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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단 Jul 08. 2024

3월

오매불망 기다렸던 겨울방학의 끝자락이자 본격적으로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방학식 날 집에 돌아와 던져놓은 그대로 몇 개월째 닫혀있던 딸아이의 가방을 열어본다. 개학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아이들 몫의 방학 숙제를 챙기는 것도 결국 엄마의 일이 된다.

자식이 둘이니 2회 차 엄마가 되어가는 나는 불혹이 넘은 어른이지만 최대한 천진난만하려 노력하며 철부지 아이인 척 숙제하는 스킬이 늘었다. 아직 중학생도 채 되지 않은 아이들의 학습 성적보다는 인성을 더 중시하는 이번 담임선생님은 겨울방학 숙제로 ‘새롭게 배우고 싶은 것 찾아오기’를 내주셨다.

‘새롭게 배우고 싶은 것’이라……. 아이의 관점에서 생각해 내야만 하는데 문득, 내가 새롭게 배우고 싶은 게 있었던가 싶어 잠시 생각에 빠진다. 내 나이 사십이 넘었는데 과연 무언가를 새롭게 배우고 시작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앞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다. 그러면서도 내심 마음속에 붕 떠오르는 한 가지가 있다.

<자전거 타기>

나는 몸도 나이도 어른이 됐지만, 아직도 두 발자전거를 타지 못한다. 새처럼 나비처럼 훨훨 날 순 없어도 자전거를 타며 쌩쌩 내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참 자유롭게 느껴져 부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아이들에게 ‘탈 수 있을 때 많이 즐기라’며 지나가곤 했는데 늦지 않은 걸까. 나도 할 수 있을까, 사십 대에 우당탕 넘어져도 괜찮은 걸까, 자전거는 가르쳐주는 학원도 없는데 어디 가서 누구에게 배워야 할지 대책 없는 설렘과 쓸데없는 걱정이 함께 피어오른다. 냉큼 무거운 몸을 움직여 베란다에 놓인 아이들 자전거에 앉아 본다. 맞다. 나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시작부터 하는 사람이었다. 원래는 그랬었다.

아무리 그래도 아이들 자전거는 터무니없이 작아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당근마켓 어플을 켠다. 쓸만한 자전거가 눈에 띄지 않아 키워드 알림에 ‘자전거’를 추가해 놓고 저녁 장거리를 보러 간다. 집 앞 마트까지 걸어가면서 나중에 이 길을 자전거 타고 와 볼 생각을 하니 콧노래가 나온다. 아직 이렇다 할 나만의 자전거도 없으면서 마음은 저 멀리까지 내달리고 있나 보다.

나는 그날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까지 중고 자전거를 뒤지다 칠만 원에 새카만 녀석을 데려왔다. 탈탈거리며 돌아가는 페달음이 썩 내키지는 않지만, 정을 붙여보련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 간식을 바삐 챙겨 먹이고 학원 차에 실어 보낸 후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전 대략 1시간 정도, 이때가 아니면 자전거는 쳐다볼 겨를도 나질 않는다. 운전면허처럼 자전거도 가르쳐주는 학원이 있으면 좋으련만 그럴 리 만무하고, 동호회에 가입하자니 너무 부담된다. 결국, 타지도 못하는 자전거를 혼자 끌고 공터에 나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유튜브에 자전거 타는 방법을 검색하는 것뿐이라 집안일하는 내내 틀어 둔 영상으로 이론만 빠삭하게 되뇌다 나왔는데 안장에 오르니 덜컥 겁이 난다. 아직 넘어지지도 않았는데 후회가 밀려온다. 내가 어쩌자고 자전거를 타겠다는 건지. 사실 자전거를 타게 된다 한들 바뀌는 건 없다. 집안일에 아이들까지 챙기느라 자전거를 탈 여유라곤 없고 집 앞 마트도 가까워 굳이 자전거를 타면서까지 이동시간을 단축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들이 머리를 채워가자 안 되겠다 싶어 냅다 몸을 먼저 움직였다. 유튜브에서는 한쪽 발을 페달에 올려놓고 다른 발로 밀어서 출발하라고 하던데 잡생각에 쫓겨 급해진 몸뚱이가 팔로 핸들부터 밀면서 엉망으로 페달을 밟았다. 놀란 마음에 일 미터도 채 가지 못하고 멈춰 선다. 이게 가긴 가는구나. 헛웃음이 나온다. 이번에는 좀 더 마음을 가다듬고 유튜브에서 배운 이론을 떠올리며 한쪽 발을 페달에 올려놓고 다른 발로 밀어서 출발한다. 자동차 운전은 잘만 하는데 자전거는 왜 이리 어려운지 직진을 모르는 내 자전거는 왼쪽으로 기우뚱 오른쪽으로 기우뚱 S자 곡선을 그리며 위태롭게 나아간다.

왜 나는 애 둘 엄마가 되도록 자전거 탈 생각도 하지 않고 살았을까. 학교 체육 시간에 피구 같은 거 말고 자전거 타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낫겠다고 생각을 하며 계시지도 않는 나의 담임선생님을 잠시 원망해 본다. 이럴 땐 나도 선생님이 있었으면 좋겠다. 공터 한 바퀴를 겨우 도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새 당기는 종아리 근육을 애써 무시하며 집으로 돌아간다.

젊을 때 가졌던 민첩함은 쏙 빠진 볼살처럼 내 몸을 빠져나가 버린 건지 찾을 수가 없다. 덕분에 무릎을 굽혀 청소할 때마다 짜릿한 아픔이 느껴진다. 요 며칠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공터에 나가 자전거를 타느라 다리 이곳저곳에 시퍼런 멍이 든 탓이다. 나도 참 이상하다. 무릎이 시큰하게 아파 오는데도 또 공터에 나갈 생각에 집안일하는 손이 바빠진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나이 사십에 피멍이 든 자기 무릎을 보고도 웃음이 지어지는 일인가 보다.

오늘은 날씨가 좋다.

여전히 변함없는 일상, 똑같은 하루의 반복이지만 힘주어 밟은 자전거 페달처럼 밀고 나간 3월이었다. 내 자전거는 이제 평행선을 그리며 앞으로 나간다. 내 달린다.

나도 자전거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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