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주제로 전에도 한번 블로그에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 글을 가져다 올릴까 고민하다가 결국, 다시 쓰게 됐다. ‘인생’이라는 주제는 내게 너무나 어려워서 어떤 글을 써도 마음에 들 자신이 없어서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주절대는 에세이보다 마구 상상하는 소설이 더 쓰기 쉽게 느껴지는데 ‘인생’을 놓고 하는 상상은 도대체가 떠오르질 않는다. 어떤 이야기를 꺼내놓을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내가 인생에서 힘든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하는 ‘만약에’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살면서 봐왔던 영화, 드라마, 그 외에도 많은 책에서 시간을 되돌린다던가, 과거의 사건을 뒤바꾼다든가 하는 인간으로서 감히 가질 수 없는 선택들을 경험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거기서 착안한 자기 세뇌 방식인 ‘만약에’로 인생의 역경을 흘려보낼 때가 많았다.
내가 하는 자기 세뇌 방식 ‘만약에’는 보통 이런 식이다. ‘만약에’ 내가 주식투자로 100억을 잃었다(100억 안 잃었음, 잃을 100억 없음)면? 사실 내게는 100억을 잃기 전에 재산탕진보다 더 큰 사건이 있었고, 과거의 내가 시간을 되돌리거나, 이미 흐른 과거를 바꾸어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차선책인 100억을 잃는 선택을 스스로 한 후 다시 현재로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큰 병 걸리기 VS 100억 잃기 두 후보가 있다면 누구나 100억 잃기를 선택했을 테고 나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100억 잃기를 선택한 현재를 감내해야 할 뿐이다.
이 ‘만약에’ 자기 세뇌 방법은 어디에서든 언제든, 어떤 사건에든 통한다. 평소 생각이 많고 깊어서 한가지 생각에 꽂히면 남들보다 자신을 괴롭히는 나로서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난무하는 인생에서 내가 나에게 덜 상처받으며 살아남기 위해 생각해 낸 방법이다. 인간은 힘이 들면 신을 찾게 된다는데 내가 여전히 어떤 신도 믿지 않는 이유는 종교처럼 스스로 합리화하는 자기 세뇌능력 ‘만약에’가 강해서 아닐까?
우리 모두는 내가 아닌 남으로부터 신뢰와 사랑, 위로를 바라지만 사실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나니까 내가 원하는 방식과 언어로 나를 믿어주고, 사랑해주고, 위로해주고, 응원해주는 삶이 필요하다. 그게 자기합리화든 세뇌든 내가 나를 다독여 다시 일으킬 수만 있다면 조금 유별나고 우스꽝스러워도 괜찮다.
나같이 까탈스러운 애는 수긍할 수 있는 근거가 있어야 사건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 인생은 그렇게 따박따박 논리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사실 평생을 살아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가득하고 내가 아닌 상대의 마음을 나만의 논리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법이니 시간여행까지 들먹이며 굉장히 논리적인 ‘척’ 하는 ‘만약에’로 나를 설득하는 것이다. 맛있는 거 사줄 테니 화 풀라며 어르는 어른처럼.
나는 그럼 못 이기는 척, 그 ‘만약에’를 진실이라 타협하고 시간을 흘려보낸다. 지나고 나면 참 어이없게 흐른 그 시간이 그때는 왜이리 힘들었는지. 그래도 흘려보내기만 할 수 있다면 뭐든!!!!!! 나는 자기합리화로 버무려진 이 시간들이 싫지 않다. 오히려 이렇게나 안간힘을 쓰는 내가 안쓰럽고 대견하다. 내 인생 내가 제일 응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