의 이름을 써서 장소들을 일컬었다[AU:④-⑤]라고 적었습니다.
AT 삼국유사 기이편 인용 최치원: ① 진-한[辰-韓]은(=한韓의 진辰 사람들은) ● 본래 ② 연燕 사람들이었는데(=연 사람들 가운데) ③ 그곳[之]을 떠났던[避] 이들이었다. ● 그리하여 ④ 탁涿이라는 물줄기[水]의 이름을 가지고 ⑤ 머무르는 곳[居]의 읍들[邑], 리들[里]을 일컬어 ● 이르기를 ⑥ 사-탁[沙-涿], 점-탁[漸-涿] 등이라고 하였다. 崔致遠云①辰韓●本②燕人③避之者●故④取涿水之名⑤稱所居之邑里●云⑥沙涿漸涿等
진-한[辰-韓][AT:①]은 앞서 살핀 발-조선이라는 단어를 통해 보면 진辰을 따르는 한韓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삼국사기 신라본기 혁거세거서간 38년 2월 기사는 한-왕[韓-王]의 말을 인용하여 진辰을 한韓[AU-1:③]이라고 하고 한-왕 곧 한을 따르고 있다[屬][AU-1:④]고 적었으니, 진-한은 한을 따르는 진 사람들을 뜻합니다. 새로 이른 곳과 앞서 있던 곳에서 무리를 이어적는 방식이 달라진 것입니다.
AU-1 삼국사기 신라본기: (혁거세거서간 38년 봄 02월) ① 마-한[馬-韓]의 (한-)왕王이 ② 호-공을 꾸짖었으며, ● 말하기를 "③ 진(-한)[辰], 변(-한)[卞] 2(개) 한들[韓]은 ④ 나의(= 나를) 따르는[屬] 국들[國]이 되었다.("라고 하였다.) (赫居世居西干三十八年春二月)①馬韓王②讓瓠公●曰③辰卞二韓④爲我屬國
진-한 곧 한의 진 사람들이 탁涿이라는 물 줄기의 이름을 가지고 장소들을 일컬었다고 한 구절[AT:④-⑤]은 다른 자료와 함께 살펴야 합니다. 라羅 곧 신-라[新-羅] 사람들이 있는 곳의 말에서는 탁涿을 읽으며 소리내어 도道라고 하였다[AV:①-④]고 적은 삼국유사 기이편 주석이 그 자료입니다.
AV 삼국유사 기이편 주석: <① (신-)라羅 사람들[人]의 지역의 말[方言]에서 ● 읽기를[讀] ② 탁涿을 ③ 소리내어[音] ④ 도道라고 하였다. ⑥ 지금 ⑥ 어떤 기록이 ● 적기를 (사-탁[沙-涿]을) ⑦ 사-량[沙-梁]이라고 하였는데, ⑧ 양梁을 ● 또한 읽기를 ⑨ (소리내어) ⑩ 도道라고 하였다.> <①羅人方言●讀②涿③音④爲道⑤今⑥或●作⑦沙梁⑧梁●亦讀⑨⑩道>
이 주석은 신-라 사람들이 진 사람들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들이 물줄기의 이름 탁을 가지고 장소를 일컬었다[AT:④-⑤]고 하였으니, 진 사람들이 서로 이르기를 '어느 장소의 사람'이라고 하게 되면 그 장소에 따라 '도'라는 소리가 사람들 사이에 오고가게 되지요. 이 상황을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은 진-한 곧 진辰 사람들이 서로 모두 도徒라고 하였다[AW:⑧]고 적었습니다.
AW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 ① 그[其](=진-한 사람들의) 말[言], 이야기[語]는 ② 마-한[馬-韓](=마-한 사람들의 말, 이야기와)과 더불어 ③ 같지 않았다. ● (진-한 사람들의 말에서) 이름하기를 ④ 국國을 방邦이라고 하고, ⑤ 궁弓을 호弧라고 하고, ⑥ 적賊을 구寇라고 하고, ⑦ 돌리는 주酒를(=술을) 돌리는 상觴이라고 하였다. ● (진-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서로 부르기를 ⑧ 모두[皆 = 總]를 도徒라고 하였는데 ● (그리함에는) ⑨ 진秦 사람들과(=진 사람들의 이야기와) 비슷함이 있었으니, ● (비슷함이 있는 것은) ⑩ 연, 제가 물건들을 이름하는 것(=말) 만이 아니었다. ①其言語②不與馬韓③同●名④國爲邦⑤弓爲弧⑥賊爲寇⑦行酒爲行觴●相呼⑧皆爲徒●⑨有似秦人●⑩非但燕齊之名物也
그런데 '도'에 대해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편은 진秦 사람들과 - 진 사람들이 읽는 도徒의 소리와 비슷하다[AW:⑨]고 하면서도, 연 사람들이 읽는 涿의 소리와 비슷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진辰 사람들이 쓰는 涿의 소리는 연燕 사람들이 쓰는 소리와 비슷하게 들리지 않았던 것이니, 진 사람들은 본래 연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최치원이 말한 2개의 문장들 가운데 뒤의 것의 내용은 앞의 내용 때문이 아니며, 둘을 잇는 '그러므로[故]'는 잘못 생각하여 넣은 것입니다. 涿를 읽는 소리 '도' - '도'로 이어진 옛 소리는 연의 소리가 아니라 독록의 첫 소리 '독' - '독'으로 이어진 옛 소리에 가까우니, 진辰 사람들이 본래 있던 곳은 독록[涿/獨鹿]이라는 곳 가까이 독[涿/獨]이라는 물줄기가 있던 곳이었습니다.
진辰은 한韓에 머물며 이 사람들이 쓰던 무리 이름의 옛 소리를 한-왕이 그 소리로 읽는 글자로 적은 것입니다. 그리고 眞 또한 그 사람들이 현재의 압록-강 남쪽으로 옮겨오기에 앞서 잠시 머물던 조선 곧 뒤에 한-왕의 조상이 떠나온 곳에서 쓰던 무리 이름의 옛 소리를 그곳 사람들이 그 소리로 읽는 글자로 적은 것이니, 둘은 모두 한韓 사람들이 무리 이름의 옛 소리를 듣고 적은 것입니다.
곧 眞과 辰은 현재 '진'이라는 소리로 이어진 옛 소리를 가지고 있던 조선朝鮮 그리고 한韓의 글자를 가지고 무리 이름을 적은 것입니다. 그런데, 앞서 이러한 두 무리들이 본래 머물던 곳 또한 모두 독록에 가까웠다고 하였으니 무리 이름과 장소를 함께 고려하면 두 무리는 같은 무리입니다. 곧 진辰은 진眞을 달리 적은 것이며, 두 글자는 모두 본래 무리 이름의 옛 소리를 한韓 사람들이 그들이 그 소리를 적던 글자로 적은 것입니다.
이제 다음 글에서는 이 무리가 스스로 적은 이름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이름을 살펴 이 무리가 본래 있던 곳을 찾아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