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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표 Aug 16. 2024

소멸

모두가 소멸을 향해 질주하고 있어요. 이 광활한 대지, 잘못된 역사, 이루지 못한 소망. 지키지 못할 것들, 반납하지 못한 마음. 그리고 혐오스런 내 육신마저도… 우리는 죽어가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우린 커피를 포장해 마시고 아무 생각 없이 빨대를 꽂겠죠. 쓰레기는 줄어들 생각을 않지만 이젠 가망이 없으니까요. 우린 담배를 태우고 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결국엔 우리의 요람마저 태워버리고 있잖아요.


요즘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사람처럼 살아요. 하루하루 주위를 경계하며 누가 내 목숨을 가지러 오는 건 아닌지…아니예요. 내 목숨 같은 건 문제가 되지도 않아요. 내가 진정으로 두려운 건…내가 사랑하는 무해하고 다정하며 한없이 어린 존재들의 미래가 없어지는 일이예요.

신을 믿기 힘들어 하는 나지만 이제는 다시 기도할 때가 된 것 같아요. 그 아이들은 모두 어떡하죠? 아직 삶의 한 계절도 지내지 못한 그 모든 아이들…또 동물들은요? 아무 잘못 없음에도 우리 때문에 희생되어야 했던 그들은 어떡합니까? 이미 너무 늦었단 걸 알지만…내가 원하는 건 단지 포기하지 않을 정도의 힘이예요.

부디 내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행동들에서 목적을 찾으려 하지 않길. 허무함의 늪에 빠져 그들처럼 희망을 놓아버리지 않길. 내 신념을 지킬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길. 무엇보다 삶에 대한, 이 세상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말길.


난 두려워요. 무서워요.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 감당할 수 없는 불안이 내 목덜미를 짓눌러 무조건 엎드린 채 통곡할 수밖에 없단 걸 알아서요. 이 기록으로 남긴 처절한 기도문을 읽으면 혀가 목구멍에 걸려 읽지 못할 거란 사실도 알아서요. 그럼에도 담담하게 써내려갈 수밖엔 없겠죠.

갈비뼈 속에 품어 둔 새를 알아요. 그를 안아 본다면, 내가 안심할 수 있을까요? 내가 살아있단 사실을 알고 그제야 계속 물고 있던 새의 깃털을 뱉고서 잠들까요? 내가 잠들고 나서 그 새가 차갑게 식어 버리거나 펑 터져버려도 세상엔 변화가 없을 거란 사실을, 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침대 위의 나는 웃고 있을까요. 아니면 고통으로 입을 앙다물고 주먹을 꾹 쥔채로 굳어 있을까요.


난 내가 살아있단 사실 말곤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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