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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쉬코쉬 Jul 06. 2024

파리에서의 프러포즈와 미셸 들라크루아 감상기

에펠탑, 센 강, 황금빛 불빛으로 가득한 낭만의 도시 파리

아침이다. 서늘한 공기에 눈이 떠져 커튼을 걷어보니 온 세상이 하얗다. 이만큼 눈이 펑펑 내렸던 적이 언제였을까. 창문을 열어보니 칼바람이 매서워 내 작은 눈마저 동그래진다.


어쨌든 여느 날과 다를 것은 없다. 쏟아지는 눈보라 통에 앞이 잘 보이지도 않지만. 오늘도 책 한 권을 들고 근처 카페로 향한다. 매일 걷는 길이지만 두툼하게 쌓인 눈을 밟으며 걸으니 뽀드득 소리에 내 기분이 몽글몽글해진다.


그래, 생각해 보니 곧 있으면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개업한 지 만 3 년이 되는구나. 하필 몰아치는 눈보라 속을 걷을 때 이런 생각이라니, 딱히 우연은 아니려나. 이만큼 비유적으로 잘 맞는 상황도 없을 것 같기도 하다. 힘들긴 해도 이른 아침에 책 한 권을 들고 카페로 향하는 이 여유만큼은 잃고 싶지 않다. (아직 살만하다는 건가)


나는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들고 창가에 앉아 대로변을 따라

바삐 흘러가는 자동차들을 멍하니 본다. 그때 신호에 멈춰 선 버스에 붙은 광고에 내 시선도 멈춘다.


“현존하는 최고의 파리지앵 화가 미셸 들라크루아”


그래, 나는 남들은 20 대에 가봤다는 유럽을 작년 10 월, 30 대 중반이 넘어서야 결혼을 핑계로 처음으로 가보게 됐다. 프랑스에서는 일주일을 머물렀는데 가기 전부터 주변에서

낭만의 도시라며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이 들어서인지 오히려 ‘오바는, 어디 한번 직접 보자’ 벼렀었다. 그러나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내가 받았던 감동만큼 정말이나 짧은

시간이었고, 그때의 경험은 현실로 돌아온 지금도 내게 여전히 영감을 주고 있다.


에펠탑, 센 강, 황금빛 불빛으로 가득한 낭만의 도시 파리. 처음으로 에펠탑을 마주한 순간은 더 이상 쉽사리 감동을 받지 않는 30대의 나로 하여금 63 빌딩을 처음으로 올려다봤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했고, 황금빛 불빛들이 일렁이는 파리의 야경은 적어도 한 여행자에게는 융숭한 대접을 받는 기분을 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렇지만 나에게 파리가 특별했던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미셸 들라크루아는 말했다.


“특히, 우리는 사랑에 빠졌을 때 파리에 가야 합니다. 꼭 사랑하는 사람과 파리에 오시 길 바랍니다.”


파리 여행 당시 나는 6 년 가까이 만나온 여자친구와 결혼을 한 달 정도 앞두고 있었고, 평소에 여자친구 가방 한번 들어주지 않는 온순하지 못한(?) 남자친구였지만 여자친구에 대한 사랑만큼은 누구보다 진실했다. 물론, ‘왜 남자만 프러포즈를 해야 돼? 나도 프러포즈받고 싶다!’라고 프러포즈는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기도 했지만.(장난이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앞으로도 우리가 오래 기억할만한 프러포즈를 하고 싶었는데, 유럽 여행 차에 파리에서 프러포즈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여행하는 내내 한국에서부터 몰래 준비해 온 프러포즈 목걸이를 분실하거나 도둑맞을까 봐 결전의 날까지 조마조마하며 애를 먹긴 했지만.


어쨌든 그날이 왔다.

우리는 여행 전에 예약한 스냅샷을 찍으러 에펠탑으로 갔고, 촬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사진작가는 사전에 서로 모의(?) 한대로 여자친구에게 눈을 감은 컨셉을 제안했고 순진한 여자친구는 눈을 감았다.


난 조용히 프러포즈 목걸이가 담긴 상자를 쥔 채 그녀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잠시 후 여자친구가 눈을 떴다. 우리는 서로 처음 경험하는 그 상황에 어쩔 줄 몰라했고, 믿기지 않게도 정말 잠시 동안 시간이 매우 천천히 흘러갔다. 우리는 서로 광대가 아플 정도로 웃었고, 또 눈물을 흘렸다. 미셸 들라크루아와 그의 작품들은 그렇게 우리 부부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 ‘벨 에포크’의 시작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해 줬다.


미셸 들라크루아의 그림들은 아련하고 섬세했다. 그는 자신이 표현하는 파리의 모습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파리에 대한 그의 인상이라고 했다. 그의 말이 인상적이어서 곱씹어보았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어떤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가 자신의 어렸을 적에 느낀 파리에 대한 인상을 표현한 것이기에 그림에서 느껴지는 아련함은 충분히 이해가 됐다. 그러나 섬세한 그 표현 속에서 작은 위화감이… 그게 뭔지 불확실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스쳤다. 그래, 그의 그림들은 너무도 섬세했다. 마치 실제 현장을 보고 그린 그림처럼.

‘설마, 그에게 있어 그가 그려낸 파리, 가족, 사랑… 그것들이 감히 내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했던 것인가?’ 그 소중한 애정이 작품의 섬세한 표현을 가능하게 한 이유라고 생각해보니 그제야 내가 느꼈던 위화감이 납득이 됐다. 90세가 넘은 지금도 그의 터치는 섬세하다. 그것은 여전히 그가 어린 시절을 얼마나 행복하게 느끼고 있는지, 그 기억들이 그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공감할 수 있게 한다. 나아가 어떤 작품은 선과 색의 구분을 뚜렷하게 표현한 데에 반해 어떤 작품은 약간은 흐릿한 터치로 표현을 했는데, 특히 밤에 눈이 쌓인 숲길을 세 가족이 걸어가며 아이가 업혀가는 작품에서 -아이를 어린 시절의 미셸을 표현한 것이라고 추정한다면- 그 흐릿한 표현은 업혀가는 아이의 눈으로 본 기억의 희미함을, 따스하게 쏟아지는 달빛의 표현은 비록 춥고 힘든 시기(1차 세계대전 후), 그 당시를 그리워하고 추억하는 작가의 아련함이 느껴졌다. 내게도 어릴 적 강원도 산골의 눈밭을 어머니의 등에 업혀갔던 따스한 기억이 있기에.


저녁이다. 낮에 전시관에 들어갔는데 벌써 어두워졌다. 밖은 서늘하고 온 세상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바람이 차갑지만 내 옆에는 여자친구였던 아내가 있고 우리만이 나눌 수 있는 추억이 미셸의 전시 덕분에 다시 꽃 피웠다. 아내에게 다시 한번 파리에 가보겠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전시를 보니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며 그러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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