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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연 Aug 01. 2024

비싼 똥 사진

똥을 찍었네!

2022년 가을



한창 바쁜 오후시간엔 전화를 잘 받지 못한다.

잠시 틈을 만들어 확인해 보니 딸에게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와 있다. 

카톡 메시지도 함께


서둘러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해본다.

"엄마, 지금 나 병원이야. 학교에서 택시 타고 왔어

 맹장 같아 허리를 펼 수 없을 정도로 아파."

아이는 말할 힘도 없는 것 같았다.

심상치 않은 목소리에 순간 목덜미가 서늘해진다.

"진료는 받았어?"

"아니, 아직 대기 중. 엄마 못 오지?"

가고 싶은 맘은 굴뚝같고, 수업에 집중도 안 되었지만 이번 타임은 마무리해야 한다.

"곧 갈게. 의사 선생님이 시키는 거 다 해"



딸아이는 독립심이 강하고 남들에게 약한 모습 보이는 걸 싫어한다.

부모에게 조차도.

그런 아이가 엄마가 오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는 건 지금 많이 겁먹고 있다는 뜻이다.

말은 곧 가겠다고 했지만 병원에 도착했을 땐 시간이 꽤 지나

모든 검사가 다 끝나 있었다.



내과 대기실 의자에 앉아 두 무릎 사이에 양팔을 교차하여 얹어 놓고

그 위에 이마를 대고 구겨져 있는 아이가 보인다.

'진짜 많이 아픈가 보네'

아이 옆에  앉으며 묻는다.

"결과 들었어?"

"아니, 아직 나 안 불렀어. 선생님이 맹장 일수도 있고, 복막염 일수도 있다고 해서 

 CT랑 피검사했는데 결과 안 좋으면 MRI도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어"

아픈 아이 걱정은 걱정이고, 한편으론 CT까지 찍었다고 하니 아이 혼자 왔다고 

과잉진료 한건 아닐까 의구심도 들었다.



아이의 이름이 불린다.

긴장 모드 장착하고 진료실로 들어간다.

나이가 있어 보이지만 다부진 얼굴에 목소리 걸걸한 노령의 의사가 

아이를 보자마자 말씀하신다.

"똥이 가슴까지 차 있어"

"네?"  

내가 크게 웃었다

아이는 민망한 듯 나와 선생님을 번갈아 본다.

너무 크게 웃어버린 나를 질책하는 딸아이의 눈빛에 바로 표정관리한다.

환자 경험이 많은 의사는 아이의 식습관과 생활 태도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시곤 

한 달 치 변비약을 처방해 준다.

"피검사 결과 내일 들으러 와요. 별 문제없을 것 같지만 

 인스턴트 많이 먹지 말고 아침은 꼭 먹고"

아이에게 한 말이지만 내 뒤통수가 뜨끔 한건 잘 챙겨주지 못하는 죄책감 때문인가.


진료실을 나와 아이에게 한 마디 한다.

"똥을 CT 찍었네. 똥 사진 비싸다."

아이는 아직 아픈 배를 붙잡고 허리는 굽힌 채 나와 마주 보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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