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과 예의 사이의 불편한 거리
김승호 회장이 쓴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에서는 “사람들은 흔히 솔직함을 정직함으로 착각한다. ‘마음이 빠진 숨김 없는 바르고 곧음’은 날카로운 부엌칼과 같다. 상대를 위해 요리를 해줄 수도 있지만 깊은 상처를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요즘은 무례함도 ‘솔직함’이라 불리는 시대다. ‘솔직하지 않은 것은 가식적인 것’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우리는 남에게 쉽게 비수를 꽂는다. 나도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솔직함과 무례함을 구별하여 말하자’라는 교과서적인 이야기보다는 우리는 왜 솔직함을 무례로 받아들이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상대방에게는 솔직함과 무례함을 구별하여 말하라고 요구하지만, 정작 우리는 솔직함과 무례함을 구별하여 듣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솔직함이 무례함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솔직한 이야기가 기분 좋게 들려온 적이 없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본래 뜻을 숨기고 있다가 드러내는 순간이어서 충격이 배가 되는 느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경우도 없이 툭 내뱉는 솔직함은 무례함이 맞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는 솔직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잠시 철학 이야기를 빌려오자면, 밀의 <자유론>에는 이런 말이 있다. “진리란 전체가 아니라 소수가 가질 수도 있고, 그 소수는 단 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런데 다수가 그 한 사람의 의견을 억압한다면, 그들은 진리를 억압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회적 억압이나 다수의 독재로부터 소수 의견의 보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 말이다. 나는 이 글을 읽고, 누군가의 언행에 기분이 상해, 친한 친구에게 그 사람을 뒷담화하며 나의 언행은 옳고, 내게 상처를 준 상대방의 언행은 잘못됐다고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친한 친구는 내 편을 들어주며 “그 사람이 잘못했네”라고 반응해 준 적도 있다. 돌이켜 보면 내 기분이 상했다고 곧장 무례함으로 치부한 건 아닐까 싶다. 오히려 그 속에 담긴 이유를 짚어보는 게 더 필요하지 않았을까. 솔직함을 무례하다고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졸렬하다. 무례함을 솔직함이라고 포장하는 이와 다를 게 무엇인가. 순간의 상한 감정 때문에 화살을 상대방에게 돌리기보단, 왜 내가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지 스스로 물어볼 용기도 필요하다. MBTI에서 T와 F의 사고가 달라 상황에 따른 반응이 다를 때 F가 T에게 단순히 상처받는 것이 아니라, 연인관계에서 서운한 상황이 닥쳤을 때 여자/남자친구가 내 마음을 헤아려 주지 않아 상처받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반응한 이유를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충청도 화법을 보고 누군가는 센스 있고 재치 있다고 긍정적으로 보지만, 어떤 이는 답답하고 모호하다고 평가한다. 같은 말투인데도 누군가에게는 ‘여유 있는 말하기’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회피형 화법’으로 비치기도 한다. 회유 화법처럼 부드럽게 갈등을 무마하려는 말투조차 어떤 사람에게는 따뜻함으로 느껴지지만, 또 다른 사람에겐 불편한 회피로 받아들여진다. 결국 같은 말도 누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왜 우리는 점점 더 솔직한 표현을 불편하거나 무례하다고 느끼게 된 걸까. 단순히 개인의 성향 문제가 아니라,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서로의 언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심적 여유가 사라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경쟁과 속도의 사회에서 우리는 즉각적으로 결론을 원한다. 그러다 보니 우회적인 말투는 답답함으로, 직설적인 표현은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해진다. 상대방의 의도보다는 듣는 이의 피로도와 불안감이 솔직함을 무례함으로 바꾸어 버리는 셈이다.
특히 온라인 소통 환경은 이러한 현상을 더욱 부추긴다. 짧은 글과 댓글 속에서 맥락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고, 문장의 온도를 읽어내는 능력도 떨어진다. 누군가 “그건 좀 아닌 것 같다”라고 했을 때, 대면 상황이라면 웃음이나 제스처로 부드럽게 전달될 수 있지만 온라인에서는 곧장 ‘비난’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결국 솔직함이 무례로 오해되는 것은 단지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회적 환경과 감정적 여유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솔직함이 무례하게 느껴졌던 것은 우리가 타인의 말에 숨겨진 맥락을 읽어내려는 노력보다, 빠르게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강박이 커졌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누군가의 거짓 없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담아낼 마음의 공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