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로에서 만난 그대
움직임을 늘려보려 근처 공원에 갔다. 신발과 양말을 벗어 벤치 아래에 가지런히 놓았다. 작년 여름에 조성된 맨발 산책로를 두 번째 걸어보는 것이다. 솔직히 처음엔 산 중간중간을 가로지르며 공사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위적으로 길을 만들기 위해 대리석 돌들을 옮기고 나무를 베거나 다지느라 중간엔 출입금지구역이라는 줄로 길을 막았다. 굴착기는 바쁘게 움직이며 흙먼지를 불러일으켰다. 그곳에 황토를 부었지만, 폭우를 견디지 못하고 몇번을 쓸려 내려갔다. 황토를 보강하며 단단히 짓눌렀고 중간중간을 나무로 덧대며 공사 기간은 예정보다 더 길어졌다.
처음 발을 디뎠을 땐 흙 알갱이의 뾰족함에 소리를 질렀다. 촉촉하고 보드라울 거라는 생각과는 완전히 달랐다. 거친 돌 알갱이가 지압판처럼 느껴져 한 걸음 걸으며 엄살처럼 “앗, 따가워.”를 뱉어냈다. 중간쯤 지나서야 발의 감각이 무뎌지며 아픔이 덜해졌다. 그 기억이 떠오르자 걸음걸이에 힘을 빼며 조심스럽게 내디뎠다. 다행히 까슬거리는 느낌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흙 알갱이들이 조그맣다. 다만 바닥의 단단함이 느껴졌다. 사람들의 발 도장으로 바닥이 눌리고 눌려 반질반질해진 탓이리라. 볕을 머금었던 곳은 딱 걷기 좋은 온도였고, 그늘진 곳은 찬 기운이 그대로 전달되어 발가락이 움츠러들었다.
가파른 오르막에 들어서자 몇 개의 나무 계단이 줄지어 나왔다. 황토 사이 계단은 좁게 때론 널찍하게 들쑥날쑥했다. 편편한 나무가 주는 안정감이 좋아 징검다리의 돌을 건너듯 보폭을 조절하며 계단을 밟았다.
장미로 울타리를 만드려는 듯 아치형의 울타리 사이로 장미 나무가 자라나고 있었다. 아직 꽃을 피워낼 정도로는 여물어보이지 않았다. 다만 내년이면 예쁜 장미가 피어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길을 걷다보니 중간에 쉬어가라며 나무 옹이로 둘러진 의자가 보였다. 여러 구경거리에 걸음이 더 느려졌다. 천천히 땅의 기운을 간직하고 싶은 듯 서둘러 가야 한다는 조바심도 내려놓는다.
새 소리에 잠시 멈춰 서기도 한다.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새는 조그맣고 귀여운 입에서 산 곳곳에 울려 퍼지도록 꽤 큰 목소리를 품어 내고 있었다. 플루트 같은 소리, 맑으면서 청아한 그의 연주가 기특하기까지 하다.
살랑이는 바람은 나뭇잎을 통과하여 일렁이는 볕을 보내기도, 그 빛을 반사하며 그늘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싱그러움에 “참, 좋네.”라는 한마디가 입 밖으로 나왔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소리도, 고르지 않은 바닥도, 지나가는 곤충도 마음에 거슬리지 않는다. 크게 두 바퀴를 돌고 나니 살짝 땀이 났다.
수돗가에 물을 틀자 시원하지만 조금 차가운 물이 쏟아졌다. 선뜻 발을 내밀지 못하고 발바닥을 보았다. 이대로 종이에 찍으면 황토색 발바닥과 발가락이 그대로 드러날 것 같다. 손에 물을 받아 발바닥을 적시고선 살살 문질렀다. 노란 황토물이 점점 옅어졌지만, 전부 사라지지는 않고 어렴풋하게 곳곳에 남았다. 자연의 흔적을 조금은 가지고 가라는 것 같다. 에어건이 고장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양말로 톡톡 물기를 닦아내고 맨발로 운동화를 신었다. 양말을 벗은 탓인지 운동화는 헐렁거렸고 단단했던 땅을 벗어난 탓인지 운동화의 쿠션감이 유난히 폭신하게 느껴졌다.
공원을 돌다 분홍빛과 자주빛 사이의 꽃 무리에 눈이 갔다. 자세히 보니 가지 사이에 밥풀처럼 다닥다닥 붙어있어 꽃잎이 색다르다. 사진을 찍으려 스마트폰을 꺼내고 이참에 AI에게 물었다. 몇 초 후 박태기나무라고 하면서 설명이 뒤따랐다. 가지 끝이 아니라 줄기와 굵은 가지에 꽃이 붙어 피는 줄기 개화 식물이란다. 꽃이 질 무렵 하트 모양의 잎이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앙상한 줄기 사이의 꽃이 더 도드라지게 보였나 보다.
이번에는 오밀조밀한 하얀 꽃에 눈이 갔다. 하나의 이름을 알고 나니, 무심코 지나치는 꽃들의 이름도 궁금해졌다. 그 이름을 불러주어야 할 것 같은 날이다. 사진을 찍고 물어보니 라일락이란다. 라일락 꽃향기라는 가사가 떠오른다. 이름에 이미지를 추가한다. 하지만 생각했던 만큼 진한 꽃향기는 느껴지지는 않는다.
내리막길에선 들에서 자주 보이던 파란 꽃을 만났다. 옛다. 너의 이름도 나는 알아내고 말테다. 사진을 찍으니 개불알풀이란다. 이렇게 귀엽고 어여쁜 생김새를 가진 꽃에게 개불알이라는 상상을 뛰어넘는 이름에 잠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대체 왜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냐며 따져 묻는다. 열매 모양이 작고 둥글게 두 개로 갈라지는데, 그 모습을 보고 강아지의 고환을 떠올려 지은 것이란다.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것 같은 이름이다.
달리고 나면 마음이 뚫리지만, 걷고 나면 마음이 정돈된다. 오르락내리락 걸었던 만큼 다리에는 묵직함이 남았다. 땀을 흘리는 수고로움과 꽃들의 이름을 찾아준 것에 대해 뿌듯함이 더해진다. 스쳐 지나왔던 꽃들에게 안녕하고 이름을 불러본다. 너의 이름을 부르며 너도 의미 있는 하나의 꽃이길 기도해 본다.
#맨발산책로를걷다
#마음을정돈하며
#황톳길을걸으며주변을관찰하다
#개불알풀이라니
#박태기풀과라일락꽃을만나다
#다리엔묵직함이내려앉았지
#맨발걷기
#움직임을늘려보다
#나무그늘에차고단단한질감의흙을디디며
#자연으로부터의사색
#플루트연주처럼지저귀는새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