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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 Aug 22. 2024

그리움을 살 수 있다면

엄마와 딸 그리고 나도샤프란의 추억

    

  태풍처럼 요란한 비바람이 밤새 몰아치고 사라졌다. 한적한 휴일 오후다. 나무들은 간밤의 비바람에 말갛게 씻겨 파릇한 향기를 뿜는다. 나무줄기 사이로 돌아온 철새들이 앉았다. 종다리와 박새와 할미새가 재잘거린다. 섬 휘파람새의 맑고 청아한 노래 소리가 정원을 가득 채운다. 성큼 다가온 봄이다.

  

  당근마켓을 보고 꽃 사러 왔다며 40초반의 여인이 말을 건넨다.

  

  "나도샤프란 있어요?"

  "아 네 있지요."


  꽃들 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나도샤프란을 찾아 안내하였다. 어디서 오셨냐 물으니 제주시 연동에서 왔단다. 선흘리에서 차로 35분정도 소요되는 거리이다. 제주사람들은 차로 10분이 넘어가는 거리는 멀게 생각한다. 이곳까지 꽃을 사러 온 이유가 궁금해졌다.

 

  “이 꽃 이름을 아는 분들이 많지 않은데 잘 아시네요.”

  "나도샤프란을 사려고 여기저기 찾아 봤는데 여기 밖에 없더라구요."

  "촌집에는 더러 있지만 파는 곳은 많지 않을 거에요"

  "네 어렵게 찾았어요"

  "나도샤프란을 좋아 하시나봐요."

  "어릴적 촌집 마당에서 보던 거라서요."


  나도샤프란은 제주의 민가에서는 심심치 않게 보이던 식물이다. 그녀는 중학생인 딸아이와 함께 왔는데 차에서 내리지 않는다며 계면쩍은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빌라에 사는데 내년에는 단독주택으로 이사할 것 이거든요."

  "그러면 화분에 키우셔야 되겠네요."

  "네 그러려구요."

  "화분에 어떻게 키워야 돼요?"

  "봄, 가을에는 겉흙이 마르면 물을 흠뻑 주시구요. 여름에는 아침 일찍이나 해질녁에, 겨울에는 낮에 주시면 돼요."

  "꽃들이 많네요. 나중에 꼭 다시 올께요."

  "네 잘 키워보세요."

 

  식물을 직접 키워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화분에 심어 베란다에서 키워야 할 것이다. 이꽃을 간절히 찾은 이유는, 아마도 그녀 자신의 모습과 닮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어서야 부모님이 몹시 그리운 게 아닐까. 삼복더위에 일구던 우영팟(채마밭)에서, 구슬땀 흐를제 울담 아래  하얗게 피어나던 꽃. 부모님의 젊은날은 그렇게 기억되었을 것이다.


  그녀의 신변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부모님이 몹시 그리울 때는 일상적이지  않은 괴로운 날이기 쉬우니...


  새 봄이 오면 그녀는 딸아이와 함께 화단에 나도샤프란을 심겠지. 이 봄이 시들고, 더위와 쓸쓸한 바람과 추위를 지나, 다시 생기 품고 올 봄을 기다리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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