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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슴속호수 Jul 02. 2024

서리의 기술

60년 대 초 배고픔을 달래려 서리를 했었다. 서리 기술의 모음집

아내가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획득했다. 합천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지원하는 무료 강의를 뒷집 내외분과 함께 수강을 하며 자격증을 딴 것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뒷집 넓은 주방에서 앞집에 사시는 스님과 푸짐한 저녁 자리가 만들어졌다. 뒤풀이로 각자의 실력을 뽐내며 내 놓는 에스프레소, 카푸치노 커피를 음미하고 평가하면서 이야기꽃이 피었다.


  50년대에서 60년대 초, 배고픔을 달래며 가난하게 살았던 스님의 청소년 및 청년 시기에 행하였던 서리 얘기로 한여름 밤의 열기가 한층 무르익어갔다.


 부산에서 합천으로 귀촌해서 10여 년째 살고 있지만 도시에서 자란 나는, 수박 서리, 참외 서리라는 말이 약간은 생소하였다. 부산에 살면서 내 또래의 시골 출신 친구들에게 들은 얘기로는, 청소년 시기였던 70년대에 친구들과의 추억거리로 재미삼아 한 두어 번 서리를 했다고 한다. 들켜도 주변 동네 지인들이라서 혼쭐나고 훈육 받고 다짐만 받으면 보내주곤 하는 재미난 이야기 같은 수준의 얘기로만 들었다. 


 스님의 서리 이야기는 재미난 얘깃거리로 치부하기에는 통 큰 살벌 달콤한 얘기였다. 

 6.25동란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미국의 경제 원조에 의존하던 시기였기에 뭐든지 부족하였다. 특히 먹을거리 부족이 심각하여 민생고가 심한 시절이었다. 서리라는 행위 자체가 일상이었다고 하는데, 재미보다는 엄청 먹어대는 청소년 시기에 굶주림에 대한 처절한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스님은 팔공산 근처 제2석굴암을 돌아서 강물이 합수되는 곳에 살았다고 한다. 서리의 대상은 살고 있는 마을에서 몇 개 마을을 지나 사방팔방으로 최소 15리 이상 떨어진 마을을 대상으로 원정을 다녔다고 한다. 다른 마을의 그들도 불문율처럼 이렇게 정하였다고 한다. 들켜서 잡으러 와도 먼 곳에 떨어져 살았기에 쉽게 잡히지 않았고 가까운 마을의 애들이 먼저 의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암묵적인 합의는 훗날 도가 지나친 서리 행위에 화가 난 농장주의 신고로 지서에서 이 마을, 저 마을, 마을마다 청소년, 청년들을 조사를 할 때 효력이 나타난다.   묵시적인 카르텔이 형성된 것처럼 서로를 비호하고 모든 이들이 모르쇠로 새침을 뗐다고 한다. 절도와 같은 범죄이지만 서리로 하나가 된 말 못할 동병상련의 공범들 처지이기에 배고픔을 달래고 살고자하는 상호 공생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이것이 서리의 가장 기본 원칙이었다고 한다. 조용한 야밤삼경에 일어나는 꼼꼼한 서리의 기술이 들어간다.

 수박 서리를 할 때는 꼭지를 따면 빽 소리가 나기에 소리가 안 나도록 꼭지줄기를 반으로 찢어서 딴다. 

 참외는 만져보면 안 익었을 때 몸통에 털이 있어 깔끄럽고, 익으면 부드럽고 매끄럽다. 꼭지를 만지면 손가락이 살짝 들어가는 것을 딴다. 

 옥수수는 바로 따면 딱딱 소리가나고, 비틀어 따도 삐이익 소리가 나고, 칼로 잘라도 소리가 나기에 옥수수가 붙어 있는 꼭지 틈새에다 불 때고 남은 재를 넣고 비틀면 소리가 안 난다. 

 대추나무 가지는 가시가 있고 깊은 밤중이라 어두워서 대추도 안보이기에 머리에 바가지 쓰고 간다. 달그락달그락 부딪히는 소리에 대추를 딴다는 것이다. 


 고구마는 장갑을 끼고 가야한다. 안 끼고 고구마를 캔다면 고구마줄기 물이 손에 배겨 절대로 며칠간 안 지워져 범인으로 잡히고 만다. 

 땅콩은 강가의 모래사장이 있는 곳에 심겨져 있다. 캐기 쉬운 모래사장이라고 그냥 뽑으면 땅콩이 다 떨어지기에 줄기를 잡고 모래를 질근질근 밟고 다진다. 이제 줄기를 잡아당기면 땅콩이 하나도 안 떨어지고 딸려 나오게 된다. 

 닭장에 있는 닭을 겨울에 잡으러 가면 손이 차가워서 꼬꼬댁 소리를 내어 들키게 되지만, 양쪽 손을 겨드랑이 밑에 넣고 따뜻하게 한 후, 그 따뜻한 손으로 목을 휘어잡고 날개 밑을 잡으면 닭은 소리도 못 내고 가만히 있다가 꼼짝없이 잡히고 만다. 


 개를 잡아 가는 방법도 기발하다. 폼 나게 군용잠바를 입고 참나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만든 몽둥이에 낚시 줄을 꿰고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들녘에 나간다. 개는 풀어서 키웠는데 들에 나오는 놈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비곗덩어리를 큰 낚시 바늘에 매단 뒤 흔들어대면 냄새를 맡고 덥석 물어버린다. 입 속 깊은 곳에 낚시 바늘이 걸려서 캑 소리도 못내는 개는 참나무 몽둥이를 지팡이 삼아 끌고 가는 이를 주인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따라온다. 멀리서 보는 이 광경은 낚시 줄이 안보이기에 그런 줄도 모르고 개가 놀면서 졸졸 따라가는 것으로 오인한다고 한다.


 서리의 기술이 절정에 다다른다. 돼지는 잡으러 가는 게 아니라 돼지 업으로 간다고 한다. 업기에 적당한 크기인 80근에서 100근 정도 되는 돼지를 노리고 가는 것이다. 당시에는 돼지를 말뚝 박아 키웠는데 자기 밥그릇이 저마다 있다고 한다. 자기 먹던 그릇에 먹이를 주면 꿀꿀거리는 소리와 함께 컥컥 거리면서 먹는다. 여기에다가 재를 한바가지 놓아두면 코를 처박고 컥 하고 먹다가 코와 입속이 재로 막혀 꽥 소리도 못 낸다고 한다. 소리도 못내는 돼지를 두발 잡고 애기를 업듯 어깨에 메고 애기 포대기로 감싸고 유유히 사라지는 것이다. 멀리서 누가 봐도 애기 업고 가는 것처럼 보인다.서리의 기술과 수준이 경이롭기까지 한다. 


 당시에 먹을 게 없었던 청소년들에게는 서리라는 것이 왕성한 먹을거리 활동으로 최고의 포식 행위였던 것 같다. 먹는 것은 닥치는 대로 모두 다 서리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배곯았던 그 시대는 재미로 치부하고 웃고 넘겼다지만 지금의 세대에서는 이러한 서리가 가당찮기나 할까 싶다.


 문득 가수가 부른 보릿고개라는 노래가 들려오는 듯하다. 예전에는 노랫말의 진정한 의미를 몰랐건만 서리로 배고픔을 달래던 그 시절을 회상하듯 더욱 애틋하게 다가온다. 아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 가슴시린 보릿고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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