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의 달

by 현이

낡은 자전거를 가게 앞에 세우고 아이가 들어선다.

가게 안을 오랫동안 둘러보지만 오늘도 김과 참치 캔, 라면 한 다발을 사서 계산대에 내민다. 쭈뼛거리며 지폐를 내미는 손등을 일부러 덥석 잡으며 거칠한 손톱 아래를 내 손의 온기로나마 데워본다. 봉지에 물건을 담아주면서 계산대 근처에 진열해둔 소시지와 약과 한 통을 슬쩍 같이 넣는다. 우유라도 좀 사갔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입 안에 머금기만 하고 삼켜버린다. 배시시 웃으며 거스름돈을 야무지게 챙겨 넣는다. 검은 봉지를 달랑거리며 자전거 앞으로 가면서 “안녕히 계세요!”, 인사는 우렁차다.

그 아이의 부모를 본 적은 없지만 또르르 굴러가는 눈동자며 가늘게 쭉 뻗은 목덜미를 보면 그들의 얼굴이 그려진다. 부모를 여읜 것은 아닌데 조손가정에서 크는 아이다. 그마저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차례로 병으로 앓아 눕고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한지 한참인 듯하다. 저 해사한 웃음과 눈망울을 잠시라도 깊이 봤다면 부모들이 아이를 두고 떠날 수 있었을까, 물색없는 나는 계산대에 서서 아이가 가게 안을 배회하던 흔적만 훑고 있다.

무엇을 사야할지 몰라 올 때마다 오랫동안 이리저리 물건 구경을 하는 것이 아니다. 소라껍데기 안을 살피듯 가게를 돌고 돌면서 오가는 다른 손님들과의 접촉, 나와의 눈 맞춤, 인사치레뿐인 ‘어서 와라’, ‘밥은 먹었니’, 같은 말이 그 아이에게 ‘환대’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안다. 멀어져가는 아이의 뒷통수를 보며 연민의 감정은 심장에서 목구멍을 따갑게 태우며 올라와 눈두덩이까지 차오르고 말지만, 만약 아이가 잊은 것이 있어 다시 돌아서기라도 하면 나는 얼른 딱한 눈빛을 지우고 촌스러운 표정의 슈퍼 이모가 된다.

아이의 할머니가 병석에 눕기 전에는 종종 함께 들러 이것저것 먹고 싶은 음식을 조잘대며 찬거리를 사갔었다. 언젠가 혼자 들린 할머니가 콩나물, 호박 따위를 사며 손자 키우는 고단함을 넋두리 하곤 했다. 어느 여름 밤, 마당 위로 훤하게 떠오른 달을 보며 “할머니, 우리 엄마도 저 달 보고 있겠지?” 라고 하더란다. 그 때 아이가 일곱 살 즈음 되었다. 콩나물 봉지를 함께 붙들고 할머니도 나도 울었다.

달을 보며 그리운 엄마를 스스로 달래던 아이는 훌쩍 자랐다. 이제는 우렁찬 인사도 수줍은 사춘기가 되었는데, 어쩐지 나는 밤하늘이 선명한 날일수록 슬퍼진다. 자랄수록 아이를 낳은 여인은 내 상상 속에서 뚜렷해진다.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꽤 능숙한 우리말로 된장찌개나 명절 나물거리를 사갔을 테다.

시골 마을에는 달이 두 개인 아이들이 많다. 곁에 없는 엄마가 올려다보는 달, 그것을 그리워하는 아이의 달. 같은 한국 하늘 아래, 유달리 검고 진한 아이들의 눈동자는 휘영청한 달밤에 더욱 아득해진다. 그늘이 짙은 눈을 깊이 들여다 볼 자신이 없어 나도 철저한 타인으로만 아이들을 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아이들의 그늘을 걷어 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어느 날 그 아이가 또래 친구들과 함께 우르르 가게로 들어왔을 때 전에 보지 못한 미소를 발견했다. 개구져 보이기도 하고 그늘 없이 밝아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연민을 가장한 차양을 드리워 그 아이를 그늘 아래 세워놓고 색안경을 쓰고 본 것은 아니었을까.

아이들이 차례로 자기 것을 계산했다. 그 아이가 고른 물건의 바코드를 찍으며 남들과 다름없이 일렬로 늘어선 숫자의 동질감이 어쩐지 내게 위로가 되었다. 그 날은 소시지나 빵 한 봉지를 슬쩍 끼워 넣지 않았다. 아이들이 각자 과자 봉지를 부스럭거리며 나설 때 내 눈의 렌즈를 뒤로 멀리 당겼다. 누군가를 특정하여 초점을 잡지 않는 것, 뭉뚱그려 전체를 한 눈에 담고 그저 웃는 것, 내가 그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달이었다. 멀리서 지구를 돌고 있지만 인력으로 항상 서로를 당기고 놓지 않는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