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3편 조선 (2-1) #28

구려句驪와 진眞 (1/4)

by 잡동산이

이제, 앞서 이야기한 상곡-군과 대-군이 만나는 곳 어디로부터 맥과 북쪽 변방 사람들이 넘어와서는 다시 어디에 자리잡았는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자료는 앞서 안문-군과 대-군 그리고 그 군들을 따르는 현들에 대해 살펴보았던 한서 지리지와 한서 지리지 주석입니다.




앞서 대-군[代-郡]의 현들 가운데 대-현[代-縣]의 동쪽과 연의 서쪽에 있는 곳에서 대-군과 상곡-군이 나누어지는데, 그 사람들과 북쪽 변방 사람들[胡]이 머물던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한서 지리지는 상곡-군[上谷-郡[의 15개 현들 가운데 탁록涿鹿[P-6:⑮]과 반潘[P-6:⑦]이라는 이름 현들을 적었는데, 앞서 지도에 현들이 있던 곳을 표시하였습니다.


P-6 한서 지리지: ① 상곡-군[上谷-郡]은 ... ② 호戶는 36,008이고, ③ 구口는 117,762이고, ④ 현縣은 15다: ⑤ 조양(-현)[沮陽] ..., ⑥ 천상(-현)[泉上] ..., ⑦ 반(-현)[潘] ..., ⑧ 군도(-현)[軍都] ..., ⑨ 거용(-현)[居庸] ..., ⑩ 구무(-현)[雊瞀], ⑪ 이여(-현)[夷輿] ..., ⑫ 영(-현)[寧] ..., ⑬ 창평(-현)[昌平] ..., ⑭ 광령(-현)[廣寧] ..., ⑮ 탁록(-현)[涿鹿] ..., ⑯ 차거(-현)[且居] ..., ⑰ 여(-현)[茹] ..., ⑱ 여기(-현)[女祈] ..., ⑲ 하락(-현)[下落] ①上谷郡...②戶三萬六千八③口十一萬七千七百六十二④縣十五⑤沮陽...⑥泉上...⑦潘...⑧軍都...⑨居庸...⑩雊瞀⑪夷輿...⑫寧...⑬昌平...⑭廣寧...⑮涿鹿...⑯且居...⑰茹...⑱女祈...⑲下落


탁록이라는 이름에 대해 사기 오제본기는 훨씬 앞서 황제黃帝와 치우蚩尤가 록涿鹿의 들에서 싸는데[AQ-2:⑦-⑧] 황제가 치우를 잡아 죽였고[AQ-2:⑨] 그리하여 천-자[天-子]가 되었다[AQ-2:⑫]고 적었습니다. 이어 황제가 탁록의 언덕에 읍을 만들었다[AQ-2:⑮]고 적었습니다.


AQ-2 사기 오제본기: ① 치우蚩尤는 ② 어지러움을 만들고 ③ 제帝(=큰 우두머리)의 명령을 쓰지[用](=따르지) 않았다. ④ 이 때[是]에 ⑤ 황제黃帝가 ● 이어 ⑥ 군대들[師], 여러 후들[侯]을 뽑아 ⑦ 치우와 더불어 ⑧ 탁록涿鹿의 들[野]에서 싸웠으며, ● 이윽고 ⑨ 잡아 치우를 죽였다. ⑩ 여러 우두머리들이 ● 모두 ⑪ 헌원軒轅을 높이니 ● (헌원이) ⑫ 천자天子가 되어 ⑬ 신농-씨[神農-氏]를 이었다. ⑭ 이 사람(=헌원)을 황제라고 하였다. ... ● (황제가) ⑮ 탁록의 언덕[阿]에 읍을 만들었다[邑](=머물렀다). ①蚩尤②作亂③不用帝命④於是⑤黃帝●乃⑥徵師諸侯⑦與蚩尤⑧戰於涿鹿之野●遂⑨禽殺蚩尤⑩而諸侯●咸⑪尊軒轅●⑫爲天子⑬代神農氏⑭是爲黃帝...●⑮而邑于涿鹿之阿


사기색은은 사기 오제본기의 구절들 가운데 탁록이라는 단어에 주석하여 어떤 기록이 涿鹿을 濁鹿이라고 적었다[X-3:①-②]고 하였다고 적었습니다. 이어 곧 옛날과 지금의 글자가 달라진 것이다[X-3:③-④]라고 적었습니다.


X-3 사기색은: ① 어떤 기록[或]이 ● 적기를 (탁록涿鹿을) ② 탁록濁鹿이라고 하였으니 ● (탁의) ③ 옛날(의 글자)[古], 지금의 글자[今字]가 ④ 달라진 것이다. ● 생각하니 ⑤ (한서) 지리지地理志의 상곡(-군)[上谷]에 ⑥ 탁록-현[涿鹿-縣]이 있다. (涿鹿)①或●作②濁鹿●③古今字④異耳●按⑤地理志上谷⑥有涿鹿縣


곧 사기색은은 본래 땅 이름인 涿鹿을 떤 기록이 적기를 濁鹿라고 하였다고 하여, 글자 涿 지금 글자가 濁라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한 뒤에도 기록들이 땅 이름을 涿鹿이라고 적었으니, 바뀐 것은 글자가 아니라 소리입니다. 涿 옛 소리 달랐으나 뒤에 涿과 濁의 소리 았기에, 어떤 기록을 적은 사람이 소리가 달라짐을 분명히 드러내고자 涿을 濁으로 고쳐 적은 것입니다.


涿과 소리가 같은 濁의 소리 '탁'은 蜀의 소리 것인데, '탁'으로 이어진 蜀의 옛 소리는 현재 '촉'으로 이어졌지만 獨에서 보이듯 현재 '독'으로도 이어습니다. 곧 涿鹿의 옛 소리는 본래 록蜀鹿 또는 독록獨鹿 가운데 하나로 이어는데, 성주에서 모임에 있던 북쪽 변방 리들 가운데 독록獨鹿라는 이름이 보이니 涿鹿의 옛 소리는 독록으로 이어졌습니다.


의 탁록[涿/濁鹿]라는 소리로 이어지는 소리로 이름이어진 곳에는 보다 앞서 독록[涿/獨鹿]이라는 소리 이어진 옛 소리 이름하던 무리가 있었습니. 이러한 점은 모든 무리들을 살펴보기 위한 기준점입니다.




성주에서의 모임에서 독록獨鹿과 같은 곳에 리하여 그 앞 또는 뒤에 적힌 무리들 가운데 고이高夷가 있습니다. 러니 고이도 사람들과 함께 움직였던 북쪽 변방 사람들[胡] 가운데 한 무리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확인해봅시다.


먼저 해가 인용한 일주서가 성주에서의 모임에 있던 고이高夷라는 무리를 적은 구절에 달린 - 삼국지 연의로 잘 알려진 사마의의 아들 사마소가 세운 서-진[西-晉]의 오경-박사 공조孔晁의 - 주석은 고이가 고구려高句麗다[AR-1:③]라고 하였습니다. 서-진 때의 고구려는 동명-성왕이 부여를 떠나 MC-36에 세웠던 국의 이름입니다.


AR-1 옥해 인용 일주서 주석: <① 고이高夷는 ② 동북쪽의 동쪽 변방 사람들[夷]인 ③ 고구려高句麗다.> <①高夷②東北夷③高句麗>


서-진보다 앞 시기 고구려는 옛 현토-군이 있던 저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한서 지리지는 이 상황을 원봉 04년 열었던 현토-군이 고구려高句驪에 있다[P-7:④]라고 적었습니다. 한서 지리지 주석은 응소의 말을 인용하여 고구려가 옛 진-번[眞-番]이 있었던 곳에 있고[AP-4:①] 옛 진-번은 조선에 있던 북쪽 변방 사람들[胡]이었다[AP-4:②]고 적었습니다.


P-7 한서 지리지: ① 현토-군[玄菟-郡]은 - ② 무-제의 원봉 04년에 ③ 열었다. ● (원봉 04년에 열었던 현토-군은) ④ 고구려高句驪다(=고구려에 있다). ⑤ (왕)망莽이 ● 말하기를 ⑥ 하구려下句驪라고 하였다. ⑦ 유-주[幽-州]를 따랐다. - ⑧ 호戶가 45,006이고, ⑨ 구口가 221,845이고, ⑩ 현縣이 3이다: ⑪ 고구려(-현)[高句驪], ... ⑫ 상은대(-현)[上殷台] ..., ⑬ 서개마(-현)[西蓋馬] ①玄菟郡②武帝元封四年③開④高句驪⑤莽●曰⑥下句驪⑦屬幽州⑧戶四萬五千六⑨口二十二萬一千八百四十五. ⑩縣三⑪高句驪...⑫上殷台...⑬西蓋馬
AP-4 한서 지리지 주석 인용 응소: <(고구려는) ① 옛 진-번[眞-番]에(=진-번이 있었던 곳에) 있다. ● (옛 진-번은) ② 조선朝鮮의 북쪽 변방 사람들[胡]의 국國이었다.> (高句驪)<應劭曰①故眞番②朝鮮胡國>


응소가 주석하였던 기 고구려는 산상-왕이 형제와의 다툼 뒤에 앞서 도읍한 비류의 국내, 위나암-성에서 물러나 환-도-성을 쌓습니다. 뒤 환-도-성에 도읍하기까지 산상-왕이 머무르는 궁이 있던 곳은 옛 도읍,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명성왕 04년 07월 기사가 성, 곽, 궁, 실을 짓고 만들었다[K-3:①]고 적은 곳이었습다.


K-3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명성왕 04년) 가을 07월 ① (흘-령의) 성城, 곽郭, 궁宮, 실室을 짓고[營] 만들었다[作]. (東明聖王四年)秋七月①營作城郭宮室


그 첫 도읍의 정확한 장소는 뒤에 동명-성왕이 고구려를 세우는 일을 살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여기서는 아래 지도에 그려진 현재의 압록-강 남쪽 땅 가운데 현재의 장자-강과 충만-강 사이에 있던 곳이라는 정도만 이야기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앞서 한서 지리지의 현토-군라는 구절에 대해 사기색은은 여순如淳 말을 인용하여 주석하였습니다. 그런데 순의 말은 그 가운데에 다시 한서 지리지 주석이 인용한 응소의 말을 인용하면서 지나치게 줄여 현토-군 본래 직-번-국[直-番-國]었다[X-4:⑦-⑨]고 적었데, 응소의 말을 잘못 이해하여 줄이고 글자 또한 잘못 고친 것입니다.


X-4 사기색은: ① 여순如淳이 ● 이르기를 "② 연이 ③ 일찍이 ④ 2(개) 국들을 차지하여 ● (2개 국들이) ⑤ 자신[己](=연)을 따르도록 하였다. ● (그리하여) ⑥ 응소應劭가 ● 이르기를 '⑦ □토(-군)[□莬](=현토-군)은 ⑧ 본래 ⑨ 직-번-국[直-番-國](=진-번-군)이었다.'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①如淳云②燕③嘗④略二國●⑤以屬己也●⑥應劭●云⑦□莬⑧本⑨直番國


그러니 이것 대신 한서 지리지가 인용한 응소의 말을 살펴보지요. 우선, 진-번[眞-番]은 앞서 수-발이라는 단어가 수의 발, 발-조선이는 단어가 발의 조선을 말하듯이 진의 번, 곧 진 사람들을 따르던 번 사람들을 말는 단어입니다.


진-번 곧 번 사람들을 조선에 있었던 북쪽 변방 사람들[胡]이라고 였으니, 맥 사람들과 함께 도하로 움직였던 북쪽 변방 사람들[胡] 그 뒤 예 사람들을 통해 다시 조선으로 어갔 것입니다. 번 사람들은 래 북쪽 변방 사람들[胡]이 머물던 곳, 뒤에 탁록-현이 만들어지는 독록이라는 곳 가까이 번이라는 곳에 있었습니다.


한서 지리지는 상곡-군[上谷-郡] 潘이라는 이름의 현 적었는데, 현은 탁록-현의 서북쪽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潘의 소리는 番의 소리를 따른 것이고 番은 현재 '번'이라는 소리로 읽으니, 반潘은 본래 현재 '반'과 '번'이라는 소리로 이어진 옛 소리를 모두 가습니다.


그런데 한서 지리지 주석은 사고의 말을 인용하여 潘의 소리가 '반'이[AP-5:①-②]고, 곧 현재 '반'으로 이어진 옛 소리라고 적었습니다. 굳이 주석을 달아 다른 소리로 읽지 않도록 한 것은 본래 潘 '반'으로 이어지는 옛 소리와 다른 소리 읽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소리는 앞서 潘의 소리가 비롯하였던 番의 옛 소리 가운데 '반'이 아닌 '번'으로 이어진 옛 소리였습니다.


AP-5 한서 지리지 주석 인용 사고: <① 潘의 소리는 ② 보普 + 반半의 반절[反]이다(=반이다).> (潘)<師古曰①音普半反>


그러니, 진-번 가운데 번番이라는 리로 이어진 옛 소리를 이름으로 하였던 무리들은 북쪽 변방 사람들[胡] 가운데 한 무리는데, 본래 머무르던 곳은 뒤에 상곡-군 반-현[潘-縣]이 만들어지는 이라는 곳이었습니다. 뒤에 도하, 조선을 통해 건너 와서는 현재의 압록-강 남쪽 가운데 현재의 장자-강과 충만-강 사이에에 머물렀습니다.




한서 지리지는 현토-군에 대해 적은 시 고구려라는 이름의 현[P-7:⑪]을 적었니다. 곳은 고구려-현을 고구려 유리-명왕 차지 뒤 새로 고구려-현을 두었던 인데, 한서 지리지 주석은 응소의 말을 인용하여 옛 구려句驪가 있었던 곳에 있고[AP-6:①] 옛 구려는 북쪽 변방 사람들[胡]이었다[AP-6:②]고 적었습니다.


AP-6 한서 지리지 주석 인용 응소: <(고구려-현[高句驪]은) ① 옛 구려句驪에(=구려가 있었던 곳에) 있다. ● (옛 구려는) ② 북쪽 변방 사람들[胡]이었다.> (高句驪)<應劭曰①故句驪②胡>


옛 구려라는 표현은 구려 무리가 명-성왕이 고구려를 세우기에 앞서[故] 일컬었던 이름데, 이 리 또한 본래는 진-번 곧 번 사람들과 같은 북쪽 변방 사람들[胡]이던 것입니다. 그들이 진-번이 있던 곳에 자리잡기에 앞서 있었다소가 주석한 고구려-현은, 현재의 요령-성 순-시 신빈-만족-자치현 있었습니다.


구려, 곧 고구려를 고이라고 하였는데 이제 그 무리가 본래 북쪽 변방 사람들[胡]이라고 하였으니 고이 또한 북쪽 변방 사람들 가운데 한 무리가 분명합니다. 다른 북쪽 변방 사람들 가운데 한 무리인 번 사람들이 탁록-현이 만들어지는 독록이라는 곳 가까운 곳에 있었듯이 고이 또한 러한 곳에 있었습니다.


고이高夷는 고-이[高-夷] 곧 고高 동쪽 변방 사람들[夷]이니, 고는 곳의 동쪽 있었습니다. 무리를 또한 뒤에 한서 지리지가 구려句驪라고 였으니 句 본래 현재 '고' '구'로 이어 옛 소리를 모두 가습니.


그러니 앞서 번[潘]에 대해 그리하였듯, 고가 자리하였던 곳을 한서 지리지는 '구'라는 소리의 글자로 적었을 것입니다. 한서 지리지 주석은 사고의 말을 인용하여 그 글자의 소리가 '구'라고, 곧 '구'로 이어진 옛 소리라고 적어 '고'로 이어진 옛 소리로 읽지 않도록 하였을 입니다.


살펴보면, 과연 한서 지리지는 상곡-군의 구무雊瞀는 이름의 현[P-6:⑩]을 적었고, 한서 지리지 주석은 사고의 말을 인용하여 雊의 소리가 句의 소리인 '구'다[AP-7:①-②]라고, 현재 '구'로 이어진 옛 소리라고 적습니다.


AP-7 한서 지리지 주석 인용 사고: <① 구雊의 소리는 ② 공工과 두豆의 반절[反](=구)이다. ③ 무瞀의 소리는 ④ 막莫과 두의 반절(=무)이다.> (雊瞀)<師古曰①雊音②工豆反③瞀音④莫豆反>


굳이 주석을 달아 다른 소리로 읽지 않도록 한 것은 본래 雊을 '구'로 이어지는 옛 소리와는 다른 소리로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 소리는 앞서 雊의 소리가 비롯하였던 句의 옛 소리 가운데 '구'가 아닌 '고'으로 이어진 옛 소리였습니다.


고무[雊瞀]는 에 상곡-군 탁록-현의 서남쪽에 있는 구무-현이 만들어지는 곳이며, 또한 고-무 곧 고를 따르는 무 사람들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그 가까이에 '고'라는 소리로 이어진 옛 소리를 가진 高가 있었으며 그 동쪽에 고이高夷가 있었습니다.


고이는 그곳에서 도하, 조선을 통해 움직여 현재의 요령-성 무순-시 신빈-만족-자치현이 있는 곳 와서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뒤에 다시 현재의 압록-강 남쪽 가운데 현재의 장자-강과 충만-강 사이에 있는 곳에 와서 머물렀습니다.




맥 사람들은 본래 상곡-군 탁록-현이 만들어지는 곳과 그곳에서부터 한참 동남쪽, 연이 있던 곳 사이에 있었다가 북쪽 변방 사람들 있는 곳으로 옮겨왔습니다. 리하여 그 일부는 번[潘/番] 사람들과 고이高夷를 포함하는 북쪽 변방 사람들 함께 움직였, 나머지는 남았습니다.


북쪽 변방 사람들 가운데에는 번 사람들과 함께 이름이 나온 진眞 사람들과 아직 이름이 나오지 않은 다른 한 무리가 또한 있었는데, 맥 사람들과 함께 움직였습니다. 뒤에 다른 자료가 이름이 나오지 않은 무리를 이름과 함께 적었는데, 그 자료를 살필 때까지는 다른 무리들과 구분하여 나머지 북쪽 변방 사람들[胡]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맥 사람들과 함께 움직인 번 사람들과 고이가 각각 본래 머물던 고高의 동쪽 변방과 번[潘]에서 움직인 곳들을 알았습니다. 리하여 머물던 곳이 도하였으니 여기에서부터 이동한 길을 지도에 그려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녹색은 고이 사람들, 붉은색은 번 사람들, 파란색은 맥과 다른 북쪽 변방 사람들의 움직임입니다.


도하에서 고이 사람들, 번 사람들, 맥 사람들 그리고 다른 북쪽 변방 사람들의 이동.


이러한 움직임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뒤에 아무런 자취를 남기지 않고 장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 가운데 큰 흐름을 화살표로 그리고, 흐름에서 퍼져나감을 보이는 작은 화살표들을 보태었습니다.




북쪽 변방 사람들 가운데 다음 글에서 마지막으로 살펴볼 무리는 이미 그 이름이 나왔습니다. 바로 번 사람들이 따르던 진眞 사람들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장 3편 조선 (2-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