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3편 조선 (2-1) #31

구려句驪와 진眞 (4/4)

by 잡동산이

이제, 앞의 글 마지막에서 살펴보기로 였던 소-호[小-昊] 금-천-씨[金-天-氏]라는 구절에 대해 정리하고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金-天 가운데 金은 곧 앞서 곡이 봉하여진 신[新/辛] 사람들이 있던 장소를 달리 적은 것라고 하였습니다. 辛의 옛 소리는 小라는 글자의 현재 소리 '소'로 또한 이어졌으니, 小-昊의 小는 辛을 달리 적은 것이고, 辛을 그것과 다른 방식으로 달리 적은 것이 金이니 곧 小는 金에 해당합니다


小에 당하는 글자가 金이라면, 昊는 어떨까요? 이아 석천편은 여름에 큰 것[昊]이라고 하는 것이 하늘[天]이다[BA:⑧-⑩]라고 적었고, 昊의 뜻에도 큰 하늘이 있습니다. 그러니 昊는 어떤 방식으로든, 天의 소리를 뜻으로 적은 글자가 昊가 아니더라도, 天라는 글자에 해당함이 분명합니다.


BA 이아 석천편: ① 궁穹은 ② 푸른 것[蒼]인데, ③ 푸른 것이란 ④ 천天(= 하늘)이다. ⑤ 봄[春]에 ⑥ 푸른 것[蒼]이라고 하는 것이 ⑦ 하늘[天]이고(= 하늘이 푸르고), ⑧ 여름[夏]에 ⑨ 큰 것[昊]이라고 하는 것이 ⑩ 하늘이고(= 하늘이 크고), ⑪ 가을[秋]에 ⑫ 우울한 것[旻]이라고 하는 것이 ⑬ 하늘이고(= 하늘이 우울하고), ⑭ 겨울[冬]에 ⑮ 높은 것[上]이라고 하는 것이 ⑯ 하늘이다(= 하늘이 높다). ①穹②蒼③蒼④天也⑤春⑥爲蒼⑦天⑧夏⑨爲昊⑩天⑪秋⑫爲旻⑬天⑭冬⑮爲上⑯天


그러니 소-호라고 하는 단어는 사실 금-천을 달리 적은 것입니다. 아마도 보다 앞서 다른 곳에서 머물다가 같은 곳에 봉해졌던 복희라는 사람을 태-호라고 하던 단어에서 이어지는 표현입니다.




金-天은 고-양이나 고-신의 경우를 통해 보면 본래 머물던 곳이 金, 봉하여진 곳이 天인 어떤 사람에 대해 이어 적은 단어입니다. 앞서 고-양이나 고-신의 후손이던 고-구려가 전욱이나 곡이 본래 머물던 곳의 이름을 써서 왕의 성을 고-씨라고 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진[辰/眞] 사람들로 이어진 신[新/辛] 사람들 - 금-천의 후손이던 신라 사람들은 그 단어를 같이 적는 어떤 사람이 본래 머물던 곳의 이름을 써서 왕의 성을 김-씨[金-氏]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을 적은 金의 옛 소리는 글자를 일반적으로 읽는 '금'이 아니라 묘하게 '김'이라는 소리로 이어고 있습니다. 그 점을 설명해주는 연결고리가 일본서기와 사기색은에 있습니다.


일본서기 계체천황 03월 기사는 가라-왕의 이름을 기부리지가己富利知伽[BB:①]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삼국사기 김유신열전은 김유신의 비 곧 그 비문을 인용하여 김유신이 소-호[少-昊]를 이은 자손[BC:②-③]이라고 적었으며, 이어 남-가야 시조 수로가 신라와 성을 같이 한다[BC:④-⑥]고 적었습니다. 소호 곧 금-천[金-天]의 후손인 김유신이 가야-왕의 후손이니, 기己는 가라 곧 가야-왕의 성姓이던 김金을 달리 적은 것입니다.


BB 일본서기: (계체천황 23년 봄 03월) (이 달) ① 가라[加羅](-왕) 기부리지가己富利知伽가 ② 답하였다. (繼體天皇二十三年春三月)(是月)①加羅己富利知伽②報
BC 삼국사기 김유신열전: ① (김)유신庾信의 비碑가 ● 또한 이르기를 "● (김유신은) ② 헌원軒轅(=황제)의 이은 무리이며 ③ 소-호[少-昊]를 이은 자손이다."라고 하였다. ● 곧 ④ 남-가야[南-加耶] 시조始祖 수로首露는 ⑤ 신라新羅와 더불어 ⑥ 성을 같이하였다. ①庾信碑●亦云●②軒轅之裔③少昊之胤●則④南加耶始祖首露⑤與新羅⑥同姓也


사기색은은, 국어 진어편이 사공이었던 계-자의 말을 인용하여 황제黃帝의 아들들 가운데 청양靑陽과 이고의 성이 기己라는 성이었다[BD:⑩-⑪ = X-5:⑨-⑩]고 적고 또한 청양과 창림이 청이 희라는 성이었다[BD:㉕-㉗ = X-5:⑪-⑫]고 적은 구절들을 다시 인용하여 적었습니다. 이어 희라는 성의 청양은 황제의 아들인 현효라고 하여야 하며[X-5:㉒-㉓], 다른 청양은 소-호[少-昊] 금-천-씨[金-天-氏]로 성이 기였던 사람이[X-5:㉙-㉜]라고 적었습니다.


X-5 사기색은: ① 국어國語에서 ② 서신胥臣이(= 낮은 신하)가 ● 이르기를 "③ 황제黃帝의 아들들은 ④ 25개 가문[宗](= 가문의 시조)인데 ⑤ 그들[其]이면서(= 그들 가운데) 성姓을 얻은 이는 ⑥ 14명[人]이며 ⑦ 12(개) 성들이 되었으니 ● (12개 성들은) ⑧ 희姬, 유酉, 기祁, 기己, 등滕, 잠葴, 임任, 순荀, 희僖, 길姞, 현儇, 의衣, 이것들[是]이다. ● 오직 ⑨ 청양青陽 그리고 이고夷鼓가 ⑩ 기己라는 성을 같이하였다."라고 하였고 ● 또한 이르기를 "⑪ 청양 그리고 창림蒼林이 ⑫ 희姬라는 성이 되었다."라고 하였다. ⑬ 이것에서 ● 곧 ⑭ 14명이 ⑮ 12(개) 성들이 되었으니 ⑯ 그 글이 ⑰ 매우 분명하다. ● 오직 ⑱ 희라는 성에 ● 다시 ⑲ 청양을 창림과 더불어 일컬은 것은 ● 아마도 ⑳ 국어 글[文]의 잘못인 듯 한데, ● (이것이) ㉑ 앞선[前] 선비들[儒]이 함께 의심하도록 하기에 이르도록 하였던 바였다. ㉒ 그 희라는 성의 청양은 ● 마땅히 ㉓ 현효玄囂가 되어야 하니, ㉔ 이 사람[是]은(=현효는) ㉕ 제帝 곡嚳의 할아버지로 ㉖ 본래 ㉗ 황제와 더불어 ㉘ 희라는 성을 같이하였다. ㉙ 그 국어의 위의 글에서 청양, ● 곧 ㉚ 이 사람은 ㉛ 소-호[少-昊] 금-천-씨[金-天-氏]이며 ㉜ 기己라는 성이 되었던 이[者]였다. ①國語②胥臣●云③黃帝之子④二十五宗⑤其得姓者⑥十四人⑦爲十二姓●⑧姬酉祁己滕葴任荀僖姞儇衣是也●唯⑨青陽與夷鼓⑩同己姓●又云⑪青陽與蒼林⑫爲姬姓⑬是●則⑭十四人⑮爲十二姓⑯其文⑰甚明●唯⑱姬姓●再⑲稱青陽與蒼林●蓋⑳國語文誤●㉑所以致令前儒共疑㉒其姬姓青陽●當㉓爲玄囂㉔是㉕帝嚳祖㉖本㉗與黃帝㉘同姬姓㉙其國語上文青陽●即㉚是㉛少昊金天氏㉜爲己姓者耳
BD 국어 진어편: ① 공-자[公-子]가 ② 사과하고자 하였다. ③ 사공司空 계-자[季-子]가 ● 말하기를 "④ 성姓을 같이하는 것은 ⑤ 헝과 아우가 되는 것이다. ⑥ 황제黃帝의 아들들이 ⑦ 25명[人]이었는데, ⑧ 그들[其]이면서(= 황제의 아들들 가운데) 성을 같이하였던 이는 ⑨ 2명[人] 뿐이었다. ● 오직 ⑩ 청양靑陽 그리고 이고夷鼓가 ● 모두 ⑪ 기己라는 성이 되었는데 ⑫ 청양은 ⑬ 방뢰-씨[方雷-氏]의 외손자[甥]였고 ⑭ 이고는 ⑮ 동어-씨[彤魚-氏]의 외손자였다. ⑯ 그들이면서(= 황제의 아들들 가운데) 같이 태어나 성을 달리한 이들은 ⑰ 4(명) 어머니들의 아들들이었는데 ⑱ 나누어져 12(개) 성들이 되었다. ● 무릇 ⑲ 황제의 아들들은 ⑳ 25개 가문[宗](= 가문의 시조)인데 ㉑ 그들이면서(= 그들 가운데) 성을 얻은 이는 ㉒ 14명이며 ㉓ 12(개) 성들이 되었으니 ● (12개 성들은) ㉔ 희姬, 유酉, 기祁, 기己, 등滕, 잠葴, 임任, 순荀, 희僖, 길姞, 현儇, 의衣, 이것들[是]이다. ● 오직 ㉕ 청양 그리고 창림蒼林은 ㉖ 씨氏가 황제와 같으니 그리하여 모두 ㉗ 희姬라는 성이 되었다.("라고 하였다.) ①公子②欲辭③司空季子●曰④同姓⑤爲兄弟⑥黃帝之子⑦二十五人⑧其同姓者⑨二人而已●唯⑩靑陽與夷鼓●皆⑪爲己姓⑫靑陽⑬方雷氏之甥也⑭夷鼓⑮彤魚氏之甥也⑯其同生而異姓者⑰四母之子⑱別爲十二姓●凡⑲黃帝之子⑳二十五宗㉑其得姓者㉒十四人㉓爲十二姓●㉔姬酉祁己滕箴任荀僖姞儇依是也●唯㉕靑陽與蒼林㉖氏同于黃帝●故皆㉗爲姬姓


여기서 소-호[少-昊]라고 적은 사람은 삼국사기 사론이 적은 소-호[小-昊] 곧 금-천-씨이니, 그 성姓을 읽는 옛 소리에서 이어진 소리를 적은 글자가 기己였던 것입니다. 그 후손이었던 가야-왕이 내는 소리 - 옛 소리에서 이어진 소리를 듣고, 본래 열도에서 건너가기 전부터 가까이 있어 그 소리가 가야가 읽는 어떤 글자의 소리와 같은지 잘 알던 열도 사람들이 그 글자를 골라 적은 것이 바로 앞서 일본서기가 적은 기己였던 것입니다.


금-천-씨의 후손은 또한 金을 성姓으로 썼으니, 그 성을 이름으로 하였던 성城이 바로 앞서 이야기한 금-성[金-城]입니다. 금-천-씨의 후손의 성姓을 적은 글자 金의 옛 소리는, 현재 '금-성'이라고 읽는 앞서의 단어가 보여주듯 현재 소리인 '금'으로 이어졌지만, 성을 현재 소리가 '기'인 己로 적었던 것이 또한 보여주듯 옛 소리의 모음은 'ㅡ'보다 'ㅣ'에 가까웠기에 성姓을 적은 金은 현재의 '김'이라는 소리로 읽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반복해서 나타나는 금-천-씨는 대체 누구였을까요? 앞서 사기색은은 청양이라고 하던 2명 가운데 황제의 아들 현효가 아닌 다른 1명이 기己를 성으로 쓰던 소-호 금-천-씨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자료는 소-호 금-천-씨가 기를 성으로 썼다는 점을 통해 기를 성으로 썼다는 청양이 따로 있다면 같은 기를 성으로 쓰는 소-호 금-천-씨였을 것이라고 설명한 것이지 그런 청양이 정말로 있었는지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살펴보면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청양 아니라 누군가의 조상인 소-호-씨의 이름을 적은 자료가 있습니다. 바로 춘추좌전입니다.


춘추좌전 소공 17년 기사는 노의 소-자가 소-호-씨[少-皞-氏]의 새 이름의 벼슬이 어떻게 비롯된 것인지 궁금해하자[AM-2:①-④], 노에 있던 담-자가 스스로 소-호의 후손이기에 그것을 잘 안다고 하였다[AM-2:⑤-⑧]고 적었습니다. 이어 맡은 일을 하는 벼슬에 해당하는 새 이름의 벼슬을 설명한 뒤에, 소-호[少-皞] 지摯 섰을 때[AM-2:⑨]를 적었습니다.


AM-2 춘추좌전: (소공 17년 가을) ① 소-자[昭-子]가 ② 물었으며 ● 말하기를 "③ 소-호-씨[少-皞-氏]의(= 소호-씨에게 있던) 새 이름의 벼슬[官]은 ④ 어찌 그리하였는가[何故也]?"라고 하였다. ⑤ 담-자[郯-子]가 ● 말하기를 "(소-호-씨는) ⑥ 나의 조상[祖]이니 ⑦ 내가 ⑧ 그것[之]을(= 어찌 그리하였는지[何故]를) 안다. ... ⑨ 나의 높은 조상 소-호[少-皞] 지摯의(= 지가) 섰던 일[立]에(= 섰을 때) ⑩ 봉鳳, 황鳥이 ⑪ 때마침 ⑫ 이르렀다. ● 그리하여 ⑬ 새[鳥]에 적어[紀](=더하여) ⑭ (어떤) 새 군대[師]와 어떤 새 이름[名](= 새 이름의 벼슬)이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昭公十七年秋)①昭子②問焉●曰③少皞氏鳥名官④何故也⑤郯子●曰⑥吾祖也⑦我⑧知之...⑨我高祖少皞摯之立也⑩鳳鳥⑪適⑫至●故⑬紀於鳥⑭爲鳥師而鳥名


소-호[少-皞]는 앞서 살펴본 사기색은이 적은 소-호[少-昊]를 말하는데 보다 앞에 소-호-씨라고 하였으니 곧 지摯는 그 이름을 말합니다. 앞서 이 글자를 이름으로 쓰는 사람을 이미 보았으니, 바로 제 요보다 앞서 제가 되었던 요의 형 지가 소-호, 바로 기라는 성으로 가졌던 소-호 금-천-씨입니다.


앞서 제시했던, 사기정의가 제왕기를 인용하여 적은 구절들은 또한 지가 여러 신하들을 거느리고 당에 가서 자리를 미루기에 이르렀다[AX-2:㉒-㉔]고 적습니다. 또한 그리하여 자리를 이어받은 당-후 곧 제 요가 뒤에 제의 저리에서 물러난 지를 고-신[高-辛]에 봉하였다[AX-2:㉘]고 적었으니 곧 그를 그가 일찍이 머물던 辛에 돌려보냈던 것입니다.


요컨대, 지는 금金에 머물다가 천天에 봉하여졌고 제의 자리에 오르니 그를 금-천-씨라고 하고 그가 앞서 머물던 금에 있던 그 후손이 성을 김-씨라고 하였습니다. 그 뒤 요에게 제의 자리를 넘기고 물러나니 제 요가 그를 고-신 곧 신辛에 봉하였고, 그리하여 돌아와서는 금金을 달리 신辛이라고 하니, 그 후손들이 본래 머물던 곳의 이름에 따라 그 무리의 이름을 신[辛/新]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조선이 세워지고 나서부터 고구려와 신라가 세워질 때까지의 이야기, 왕이 되는 사람과 그 땅에 본래 살아오던 사람들 사이에 자리하게 되었던 또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가운데 정말 커다란 부분이 하나 끝났습니다. 이것으로 이 글, 3편의 마지막 글을 마무리합니다.




아래의 이야기는 뒤에 신라를 이야기하며 자료들와 함께 자세히 살피게 될 내용을 간략히 풀어놓은 것입니다. 뱀다리[巳足]와 같이 불필요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 이제껏 긴 글 읽어오시느라 피곤하신 분은 그냥 읽지 않고 다음 글로 넘어가셔도 됩니다.


소-호 곧 금-천-씨의 후손 가운데 도하를 통해 조선으로, 다시 진-번으로 움직인 무리와 함께 움직이지 않고 본래의 땅에 머무르던 무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뒤 연燕과 조趙 그리고 진秦이 주변을 침범하면 확장해가자 이 무리도 결국 머물던 땅에서 독록 무리와 함께 떠났습니다.


진서 사이열전 흉노편에서 보였듯 독록 무리는 흉노로 들어갔습니다. 한참 뒤에 신라 사람들이 적은 글에서 보이듯 금-천-씨의 후손인 다른 무리 또한 결국 흉노로 들어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흉노로 들어갔던 금-천-씨의 후손은 뒤에 휴도-왕이라는 호를 가진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흉노가 한漢에게 패배한 뒤 흉노 선우가 가까운 사람들을 의심하자, 휴도-왕은 혼사-왕과 함께 한漢의 항복하고자 하다가 먼저 등돌린 혼사-왕에게 죽었습니다. 그러나 혼사-왕도 결국 한에 패배하였고 그리하여 휴도-왕의 아들 일제는 한에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 뒤 일제는 한을 따르고 벼슬하여 투-후라는 자리에 봉하여졌는데, 후손 가운데는 왕망이 한을 무너뜨린 뒤에 왕망을 따르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뒤에 왕망이 몰락하자 그 후손은 한을 떠나 신라로 들어왔습니다. 다시 그 후손은 김-씨라고 하고 신라-왕의 가문에 함께 하였습니다. 한참 뒤에 그 후손은 신라-왕이 되었으며, 그 후손들이 앞서 언급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 기록들은 지금도 잘 남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세간에서는 뒤에 꾸며져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여기거나 또는 대충 읽고서 신라-왕의 가문이 흉노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할 뿐입니다. 어느 쪽도 소-호 곧 금-천-씨에서 시작하는 내용들을 이해하려 하지는 않습니다.


그 내용들을 이해하는 시작점이 이번 글입니다. 여기서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신라에 대해 살피며 풀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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