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간의 법관생활을 마감하기에 앞서 많은 분들과 소중한 만남을 가졌는데, 그 과정에서 동료법관들 및 연수원 제자들로부터 감동이 넘치는 귀한 퇴임선물을 받기도 하였다. 그런 가운데, 내가 받은 퇴임선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마지막 변론사건에서 50대 부부가 준 선물이다.
원고(50대 초반, 여)는 피고(50대 후반, 남)를 상대로 이혼, 위자료 1억 원, 재산분할 약 80억 원의 지급을 구하는 이혼 등 소송을 2021년 서울가정법원에 제기하였다. 이혼 원인은 주로 경제적인 문제였다. 피고가 원고와 상의도 없이 125억 상당의 상가건물 및 토지를 매도한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에 원고가 항의하자, 피고는 본인 명의 재산을 파는데 무슨 상관이냐며 욕설을 가하고, 소송을 해서 재산을 받아 갈 수 있으면 받아가라고 하였다. 이에 원고는 피고의 이러한 부당한 대우에 대해 더 이상 혼인생활을 유지할 의미가 없고, 피고의 부당한 재산처분에 대해 원고의 재산권을 보호받고자 한다면서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하였다.
피고는 원고와 이혼할 의사가 없고, 법률적으로도 원고가 주장하는 재판상 이혼원인은 없다고 주장하며, 원고와의 혼인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가사 부부간에 갈등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극복하고 약 25년간 이어져 온 원고와의 혼인생활을 지켜내고자 한다고 답변하였다.
상당기간의 소송절차를 거쳐 1심 법원은, 2022년 말 “원고와 피고는 이혼한다. 피고는 원고에게 위자료로 2,000만 원을 지급하고, 재산분할로 약 40억 원(원, 피고의 순재산 380억 원 중 원고의 비율을 30% 인정함)을 지급하라”는 취지의 판결을 선고하였다.
1심판결에 대하여, 원고는, 원심이 인정한 위자료 액수는 부당하게 과소하고, 재산분할에 대하여, 일부 재산이 분할대상에 포함되어야 하고, 원고의 가사와 양육, 시부모님에 대한 부양을 통한 기여, 부양적 요소 등을 고려하면 원고의 기여도는 50%가 넘는다고 주장하며 항소하였다. 한편 피고는, 혼인관계를 회복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원심의 이혼 결정에는 항소하지 않았고, 파탄원인이 대등하여 위자료 지급의무는 없고, 재산분할에 대하여, 피고의 여러 재산이 특유재산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원심이 인정한 비율은 원고의 기여도를 너무 높게 판단하여 부당하다며 항소하였다.
2심 계류 중 진행된 조정위원회 조정마저 불발된 후, 2023. 10. 6. 첫 변론기일이 진행되었는데, 별다른 진행할 사항이 없어 이제 더는 변론을 속행할 필요 없이 변론을 종결할 정도의 상태였다.
나는 변론기일 전 사건검토 과정에서 이 사건 이혼의 계기가 주로 경제적인 문제인 점, 원고가 결혼과정에서 피고가 기혼자라는 점을 알고 엄청난 어려움 가운데 시아버지의 지원과 설득 아래 결혼생활을 이어왔으며 자식들이 훌륭하게 장성한 점, 피고도 1심 이혼 판결 자체에는 항소하지 아니하였으나 조정과정에서 혼인유지의사를 비친 점, 1심에서 원고의 반대로 부부상담이 이루어지지 아니하였고 원고가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점 등을 깊게 숙고한 후 재결합을 통한 화해를 변론종결 전에 시도함이 좋겠다는 판단을 하였다.
첫 변론기일에, 나는 피고 본인이 아직 혼인유지의사가 있는 것을 말하면서 원고 본인에게 이제 사실심의 마지막 단계까지 왔는데 그동안 부부 상담을 한 번도 안 받아보았으니 마지막으로 기도하면서 부부상담을 받아보라고 권유하였다. 원고는 처음에는 부부 상담을 받는 걸 거부하였으나 거듭된 권유에 그럼 자신의 명의로 된 부동산에 대한 월세를 제대로 받지 못하여 생활이 안 된다고 하면서 생활비 포함 최소 1,000만 원을 부부 상담기간 받을 수 있다면 응할 의사가 있다고 하였고, 피고도 동의하였다. 우리는 사전처분으로 피고가 원고에게 월 1,000만 원 상당을 사건이 종결될 때까지 지급하는 결정을 하고, 부부 상담조치 명령을 하였다.
그로부터 두 달 정도 후인 2023. 12. 12. “원고, 피고는 상담을 진행하면서는 다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며 개선의 여지를 찾기 힘들어 보이기도 했던 것 같으나, 최종적으로는 소취하 후 재결합을 준비 중으로 보인다”는 요지의 상담결과가 도착하였다. 원고는 부부상담을 받으라는 재판장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겨 받게 되었다는 놀라운 말을 부부상담과정에서 밝히기도 하였고, 상담이 진행되면서 원, 피고가 자신을 돌아보고 서로 오해를 풀어가고 있었다.
위와 같이 상담의 효과가 있어 구체적인 합의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당사자들이 구체적으로 알아서 합의에 이르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였다. 나는 당사자들에게 재판부의 중재가 필요하면 변론기일이든 조정기일이든 기일지정신청을 하도록 하였다. 그로부터 한 달후인 2024. 1. 11. 피고가 변론기일을 지정할 것을 요청하였고, 나는 퇴임 전 사실상 마지막 변론기일을 2024. 2. 2. 14:10으로 지정하였다.
그런데, 2024. 1. 29. 원고는 ‘위 사건에 관하여 원고와 피고 간 혼인을 유지하고 피고가 원고에게 일부 재산을 이전하는 내용의 합의가 이루어졌다’면서, 그 내용에 따라 화해권고를 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다. 사실상 원고와 피고가 합의에 이른 것이다.
나는 당사자가 어렵게 재결합하기로 합의했으나 이를 지속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당사자가 합의한 사항에 아래와 같은 내용을 추가하여 화해권고결정을 하였다.
“원고와 피고는, 매일 각자 감사일기를 쓰고, 매주 1회 이상 운동 등 취미생활 또는 종교활동을 함께 하며, 매년 1회 이상 봉사활동에 함께 참여하도록 노력한다.”
원, 피고는 화해권고결정을 송달받은 후 곧바로 이의신청포기서를 제출하여 사건이 완전히 마무리되었다. 1심에서 이혼판결이 된 사건을 2심에서 다시 부부 상담을 거쳐 재결합에 이르기는 상당히 어렵다. 다행히 기독교 신자인 원고가 마음을 열어 부부 상담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피고가 진심으로 혼인유지의사를 보여서 어렵게 사건을 재결합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퇴임을 앞두고 부부가 다시 재결합하게 되어 너무 감사한 일이고 평생 잊지 못할 큰 퇴임선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