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의 시작은 눈으로부터!
아니다!
노화의 시작은 마음으로부터다.
나이 들었다고 인정하는 순간 그렇게 되는 것이다.
책 읽기가 힘들어졌다.
처음엔 유튜브나 전자책에 익숙해져서 집중력이 짧아진 줄 알았다.
십 대 아이들도 아니고 짧은 영상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나를
책망하며 억지로 휴대전화를 멀리하려 노력했다.
그럴수록 더 궁금해지고 보고 싶어지는 것은 먹은 나이와는 상관없는 듯하다.
어느 순간부터 휴대전화 메시지 글씨가 잘 안 보인다.
나도 모르게 양쪽 입꼬리는 아래로 내리고, 반대로 눈은 위로 크게 추켜올려
전화와의 거리를 30센티미터 유지한다.
그 모양새가 꼭 우리 외할머니다.
난 엄마와 많이 닮았고, 엄만 외할머니 판박이다.
휴대전화의 글씨 크기를 확대시키는 건 자존심의 문제다.
메시지 글자의 크기는 최소를 유지해야 한다.
자기 전 침대 위에서의 독서는 눈의 노화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니어야 한다.
단지, 무리한 업무로 눈의 피로가 쌓여서 인 거여야 만 한다.
장마철인 요즘은 흐린 날씨 탓에 시야가 더 어둡다.
"에이! 못 참겠다. 시답잖은 자존심!"
퇴근 후, 바로 안경점으로 향한다.
상가 문을 호기롭게 열고 발을 들이밀면서 손님이 없어 TV만 보고 있는 안경사에게 말한다.
"돋보기 하러 왔어요"
시력 검사, 안경테 고르기, 안경알 만들어지는 20분 대기, 결재, 일사천리로
내 자존심은 버려졌다.
돋보기를 쓰고 보니 책 속의 글자가 선명하다.
무엇을 인정하기 싫어서 미간을 찌푸리며 힘들게 책을 읽었을까.
'미련했구나!'
안경사는 주의 사항을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장시간 쓰고 계시면 안 돼요. 20분 사용 후에는 반드시 멀리 보기 5분 정도 해 주세요.
오래 쓰고 계시면 점점 더 노화가 빨라져요"
"네, 알겠습니다"
돋보기라는 도구가 생기니 글 읽는 게 더 재미있다.
흔들리지 않고 보이는 글씨체가 이리 예쁜데, 뭘 더 바랄까.
선명한 글씨를 보니 행복하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느껴보지 못한 행복을
잃고 나서야 알게 될까?
이 모든 평범함에 감사해야 한다.
흐르는 시간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래, 나 반백이다. 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