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3편 조선 (2-1) #30

구려句驪와 진眞 (3/4)

by 잡동산이

진[辰/眞]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뒤에, 머물던 곳에 방邦을 세우고 또한 국國을 만들어 왕王을 받들기로 하였습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그 국의 호號를 서-나-벌[徐-那-伐][AU-2:①]라고 적었는데, 나那는 방邦을, 벌伐은 국國 또는 성城을 이르는 글자들이니 무리 이름을 이르는 글자는 서徐입니다.


AU-2 삼국사기 신라본기: ① 국國의 호號를 서-라-벌[徐-那-伐]이라고 하였다. ①國號徐那伐


서徐는 그 소리가 진[辰/眞]의 소리와 치지 않으니 한韓 사람들이 적은 글자가 아닙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혁거세거서간 38년 2월 기사는 보다 앞서 중-국 사람들이 진-한 사람들과 뒤섞여 머물렀다[AU-3:①-⑦]고 적었으니, 이 사람들이 무리 이름의 소리를 듣고 스스로 쓰는 글자들 가운데 그 소리를 적는 글자 서徐라고 한 것입니다.


AU-3 삼국사기 신라본기: (혁거세거서간 38년 봄 02월) ① 이 때[此](=혁거세거서간 때)보다 앞서 ② 중(-원)[中] 국들[國]의 사람들이 ③ 진秦의 어지러움[亂]을 괴로워하여, ④ 동쪽으로 갔다(= 조선으로 갔다). ● (조선에서) ⑤ 왔던 이들이 ⑥ 무리지어 ● 많이 ⑦ 마-한에 머물렀는데, ● (뒤에) ⑧ 동쪽으로 가서 ⑨ 진 사람들[辰], 한 사람들[韓]과 더불어 ⑩ 섞여 머물렀다. (赫居世居西干三十八年春二月)①前此②中國之人③苦秦亂④東●⑤來者⑥衆●多⑦處馬韓●⑧東⑨與辰韓⑩雜居


그렇다면 진[辰/眞] 사람들 스스로는 무리 이름의 소리를 어떤 글자로 적었을까요? 그들이 받들었던 왕의 힘이 약하였을 때 도운 중-국 사람들이 서라라고 적혔던 무리 이름의 소리는 그 뒤 왕을 따르기 시작한 새로운 무리에 의해 달리 적혔는데, 왕의 힘이 강해진 뒤는 본래 이름 - 그 소리로 되돌렸으며 또한 진 사람들이 이름의 소리에 대해 쓰는 글자로 고쳐 적었습니다.


이 일을 삼국사기 신라본기 신라본기 기림이사금 10년 기사는 국의 호를 되돌려 신-라[新-羅]라고 하였다[AU-4:①]고 적었습니다. 나那라는 글자로 적었던 방邦을 진 사람들이 쓰는 글자로 적은 것이 라羅이, 서徐라는 글자로 적었던 무리 이름을 진 사람들이 쓰는 글자로 적은 것이 신新입니다.


AU-4 삼국사기 신라본기: (기림이사금) 10년 ① 국國의 호號를 되돌려 ② (국의 호를) 신-라[新-羅]라고 하였다. (基臨尼師今)十年①復國號②新羅


정리하면, 조선朝鮮 사람들이 이 무리를 받아들 뒤 이름 소리를 듣고 자신들이 그 소리를 적는 데에 쓰는 글자인 眞으로 적었고, 한韓 사람들이 이 무리를 받아들 뒤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그 소리를 적는 데에 쓰는 글자인 辰으로 적었습니다. 이 무리가 뒤에 국을 세우고 처음에는 큰 역할을 하였던 중-국 사람들이 그 소리를 적는 데에 쓰는 글자인 徐으로 적었다가, 기림이사금 10년에 이르러 스스로 그 소리를 적는 데에 쓰는 글자인 新으로 되돌려 적은 것입니다.




무리 이름을 적은 新이라는 글자의 소리는 辛이라는 글자의 소리를 쓴 것인데, 그 소리는 현재의 소리 '신'으로 이어진 옛 소리였습니다. 런데 辛의 소리를 쓴 다른 글자, 현재의 소리 '사'로 읽는 辭가 보여주듯이 辛의 옛 소리는 현재의 소리 '사'로 이어지기도 하였습니다.


이제, 이한 옛 소리를 통해 본래 이 무리가 비롯된 곳을 찾아가 봅시다. 펴야 할 자료 대부분은 이미 나왔으니, 하나만 더 살 그 다음은 가볍게 보고서 그저 따라가면 됩니다.


먼저, 삼국사기 신라본기 혁거세거서간 21년 기사는 수도의 성城을 쌓았고[AU-5:①] 호號를 금-성[-城]이라고 하였다[AU-5:②-③]고 적었습니다. 앞서 진[辰/眞] 또는 신新 사람들이 받들기로 하였던 왕을, 다른 사람들이 같이 받들기로 하고서도 왕에게 힘을 주지는 않아 세워지지 않았던 수도의 성을, 새로 왕을 따르게 된 사람들이 진 사람들에게 힘을 보태어 세우고서 적은 성의 호 곧 이름이 金이었습니다.


AU-5 삼국사기 신라본기: (혁거세거서간) 21년 ① 수도[京]의 성城을 쌓았으며, ② (성의) 호號를 ● 말하기를 ③ 금-성[金-城]이라고 하였다. ((赫居世居西干)二十一年①築京城②號●曰③金城


金이라는 글자는 진 사람들이 적은 것인데, 그 소리 무리 이름을 적은 眞/辰/徐 어느 것의 소리와도 겹치지 않으니, 이 글자는 소리가 아니라 뜻 가지고 고른 것입니다. 현재의 창원-시 봉림-사 터의 진경-대사 탑비가 김율희金律熙라고 적은 사람을 봉화-군 태자-사의 낭공-대사 탑비는 소충자蘇忠子의 아우 율희律熙 곧 소율희라고 적었으니, 金의 뜻을 현재의 소리 '소'로 이어진 옛 소리 가진 글자 蘇로 적은 것니다.


그런데, 앞서 무리 이름을 적은 新에 대해서도 다른 글자로 적은 자료가 있습니다. 삼국사기 지리지 신라편은 사평-현[沙平-縣]이라고 적힌 장소 이름을 신라 경덕-왕이 신평-현[新平-縣]이라고 고쳤다[AC-2:①-⑤]고 적었으니, 新의 현재의 소리 '신'으로 이어진 옛 소리가 沙의 현재의 소리 '사'로 또한 이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沙의 소리는 少의 소리를 쓴 것이니, '신'으로 이어진 옛 소리는 少의 소리 '소'로 또한 이어졌습니다.


AC-2 삼국사기 지리지 신라편: (신-라[新-羅] 웅-주[熊-州] 제-성-군[㨹-城-郡]에는) ① 신평-현[新平-縣]이 있었는데, ● (신평-현은) ② 본래 ③ 백제百濟 사평-현[沙平-縣]이었다. ④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⑤ 고쳐 이름하였다(= 신평-현[新平-縣]이라고 하였다). (熊州㨹城郡)①新平縣●②本③百濟沙平縣④景德王⑤改名


다시 말해, 新의 소리가 썼던 辛의 소리는 현재의 '신', '사', '소'로 이어진 옛 소리였습니다. 그 가운데 현재의 '소'라는 소리로 이어진 옛 소리를 뜻으로 - '소'에 가까운 '쇠'를 뜻으로 - 가지는 글자가 바로 金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단서가 모두 모였으니 독록[涿/獨鹿]으로 돌아가서 진[眞/辰] 곧 신新 사람들이 머물던 곳을 찾아봅시다. 록 가까이에는 다른 북쪽 변방 사람들인 번 사람들과 고이 곧 구려르고 있었니, 이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지막으로 정리해도록 하겠습니다.




독록[涿/獨鹿]은 앞서 치우와 싸웠다고 하였던 황제가 읍을 만들어 머물던 곳인데, 이곳 가까이에 뒤 고이高夷가 머물던 곳 서쪽에 고高의 옛 소리를 이름으로 가진 이 있었, 그곳 가까이 신辛의 옛 소리를 이름으로 가진 이 있었습니다. 신辛은 少의 현재 소리 '소'로 이어진 옛 소리를 뜻으로 하는 금金으로 적을 수 있었습니다.


장소의 이름을 적는 이 글자이해하기 위해, 황제의 후손 가운데 요堯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앞서 2편에서 살펴았던, 사기 오제본기가 진봉-씨[陳鋒-氏]의 딸이 방훈放勳을 낳았다[1장 2편 E-1:⑪]고 적은 구절에 대해 사기의는 제왕기帝王紀를 인용하여 방훈이 제帝 요堯 도-당-씨[陶-唐-氏]다[AX-1:①-②]고 었습니다.


1장 2편 E-1 사기 오제본기: ① 제帝 곡嚳 고신高辛이라는 사람이 ② 황제黃帝의 증손曾孫이었으니, ③ 고신의 아버지를 ● 말하기를 ④ 교극蟜極이라고 하였고, ⑤ 교극의 아버지를 ● 말하기를 ⑥ 현효玄囂라고 하였고, ⑦ 현효의 아버지를 ● 말하기를 ⑧ 황제라고 하였다. ... ⑨ 제 곡이 ⑩ 진봉-씨[陳鋒-氏]의 딸을 아내로 맞으니[娶] ● (진봉-씨의 딸이) ⑪ 방훈放勳을 낳았으며, ● (제 곡이) ⑫ 취자-씨[娵訾-氏]의 딸을 아내로 맞으니 ● (취자-씨의 딸이) ⑬ 지摯를 낳았다. ... ⑭ 제 곡이 ⑮ 죽자 ⑯ (곡의 아들) 지가 ⑰ 이어[代] (제로) 섰으며, ⑱ 제 지가 ⑲ 서서 잘하지[善] 않자 ⑳ (지의) 아우 방훈이 ㉑ (제로) 섰다. ㉒ 이 사람[是](=방훈)을 제 요堯라고 하였다. ①帝嚳高辛者②黃帝之曾孫也③高辛父●曰④蟜極⑤蟜極父●曰⑥玄囂⑦玄囂父●曰⑧黃帝...⑨帝嚳⑩娶陳鋒氏女●⑪生放勳●⑫娶娵訾氏女●⑬生摯...⑭帝嚳⑮崩⑯而摯⑰代立⑱帝摯⑲立不善⑳而弟放勛㉑立㉒是爲帝堯
AX-1 사기정의 인용 제왕기: <(방훈放勳이) ① 제帝 요堯 도-당-씨[陶-唐-氏]였다.> (放勳)<帝王紀云①帝堯陶唐氏>


그런데 사기 오제본기가 제帝 지摯가 서서 잘하지 않았다[1장 2편 E-1:⑱-⑲]고 적은 구절에 대해 사기정의는 제왕기를 인용하여 제 지가 어머니가 다른 아우 방훈을 봉하여 당-후[唐-侯]라고 하였다[AX-2:⑨-⑩]고 적었습니다. 당唐은 가 제가 되기에 앞서 봉해졌던 땅 이름입니다.


AX-2 사기정의 인용 제왕기: <① 제帝 지摯의 어머니는 ② (제 곡이 혼인한) 4(명) 사람들[人] 가운데 ③ 차례[班]가 ● 제일 ④ 낮은 곳[下]에 있었다(=있었던 사람이었다). ● (그러나) ⑤ 지는 ⑥ 형과 아우들(= 제 곡의 아들들) 가운데 ● 제일 ⑦ 나이많아 ⑧ 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 (지가) ⑨ 어머니가 다른 아우 방훈放勛을 봉하여[封] ● (방훈을) ⑩ 당-후[唐-侯]라고 하였다. ⑪ 지가 ⑫ (제의) 자리에 있으면서 ⑬ 9년을 지내며 ⑭ 다스림이 ⑮ 작고 약하였다. ⑯ 당-후의 덕이 ⑰ 일어나니 ⑱ 여러 후들이 ⑲ 그[之](=당-후)를 따랐다[歸]. ⑳ 지가 ㉑ 그[其](=당-후를 따르는 것의) 올바름을 따르고[服](=받아들이고) ● 이어 ㉒ 여러 신하들을 거느리고 ㉓ 당唐에 가서[造] ㉔ (자리를) 미루기[禪]에 이르렀다. ㉕ 당-후는 ● 스스로 ㉖ 천-명[天-命]이 있을 것을 알고 ● 이어 ㉗ 제가 미루는 것[禪]을(= 자리를) 받았고, ● 이어 ㉘ 지를 고-신[高-辛]에 봉하였다. ①帝摯之母②於四人中③班●最④在下●⑤而摯⑥於兄弟●最⑦長⑧得登帝位●⑨封異母弟放勛●⑩爲唐侯⑪摯⑫在位⑬九年⑭政⑮微弱⑯而唐侯德⑰盛⑱諸侯⑲歸之⑳摯㉑服其義●乃㉒率羣臣㉓造唐㉔而致禪㉕唐侯●自㉖知有天命●乃㉗受帝禪●乃㉘封摯於高辛>


그 나머지 도陶 대해 설문해자는 요가 일찍이 도에 머물렀다[AY:③-⑤]고 적었습니다. 곧 도는 요가 일찍이, 곧 당에 봉해지기에 앞서 본래 머물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니 제+요+도-당-씨라는 구절은 호+이름+(본래 머물던 곳)+(봉하여진 곳)+씨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AY 설문해자: ① 도의 언덕에 ② 요의 성이 있었으니, ③ 요가 ④ 일찍이 ⑤ (도에) 머물렀던 바였다. ● 그리하였기에 ⑥ 요가 ⑦ 호를 ● 말하기를 ⑧ 도-당-씨라고 하였다. ①陶丘②有堯城③堯④嘗⑤所居●故⑥堯⑦號●⑧陶唐氏


방훈의 아버지인 제 곡을 사기 오제본기는 제 곡 고신이라는 사람[1장 2편 E-1:①]이라고 적었는데, 1장 2편 F-1에서 적은 제 전욱을 또한 제 전욱 고양이라는 사람[AQ-3:①]이라고 적었습니다. 앞서 제 요 도-당의 구조를 통해 보면 곡과 전욱은, 본래 고高에 머물렀고 신辛이라는 곳과 양陽이라는 곳에 봉해졌던 사람들입니다.


AQ-3 사기 오제본기: ① 제帝 전욱顓頊 고양高陽이라는 사람은 ② 황제黃帝의 손자[孫]였으며 ③ 창의昌意의 아들[子]이었다. ①帝顓頊高陽者②黃帝之孫③而昌意之子也


제 곡이 봉하여졌던 이곳이 바로 현재 新/辛의 소리인 '신'으로 이어진 옛 소리를 가진 곳이며, 여기에 진[眞/辰]과 신新으로 이어진 옛 소리를 이름으로 하던 무리가 본래 있었던 곳입니다. 그리고 제 곡과 제 고신이 모두 본래 있던 고高, 그 동쪽 변방이 고이高夷 곧 구려句驪로 이어진 옛 소리를 이름으로 하던 무리가 머무르던 곳입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광개토왕 17년 03월 기사는 스스로를 고-양-씨의 후손이고 그리하여 고-씨라고 하였다[K-4:⑨-⑩], 그렇게 이르던 고화의 손자 운[K-4:⑦-⑧]이 왕이 되었던 북-연[K-4:④]에 사신을 보냈다[K-4:①]고 적고 운의 조상이 왕 가문[宗]의 피붙이[族]였다[K-4:②-③]고 적습니다. 고-양의 고와 양 가운데 본래 머물던 장소인 고를 성으로 한 것입니다.


K-4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광개토왕) 17년 봄 03월 ● (왕이) ① 사신을 북-연[北-燕]에 보내었는데 ● (북-연의 우두머리 운) 또한 ② 시작[叙](= 조상)은 ③ (왕의) 가문[宗]의 피붙이[族]였다. ④ 북-연-왕[北-燕-王] 운雲이 ⑤ 시어사侍御史 이발李拔을 보내니 ● 이발이 ⑥ 그것[之](= 왕의 말에) 답하여 ● (말하기를) "⑦ 운雲의 할아버지는 ⑧ 고화高和였는데, ● (고화가) 스스로 이르기를[云] '(우리는) ⑨ 고-양-씨[高-陽-氏]의 후손[苗裔]이며 ● 그리하여 ⑩ 고高를 씨氏로(= 고-씨[高-氏]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⑪ 모용보慕容寶가 (황)태자太子가 되었을 때 ⑫ 운이 ⑬ 무예武藝로 ⑭ 동-궁[東-宮]을 모시니(= 지키니) ⑮ (모용)보寶가 ⑯ 그[之]를(= 운을) 아들로 삼고[子] ⑰ 성姓을 (운에게) 내려주어 ⑱ (운을) 모용-씨[慕容-氏]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廣開土王)十七年春三月●①遣使北燕●且②叙③宗族④北燕王雲⑤遣侍御史李拔●⑥報之●⑦雲祖父高和●自云⑨高陽氏之苗裔●故⑩以高爲氏焉⑪慕容寶之爲太子⑫雲⑬以武藝⑭侍東宮⑮寶⑯子之⑰賜姓⑱慕容氏


이 구절들은 고이가 머무르던 곳, 고高의 동쪽 변방에 나오는 고에 머무르다가 양陽에 봉하여진 뒤에 떠나 제가 되는 전욱 고에 남긴 후손 가운데 동쪽 변방에 머무르던 사람들이 고이 곧 구려 사람들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러하였기에 한漢이 구려를 고-구려라고 적었고, 그들이 진-번에서 주몽과 세운 국을 고-구려, 성을 고-씨라고 하였다고, 뒤에 고와 구가 같은 장소를 적은 글자임을 알 고려라고 고쳤습니다.


또한 삼국사기 사론은 고구려 사람들이 스스로를 고-신-씨의 후손이라고 하였고 성을 고-씨라고 하였다[AZ:⑤-⑧]고 적었습니다. 구절들 또한 고에 머무르다가 신에 봉하여진 뒤에 떠나 제가 되는 곡이 남긴 후손들 가운데 동쪽 변방에 머무르던 사람들이 고이 곧 구려 사람들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고와 신 가운데 본래 머물던 장소를 성으로 한 것은 고-양의 경우와 같습니다.


AZ 삼국사기 사론: (내가) 듣기를 "① 신라新羅 사람들은 ● (스스로가) ② 소-호(-씨)[小-昊] (곧) 금-천-씨[金-天-氏]의 후손이라고 하였으며 ● 그리하여 ③ 성姓을 ④ 금/김-씨(金-氏]라고 하였다. ⑤ 고구려高勾麗(=고구려 사람들) ● 또한 (스스로가) ⑥ 고-신-씨의 후손이라고 하였으며 ● (그리하여) ⑦ 성을 ⑧ 고-씨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聞①新羅人●自②以小昊金天氏之後●故③姓④金氏⑤高勾麗●亦⑥以高辛氏之後●⑦姓⑧高氏




이제 살펴야 하는 것은 하나 남았습니다. 앞서 삼국사기 사론은 앞서 다룬 내용들을 적었을 뿐만 아니라 신라 사람들이 소-호 곧 금-천-씨의 후손이라고 하였고 성을 김-씨[金-氏]라고 하였다고 적었니, 바로 이 구절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장 3편 조선 (2-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