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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동산이 Jul 19. 2024

1장 1편 조선朝鮮 이전 #9

압록-수와 태백-산은 어디인가? (2/3)

그렇다면 압록-수는 과연 어디였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려면 앞서 압록-수에 대하여 살펴보던 자료들에 이어지는 자료들과 또 한 가지 자료를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앞서, 압록-수의 물이 시작되는 태백-산이 있던 범위를 대략 추측할 수 있는 다른 자료를 먼저 살펴봅시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천왕 21년 02월 기사는 왕이 평양에 성을 쌓고 사람들, 사당들을 옮겼다[E-6:④-⑤]고 적었는데, 그 바로 뒤에 평양이 왕검의 집이었다[E-6:⑥-⑦]고 적었습니다. 해당 기사의 끝에 달린 주석은 어떤 기록을 인용하여 누군가가 사람들에게 왕노릇하며 왕험에 도읍하였다[K:①-②]고 적었습니다. 이 내용은 사기 조선열전의 구절[L:①-②]이니, 그 주어는 만滿입니다. 위만으로 더 잘 알려져 있죠.


E-6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천왕) 21년 봄 02월 ① 왕은 ② 환-도-성[丸-都-城]이 어지러움[亂]을 지냈기에[經](=겪었기에) ③ (환-도-성에) 도읍을 되돌릴 수 없다고 여겼다. ● (그리하여) ④ 평양-성[平壤-城]을 쌓고, ⑤ (환-도-성의) 사람들[民] 그리고 사당들[廟社]을 (평양-성에) 옮겼다. ⑥ 평양平壤은 ● 본래 ⑦ 선인仙人 왕검王儉의 집[宅](=집이 있던 곳)이었다. (東川王)二十一年春二月①王②以丸都城經亂③不可復都●④築平壤城⑤移民及廟社⑥平壤者●本⑦仙人王儉之宅也
K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인용 어떤 기록: ① 사람들에게[之] 왕노릇하였으며[王], ② 왕험(-성)[王險](=왕검의 집)에 도읍하였다. 或云①王之②都王險
L 사기 조선열전: (만滿이) ① 사람들에게[之] 왕노릇하였으며[王], ② 왕험(-성)[王險]에 도읍하였다. ①王之②都王險


이 기사는 동천-왕이 새로 성을 쌓은 평양-성에 대해서 3가지 정보를 전달합니다. 하나는 성을 쌓은 평양이 왕검의 집이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만이 도읍하였던 왕험-성이었다는 점입니다. 마지막 하나는 이 곳이 환-도-성에서 옥저에까지 달아났다가 돌아온 동천-왕이 환-도-성 대신 머무르기로 선택한 곳이라는 점입니다. 환도-성과 옥저, 곧 현재의 집안과 현 함흥을 잇는 선의 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곳이었겠죠.


왕검의 집을 왕험-성이 있던 곳이라고 하고서도 새로 성을 쌓기로 한 것은, 동천-왕의 시기 곧 3세기 중후반에는 보다 서 지어진 왕험-성을 성城이라고 여기지 않을 정도로 성의 개념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보다 앞서 왕검의 집이야 말할 것도 없겠죠. 흔적도 거의 없어지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왕검은 태백-산 꼭대기 단이라는 이름의 땅에서 태어났고 그 땅의 우두머리라는 뜻의 단-군을 호로 썼으니, 왕검의 집 있다고 하던 곳은 본래 단에서 멀지 않은 곳, 태백-산가까운 곳이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태백-산은 현재의 집안과 함흥을 잇는 선의 중간 가까이에 있었던 것이니, 압록-수 또한 여기에서 시작하는 물줄기 가운데 하나였을 것입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다른  또다른  있기는 하지만 일단은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나중에 필요하면 더 추가하고.)




다른 자료들을 살펴압록-수와 태백-산을 찾아내기에 앞서, 지막으로 아래 지도 둘이 어디 즈음에 있었을지 짐작해봅시다. 왼쪽 위 압록-강 물가에 붉은색 글씨로 만포라고 적힌 것, 그 건너편이 집안입니다. 그리고 오른쪽 아래 바닷가의 붉은색 글씨로 흥남이라고 적힌 에서 성천-강을 따라 올라가다가 첫번째로 만나는 붉은색 글씨로 적힌 곳이 함흥입니다. 자, 앞서 이해한 바에 따라 둘을 잇는 선의 중간 가까이에서 태백-산의 위치를 찾고, 여기서 흘러나와 압록-수가 되는 물줄기를 찾아봅시다.

 


과연 어디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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