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드뎌 고등학교 졸업했어요
나는 상업고등학교를 나왔다.
주산, 부기, 타자...이 삼총사를 섭렵하는 자! 취업의 문이 활짝 열리리라..
광주에서 가장 유명한 광주여자상업고등학교!
인문계 갈 실력은 되지만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또는 다른 가슴 아픈 사연 등등으로 어쩔 수 없이 진학하게 되는 학교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왕복 3시간이 훌쩍 넘는다.
그래도 그땐 힘들어도 그냥 묵묵히 다녔다. 어쩔수 없었으니깐...새벽 등교에 야밤 귀가에..
내 체력은 바닥났고 제때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으니 변비를 달고 살았다.
그럼에도 왜 그 먼 학교로 진학을 했냐고?
새아빠가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반대했으니깐. 친엄마인 울엄마도 은근 빨리 취업해 돈벌어다 주기를 바랬으니까...
그래! 돈 벌어서 이 지옥같은 집에서 멋지게 탈출해 주겠어.

고등학교 3학년 올라가자마자 제일 먼저 취업을 나갔다.
전교 1등했냐고 물으신다면? 그건 경기도 오산!! ㅋㅋㅋㅋ
전교 1등, 2등 하는 애들은 sk그룹이나 쌍용, 삼성 등등에서 서둘러 합격시킨 뒤 3학년까지 온전히 다 마칠수 있도록 학비까지 대주며 마음 놓고 공부하고 올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 역시 대기업은 달라달랏!
내가 취업한 곳은 건설교통부 산하 기관이었는데 인원이 부족해 서둘러 데려갔다. 그것도 3학년 올라가자마자!!
그래서 난 졸업여행을 못갔다.
졸업식도 근무하다가 잠깐 짬내서 얼른 졸업장만 받고 업무에 복귀해야 했다.
짜장면 한 그릇 못먹고..서러웠다.
친구들이 졸업여행 가서 나란히 열맞춰 찍은 단체사진이 왜이리 부럽던지..
친구들 놀러갈 때 교복입고 직장에서 근무했던 그날을 나는 아직 잊지 못한다.
그래서 공무원 시험도 최종합격한 마당에 떠나보기로 했다.
고등학교 졸업여행!! (소리질러~~~)

장소는 설악산!
광주광역시에서 설악산 국립공원까지는 최소 5시간 반 거리!
멀어서 엄두가 안나는 거리지만 그래도 좋았다. 친구들 공부할 때 돈버느라 못갔던 내 고등학교 졸업여행!
나이 40이 넘어서 이제야 가보는 구나!! 얏호!!
새벽부터 서둘렀음에도 휴게소 들르고 어쩌고 하니 설악산 입구까지 오는데 7시간이 넘게 걸렸다.
아이고 허리야~엉덩이야~
역시 여행은 젊을 때 댕겨야 하는데...
오후 늦게 도착한 터라 등산은 어렵겠고 게다가 비까지 와서 케이블카 운행은 할라나?
역시!! 하늘은 이쁜 자(접니다!ㅋ)를 돕는구나~럭키비키! ㅋㅋ
케이블카 탑승 완료!! 안개로 인해 전망이 좋지 않다고 방송에 나왔지만
대박!! 이렇게나 신선이 된 듯한 비경에 절경에 장관이 눈 앞에 펼쳐지는데
그 쬐끔 흐리다고 내가 볼멘소리할 쏘냣!!
어떻게 온 내 졸업여행인뎁!!
요기 앞에서 친구들이 일렬로 서서 사진 찍었던데...
나도 한번 찰칵!
첫 날은 이렇게 마무리했다.
어렵게 간 여행에서 비가 온다고 너무 짜증내거나 안타까워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다음 날은 폭우가 내리칠지 모르니 지금 이순간을 즐기세요! 그게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닷!
다음 날! 폭우가 내렸다
어제 케이블카 탄 게 얼마나 다행이던지 ㅋㅋㅋ
오늘 오신 분들은 케이블카 타도 안개가 너무 자욱해 어제 만큼의 절경은 보이지 않을 듯 싶은데...
그럼 비옷을 준비해 볼까나?
우산을 써도 우산 안으로 비가 샐 정도의 폭우이니 우비 쓰고 우산까지 써보지 뭐..
그래도 참 신기했던 게 있다.
궂은 날씨에 속상하고 아쉬웠을 법 한데 오늘 설악산 오신 분들은 거의 대부분
꺄르르~까르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냥 아무렇지 않게 등산을 하는 모습에 또하나 배워간다.
내리는 비를 어찌하겠는가..
내 마음이 즐거우면 맑음이요 짜증 한가득이면 천둥번개 폭우 속이지... 암만!!
웅덩이가 생기고 계곡이 넘쳐날 정도로 비가 쏟아져도 어떻게 온 내 졸업여행인데...
기쁜 맘으로 올라가보즈아!
흔들바위가 굴러떨어졌다는 깜짝뉴스가 잊을만하면 한 번씩 들리던데
잘 있나 함 보러 가볼까?ㅋㅋ
다행히 흔들바위 보러가는 길에 있는 돌들은 이상하리만큼 미끄럽지 않았다. 워낙 사람들이 많아 이끼마저 낄 시간이 없던걸까?
윽!! 계단!!!
아흑! 돌계단!!
신발은 다 젖고 아~ 힘들다 할 때 쯤!
짜잔!!
나 잘 있다!!! 라고 말해주는 흔들바위 등장이오~
진짜 흔들바위인가 살짝 터치해봤는데 꿈쩍도 안하는 것이 향후 한 100년 넘게는 너끈히 건재할 듯하다.
안심 안심!!
그럼 이제! 흔들바위도 봤고 폭우가 더 내리치기 전에
하산을 준비해볼까?
이렇게 많이 늦은 내 고등학교 졸업여행은 끝이났다.
너무 오래 걸려 왔고 진짜로 오래걸려서(왕복 14시간)
다시 올랑가는 미지수지만
오늘 저는 고등학교를 온전히 졸업했으니 마음에 있던 그동안의 응어리와 설움은 전부 나가는 길에 버리고 가겠습니다.
그래도 맑은 하늘은 쬐끔 보여주시지~~
오늘 못 보여준 빛나는 하늘!! 살면서 가끔씩은 보여주실거죠??
기대잔뜩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