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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그렇게 힘드냐는 회사 선배님께

by 글쓰는 워킹맘


뭐가 그렇게 힘들어? 너도 힘들겠지만
나도 너무 힘들어.


출처 : https://www.pexels.com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중증 우울증 진단을 받고 나서 내 이야기를 잠시 들어준 선배가 있었다. 처음엔 굉장히 공감하고 잘 들어주는 듯했지만, 이내 본색을 드러냈다. 본인도 업무에 시달려 속병이 나 고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 스스로를 부정하느라 먹지도 못하고, 잠들지도 못하는 내게 그는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정도 힘든 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힘듦이 가장 큰 문제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이해하는 척하기는 쉽다. 그런데 가끔은 그렇게라 이해하는 '척'이라도 해주면 다행이겠다 싶은 경우도 생긴다. 이 선배의 경우가 딱 그랬다. 척하는 게 싫다면 모르는 척해주는 게 고마웠을 텐데. 마음이 무너진 상태에서 그런 말은 큰 상처가 됐다. 쿨하게 무시하고 싶었지만 잘 안 됐다. 우울증 환자에게 '나도 힘들다'는 말은 공감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타인의 힘듦에 내 책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나쁘다. 그 선배는 옳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나 네가 하는 일 하고 싶어.
그러니 내 일 좀 맡아줘.


회사에서 팀 내 업무분장 권한은 부서장에게 있다. 팀원끼리는 서로 논의, 협의할 여지는 있다. 특수한 경우에 그렇다. 누군가 자리를 비우면 누구라도 그 일을 잠시 맡아야 하니까. 그런데 내가 우울증 약을 먹기 시작했던 때부터 그는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마치 떼쓰는 어린아이처럼 자신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달라는 것 같았다. 참기 힘들었지만 그냥 참았다. 누군가와 날을 세우고, 신경전을 벌이는 일조차 우울증 환자에게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을 같이 하자거나 대신 맡아달라고 할 때마다 거듭 거절했다. 내 업무도 겨우겨우 하고 있는 터라, 그 정도의 여유조차 없다. 그런데도 그의 요구는 멈출 줄 몰랐다. 크게 반응하지 않고 무시하기 시작했더니 이젠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그거, 직장 내 괴롭힘이야.'라고 한다. 나는 아직 다툼이나 구설 사이에 서 있기 힘들다.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내 마음이 회복 불능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어서다.


자꾸 왜 그러세요,
업무는 팀장님과 이야기하세요.


참는 데 한계에 이르렀다. 이제 팀장님께 보고하고, 분명히 선을 그을 예정이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도망가고 싶어진다. 누군가와 신경전을 벌이고 싶지 않다. 회사 생활하면서 내 목소리를 분명히 낼 수 없다면 정말 힘들어지는데, 나는 나약해져 간다. 뭐가 그렇게 힘드냐 말하는 그는, 우울증은 우울증이고, 회사 일은 일이지!라고 말할 것만 같다. 나는 언제쯤 단단해질까. 누가 뭐라 하든 말든 쿨하게 쌩~하는 날은 언제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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