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받고 싶지 않다면서

무심한 척, 갈망하는 마음

by 부귀영화


입시 미술학원을 다닌 사람이라면 로망이 하나 있다. 바로 미술학원 보조 강사가 되는 것. 스무 살, 대학에 입학하고 봄 무렵, 미술학원에서 보조 강사로 아르바이트할 생각이 있냐는 연락에 설레하며 흔쾌히 수락했던 기억이 난다. 상사이자 나의 스승이었던 분과 사고방식이 맞지 않아 8개월 만에 그만두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때 생각했다. 나는 왜 사람을 쳐내 가면서까지 내가 옳다는 걸 주장하려 하는 걸까? 불합리함을 못 견디는 성격 때문일까, 젊음의 패기 때문일까.


어디서 들은 말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인간에겐 3대 욕구 외에 가장 큰 욕구가 인정받고 싶은 욕구이다’라는 말이 있다. 남의 인정 따위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자부했지만 정말 그러한지 다시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 어른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이에게도 할 말은 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인 것도,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먼저 발 빠르게 움직여 준비하고, 대비한 것도 무엇을 위해 그랬나 생각해보면 남에게 “나 이 정도는 되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이 사실을 인정하게 된 건 ‘넌 왜 그렇게 관심이 없냐?’라는 말을 듣고부터였다. 나는 왜 그렇게 무심할까 생각해보았다. 어릴 적부터 유난스러웠는데, 양갈래 머리는 양쪽 머리의 기울기와 높이가 같아야 했고, 겨울에 입은 내의 때문에 팔, 다리 접히는 부분이 두꺼워 지는 것도, 옷이 길어 접어 입었던 것도, 사춘기 때 살이 쪄 종아리에 살이 터졌을 때도 누가 날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에 항상 남의 시선을 신경을 쓰며 살았다. 심지어 횡단보도 건너편에 있는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에 초록불이 되면 걸음걸이까지 신경 쓰며 걸었다.


어느 날, 음악을 들으며 핸드폰을 보며 신호를 기다리다 문득 깨달았다. 나는 건너편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어떤 옷을 입었는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 때 깨달았다. ‘저들도 나와 다르지 않겠구나. 나처럼 핸드폰을 보고, 음악을 듣느라 나에게 관심이 없겠구나. 나는 왜 그렇게 남을 신경 쓰며 살아왔지?’ 그래서 나는 길을 걸을 때 의도적으로 음악을 듣고 핸드폰을 보며 세상으로부터 눈과 귀를 닫았다. 이게 내가 무심해지기 시작한 계기였다.


대학교 과제를 제출할 기간이 다가오면 학과 동기들에게 하는 말이 “아, 몰라. 하는 대로 주겠지. 어차피 열심히 안 해서 점수 못 받아도 상관없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누구는 이 말을 듣고 자기 객관화가 잘 됐다고 하는데, 자기 합리화에 가깝다. 말 자체에는 틀린 구석이 없다. 열심히 안 했기 때문에 점수가 잘 나올 수 없고, 잘 안 나와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이 말은 나를 위로하는 장치이자, 남에게도 실망을 저버리지 않고 나도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놓는 것과 같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인정욕에 중독되어 자신을 옥죄지 말자는 식상한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한다. 모두가 우러러보는 인물도, 나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인정받고 싶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말이다. 괜한 자존심 세우지 말고, 괜한 똥폼 잡지 말고. 나는 내가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마음을 인정하고서야 비로소 내 행동을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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