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나는 영화도 좋아하지만, 영화 ‘포스터’도 무척 좋아한다. 당신은 어떤가?
어린 시절 자신 있게 취미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행동은, 영화 포스터 모으기 뿐이었다. 늘 2장 이상의 포스터를 꾸기지 않도록 조심히 들고 집에 왔다. 극장에서 바로 집에 가지 않고, 식당이라도 들리는 날이면, 포스터에 작은 얼룩도 묻지 않도록 주변을 깨끗이 하고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너무 갖고 싶은 포스터가 있을 때에는, 영화관에 전화를 걸어 포스터가 들어왔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부모님을 설득해 차를 타고 집에서 먼 영화관으로 포스터를 가지러 갔다. 가끔은 보지 않은 영화의 포스터도 챙겼다. 그냥 그렇게 어떤 포스터든 수집하는 그 순간이 좋았다. 그렇게 소중히 가져온 포스터는 클리어 파일에 보관했다. 60장 정도 모은 포스터는 여전히 수납장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두고두고 파일을 열어보며 포스터에 적힌 글자를 모두 읽곤 했다. 포스터를 보며 영화를 보기 전, 보는 중, 본 후의 나를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그때의 행복했던 기분이 온전히 다시 나를 찾아왔으니까.
그렇게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취미가 잠시 멈췄던 적이 있다. 영화도 잘 보지 않았다.
그러나 여유가 생긴 지금, 나는 당연하게도 영화관을 찾아갔고 영화관을 나오는 순간 당연하게도 내 손에 쥐어진 건 그날 본 영화의 포스터였다. 원하는 포스터를 받기 위해 SNS를 확인하고 한 번 보았던 영화를 다시 예매하는 순간 깨달았다. 내가 영화를, 그리고 영화 포스터를 좋아한다는 것을.
누군가는 포스터를 영화 장면을 담은 한 장의 종이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너무 좋지만 잡을 수도, 끌어안을 수도 없는 영화를 대신해 그 영화의 포스터를 끌어안고 소중히 간직한다. 영화 포스터는 나와 영화의 연결이며, 영화에 대한 내 사랑의 증거다. 그리고 내 사랑을 증명하는 그 증거도 나는 사랑한다.
최근 다시 샘솟기 시작한 이 사랑을, 이제는 더 적극적으로 표현해보려 한다. 영화와 영화 포스터에 대해 나와 같은 형태의 사랑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랑을 같이 즐기고 싶다. 다른 형태의 사랑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랑을 배우고 싶고 느껴보고 싶다.
나의 사랑에 대한 창구로서 운영할 이 브런치가 또 다른 누군가의 창구가 되길 바라며, 브런치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