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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쉬코쉬 Jul 14. 2024

고작 100m 거리의 아름다움(상)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거리가 아름다워지는 시간이 있습니다.

늦은 밤, 집 근처입니다. 집에 들어가는 길입니다. 도로에 다니는 차도 별로 없고, 도로 옆 지금 걷고 있는 널찍한 인도에도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이제는 이 거리를 ‘어느 정도’ 좋아하게 된 것 같습니다. 사실 ‘어느 정도’라는 표현은 ‘어떤 조건’이 충족 됐을 때를 염두해서 한 말 입니다만 그 조건은 주로 ‘시간’과 (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평일의 이른 아침(출근시간쯤)이나 일요일의 늦은 밤(자정쯤) 일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에 해당되는 시공간(時空間)을 더 좋아하긴 합니다.


궁금하지 않으실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이 거리에 대해서 먼저 설명을 드리지 않으면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힘드니깐요, 이 거리로 말씀드리자면 3차선 정도 되는 폭에, 거리는 100m 정도 될까요. 폭이 꽤 널찍하죠. 이 거리와 차로의 경계에는 은행나무들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줄지어 서 있는데 잎사귀들이 꽤나 무성한 편이어서 비나 눈이 올 때, 혹은 햇볕이 살갗을 찌르는 듯이 강하게 내리쬘 때 유용합니다. 아주 큰 우산 같아요. 물론 가을에 은행이 떨어질 즈음에는 냄새가 다소 지독합니다. 노랗게 물든 곳을 안 밟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녀야 해서 조금 고생스럽긴 합니다만 어찌 됐든 그것도 잠깐이니깐요. 그 반대쪽은 아파트 단지의 화단이 널찍하게 줄지어 있습니다. 화단은 약간은 투박하게 관리된 느낌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투박함 속에서 느껴지는 정감(情感)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화단에는 원추리, 맥문동, 철쭉, 장미 같은 것들이 다양하게 심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더 많은데 산골 출신인 제 어머니 정도 모셔와야 다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화단이 조금 널찍한 편이라 작은 식물들 외에도 큰 나무들이 자리할 공간들이 있는 편인데 아마 단풍나무들인 것 같아요. 은행 폭탄이 2배가 될 뻔했는데 항상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도 잠깐이겠지만요.


그 화단에 자리한 단풍나무들도 나름 큰 편이어서 이 거리는 양쪽에서 무성한 이파리들이 기분 좋게 감싸고 있습니다. 평일 이른 아침에 이 거리를 걸으면, 상쾌한 아침 햇살이 살랑살랑 흔들리는 잎사귀들 사이로 불규칙하게 쏟아집니다.


그 아래로 약간은 부은 듯한 얼굴로 출근하는 직장인들,

유치원 버스에 아장아장 걸음을 옮기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잘 다녀와! 파이팅!’하며 웃음을 보내는 학부모들,

책가방을 메고 가는 아이들. 어떤 아이는 씩씩하게, 또 어떤 아이는 느릿느릿하게(어지간히 가기 싫은 모양입니다) 등교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조금 대단한 것처럼 이 거리를 묘사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어디에나 있을 법한 거리입니다. 특별함을 찾으려고 해 봐도 좀처럼, 딱히… 찾을 수 없는 거리입니다. 심지어 거리도 100m 정도로 짧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조건이 충족된 그 시공간(時空間)에 들어가는 경험’은 아무리 생각해도 개인적으로는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 중 하나인 것 같고요.


나는 보통 그 거리를 지나 매일 카페에 들러 간단한 업무들을 보며 오전을 시작합니다만, 희한하게도 다시 돌아오는 그 거리는 더 이상 그 시공간이 아닙니다. 같은 거리지만 더 이상 아침에 걸어온 ‘그 거리’가 아닙니다. 생경할 정도로 말이죠. 그저 많은 자동차들이 지나다니면서 뿜어내는 매연과 열기(熱氣), 근처 구청에 볼 일을 보러 가는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만 ‘똑딱똑딱’ 거릴 뿐입니다.


아무래도 아침에 1분 정도만 열리는 다른 세계가 존재하는 것만 같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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