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뒤의 얼굴

사회 속에서 연기하는 나

by 부귀영화


요즘 ‘공감도 지능이다’라는 말을 종종 본다. 그런데 이 말이 늘 의문이다. 공감을 잘한다는 건 대체 어떤 상태를 말하는 걸까. 진심으로 상대의 마음을 느끼고 반응하는 걸 말하는 걸까, 아니면 공감이 되지 않아도 그럴듯하게 공감하는 척하는 능력을 말하는 걸까. 사람들은 아마 후자도 “공감 잘한다”라고 말할 것이다. 겉으로는 감쪽같이 공감받았다고 느꼈을 테니까. 그렇다면 사람들이 말하는 공감이란 대체 무엇일까.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공감이 그저 피곤한 일로만 느껴진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 이런 대사가 있다. “적당히 했어야 됐는데 너무 열어줬어. 괜찮을 땐 괜찮은데 싫을 땐 눈앞에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싫어. 눈앞에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말하면 더 싫고, 쓸데없는 말인데 들어줘야 하고, 나도 쓸데없는 말 해내야 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생각해내야 하는 거 자체가 중노동이야.” 이 대사가 너무 와닿았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사회성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하겠지만, 정말 그럴까. 누가 “요즘 너무 힘들다”라고 말하면, 나는 듣기 싫어진다. 일부러 거부하는 게 아니라, 그 감정이 내게 옮겨붙을까 봐 듣기가 싫다. 그렇다. 나는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되는 게 아니라 두 배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누군가 부정적인 이야기를 꺼내면 내 머릿속 계산기가 작동한다. ‘이 이야기에 공감해주면 대화가 몇 분 더 늘어날까.’ ‘그 시간 동안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지?’ 결국 “아, 진짜요?” 정도로 반응하고 넘어간다. 그래서 고등학교 입시 학원에서 내 별명은 ‘아 정말요’였다.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공감하지 않아도 매너는 지켰고, 아예 무시한 것도 아니니까. 어차피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도 100%의 진심보다는 적당히 들어주는 리액션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그게 진심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결국 상대가 공감받았다고 느끼면 그게 공감이니까. 요즘 사람들은 이런 태도를 ‘사회화된 T’라고 부르던데, 공감이 안 돼도 되는 척하는 능력. 어쩌면 이게 진짜 높은 지능 아닐까?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원래 남에게 관심이 없다. 남의 얘기도 마찬가지로 관심이 없다. 하지만 관심 없는 게 티 나면 분위기가 싸해지거나 “기분 안 좋냐?”라는 질문을 듣기 때문에 적당히 맞장구치고, 웃음도 섞어줘야 한다. 예전엔 이런 내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너무 냉정한가, 아니면 쿨병인가. 그런데 요즘엔 그냥 인정한다. 남 얘기를 들어줄 심적 여유가 없다. 그릇이 종지 그릇이다. 차라리 이런 나를 인정하는 게 덜 피곤하다. 진심은 결국 체력을 소모하고, 그 체력을 남한테 쓰기보단 나한테 쓰고 싶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웃긴다. 사실 글이 되게 안 써져서 속이 터진다. 진심을 다 쓰자니 너무 노골적이고, 적당히 포장하자니 오글거린다. 그래서 문장 사이사이에 숨어서, 그럴듯한 말투로 어떻게든 잘 쓰고 있는데 이런 내가 티가 나나..? (웃음) 결국 나는 글을 쓰는 순간에도 또 다른 가면을 쓴다. 위선 떨지 말라면서도 누구보다 위선을 떨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도 사회화된 인간으로, 그럴듯한 말투로 연기 중이다. 누가 나 좀 청룡 시리즈 어워즈에 초대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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