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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저미생 Sep 29. 2024

#2 불안함의 시작 : 승진 대상자의 임신

무엇 때문에 그리 과장이 되고 싶었을까

지금 일어나고 있는 마음속 불꽃의 근원은 나 자신조차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짐작 가는 것은, 2020년 임신 후 승진 누락으로 인한 분노가 하나의 땔감이 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과장이 되는게 그 때의 나에게 어떤 의미였기에 그렇게 까지 했을까.

과장이 된 후에도, 이렇게 회사생활은 늘 고민과 불만족의 연속인데,

좀 더 만족할 만한 회사생활을 찾아보겠다며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내가 어쩌면 제일 미련한 게 아닌가 싶다.


2020년 그 해는 나에게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나 힘든 해였다.

승진 시기를 피하기 위해, 2019년 중순부터 임신을 준비했지만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잦은 출장, 야근, 일정 압박.. 회사는 임신하기 그리 편안하고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남편과 협의하여 한 해라도 더 나이 들기 전에 아이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으로 아이를 최우선에 두고 준비했다.


그렇게 2020년 5월, 아이가 찾아온 것을 확인했다.

기뻤다. 하지만 그 감정이 내가 느낀 첫 감정은 아니었다.

아직 내 눈앞에 없는 아이를 뱃속에 품고 처음 들었던 생각은 "아 승진 어쩌지..."였다.

그래도 해 보면 될 거라 생각했다. 내가 들고 있는 과제는 그 해 팀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였으니까.

나를 위해 차려진 이 밥상을 누가 걷어차지 않는 이상, 고과는 따 놓은 당상이라는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불안했다.

그 당시 나의 그룹장은 50대 여성 상무셨다. 결혼은 하셨지만 아이는 없었다. 이가 없는 것이 삶의 유일한 아쉬움이라고 하시던 분이다.

그 아쉬움이 이해심으로 발전하진 못했는지, 그분이 회사에서 워킹맘을 대하던 태도는 한결같이 싸늘했고, 나는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 분위기를 느껴왔다.

그 분은 아이가 고열이 난다고 어린이집 전화를 받으며 뛰어나가는 여자 부장님의 뒤통수에 "애 가진 게 뭐 대수라고 저런담?"이라는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꽂았다.

그룹장의 막말과 하대는 인사팀에서 고과 평가에 "모성 보호자 존중, 일과 가정 양립을 위한 문화 조성 노력"이라는 항목을 넣은 후에야 잠잠해졌다.

이런 그룹장 밑에서 과연 임신한 내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7개월 내내 불안했다.


그 시기, 코로나19도 창궐하기 시작했다.

계절이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며 날은 점점 더워지고, 배가 불러오며 숨쉬기가 너무 힘들었다.

가만히 있어도 힘든데, 코로나로부터 나와 아이를 지키기 위해 KF94 마스크까지 착용했다. (그 당시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가 나올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숨을 쉴 때 마다 더워지던 마스크 속 공기는 아직도 그 느낌이 생생하다.

말 한마디 뱉을 때마다 숨이 넘어갈 것 같았고, 입덧까지 심해지며 그룹 미팅을 하다 구역질을 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관 부서 분들이 나를 너무 안쓰럽게 보시며 배려해 주시려고 애써주셨는데,

그땐 그런 시선조차 '승진 앞두고 임신해서 이게 뭔 고생이니' 하며 나를 불쌍하게 보는 것 같아 싫었다.


계약 체결 일정이 다가오면서 업무 강도는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수준에 다다르고 있었다.

모성 보호 제도가 존재했고, 파트장도 배려해 주기 위해 노력했지만, 현실적인 업무량은 8시간 안에 끝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승진만 아니라면 휴직계를 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 게 너무 아까웠기에 조금만 더 버텨보자 싶었다.

승진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뱃속에 아이를 품고 하루 9시간 넘는 시간을 파트너, 유관부서와 전화, 화상 미팅을 하며 계약을 체결할 날이 오기만을 바랬다.

어찌어찌 시간은 흘렀고, 2020년 9월, 나는 두 건을 큰 계약을 마치고, 서비스를 론칭하며 비로소 2년 간의 프로젝트로부터 해방되었다.

고과는 따놓은 당상이니까, 평가 기간인 12월까지 재직만 한다면 승은 문제없을 거라는 안도감이 생겼다.


이제 조금 숨을 고르며 편안하게 다녀볼까 싶었다.

과장이 되어 보겠다고, 뱃속의 아이에게 그 흔한 태교 한 번 해주지 못했다.

아이와 나의 건강만을 생각하며, 순조로운 출산을 준비 할 생각에 설렜다.


하지만 출산을 준비하는 설렘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임신 기간 동안 마음속에 품었던 승진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을까.

뱃속의 아이와 나는 또 다른 고군분투를 시작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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