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대학에서 "인간학개론: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교양 과목을 들은 적이 있다. 인문학, 철학, 과학 교수님께서 각각 해당 관련 내용으로 강의를 하시고, 그 이후 각각의 주제에 관련하여 학생들끼리 조별로 토론을 하는 과목이었다.
사실 그 과목이 특별히 듣고 싶어서 신청했다기보다는 PASS/FAIL 과목이어서 쉬어가는 강의로 신청을 했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흥미롭고 청자에게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강의였다.
강의 수강 후 몇 년이 지난지라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인상 깊게 들었던 몇몇 내용들이 기억에 남아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존재도 자아를 가지는가?"라는 질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인간은 DNA의 숙주에 불과하다"라는 가설이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존재도 자아를 가지는가?"
인조인간, 혹은 만들어진 존재에 관한 내용은 SF 장르에서 많이 다뤄지는 내용이다. SF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소설 '프랑켄슈타인'에도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손에서 만들어진 '괴물'이 등장한다. 여러 인간의 시체에서 각각의 부분들을 모아서 만들어진 '괴물'은 과연 '자아'를 가지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영화 '아일랜드'의 복제인간들은?
더 나아가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소설 속 존재들을 '자아'를 가진 인간이라고 한다면, DNA를 인위적으로 조합하여 만들어진 '퍼즐 아기'도 인간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인간은 DNA의 숙주에 불과하다"
DNA는 인간을 숙주로 하고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번식을 함으로써 본인(DNA)들의 존속을 이어간다고 한다. 상당히 불쾌하고 기분 나쁜 말이지만 과학적으로도 인간은 DNA의 숙주에 불과하다는 가설이 신빙성이 높다고 한다. 인간이 변화하지 않고 익숙한 생활을 이어가는 것 역시도 DNA가 생존하기 좋은 환경에서 벗어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DNA는 '메틸레이션'으로 인해 변화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DNA가 변화한다는 것에서 'DNA를 보존한다'는 명제가 거짓이니, 인간을 DNA의 숙주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가볍게 학점만 채우고 쉬려고 신청한 "인간학개론"은 나에게 많은 숙제를 남겨주었다. 이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내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내게 풀리지 않는 질문들을 잔뜩 남겨주었다. 나는 지금도 '나'에 대한 질문을 자주 맞닥뜨리고, 그 질문에 대한 나만의 답을 작성해 나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