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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cropsia Jul 02. 2024

HOMO ANXIOUS

Doctor Anxious가 경험한 다양한 Homo Anxious에 대해

서론


불확실성의 세상


사람마다 현시대를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을 텐데 나는 불확실성의 세상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2002년 인턴을 시작으로 의사 생활을 하는 동안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 그리고 2019년 코로나19까지 중요 신종전염병을 다 경험했다. 그때마다 한 번도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 적은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나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체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면 공포는 극대화된다. 이 지점에서 불안이 조용히 싹을 트게 된다. 공포와 불확실성이 만나면서 사람들의 마음에 불안이 일어나고 불안은 빠르게 전염된다.


2019년 코로나19 당시를 떠올려보면 한국 사회를 거대한 불안감이 뒤덮었다고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을 듯싶다. 지금 생각해 보면 확진자가 머물렀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장소를 방문하면 안 되는 것도 아닌데 당시 정부는 확진자의 동선을 세세하게 공개를 했다. 그러자 확진자가 들렸던 식당, 편의점, 또는 여러 개인 사업장에는 사람들이 가지 않는 일이 벌어졌고 해당 개인사업자들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경제적 피해를 고스란히 입을 수밖에 없었다. 보이지 않는 대상에 대한 공포와 감염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만나 벌어진 현상이었다.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그리고 코로나19 펜데믹,  모두에서 사람들은 불안감에 잠식되었다.


의사라고 해서 다른 것은 아니다. 의사들도 처음 경험해 보는 전염병이었기 때문에 불안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가장 심각한 상황을 고려하면서 초기 대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병원에서 대규모 환자가 발생했던 대구 지역으로부터 온 환자는 되도록 진료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에는 코로나 유행 지역에서 온 환자들을 진료하기 위해 컨테이너를 이용해 선별진료소를 따로 만들었었다. 코로나19에 대해 더 많은 사실들이 빠르게 밝혀지면서 다른 호흡기 전염병과 마찬가지로 마스크를 철저히 하고 손 씻기를 잘하면 전염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 의사들도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의사로서 당시 느낀 불안 중 하나는 동료들이 확진되어 격리되면 어쩌나였다. 전공 특성상 진료 업무 부담을 항상 느끼고 있는데 동료들이 확진되어 격리되면 동료가 맡고 있던 일도 같이 격리되는 게 아니라 일은 남아있는 누군가에게 남겨지기 때문이었다. 이런 불안은 비단 의료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일이었다. 조선일보 기사에서 당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매일이 야근” 코로나 확진자 폭증하자 ‘업무 대란’… 남은 자들은 ‘번아웃’‘(https://biz.chosun.com/topics/topics_social/2022/03/17/2SAN775NNRF2PFSMRFKK5ITL7M/)


오늘, 내일, 그리고 모레 누가 확진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에게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주기에 충분했다. 왜냐하면 불확실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백신이 빠르게 개발되어 승인되고 치료약제도 등장하면서 불안이 빠르게 사라질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사회 전체에 한번 전염된 불안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고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서 갈등을 일으켰다. 확진된 사실을 숨기고 일을 하다가 적발된다던지,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하철에서 다툼이 벌어지는가 하면, 해외에서는 이미 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제되었는데 한국에서는 서로 눈치만 보느라 야외에서도 계속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우리는 이런 큰 사건에서만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피곤한 직장인을 떠올려보자. 알람을 맞추어 놓았지만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해서 늦게 일어난 순간 직장 상사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때부터 불안감이 피어오른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화장도 못하고 뛰쳐나왔는데 오늘따라 타야 할 버스도 올 생각을 않는다. 앵그리 버드가 된 상사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입이 바짝 마르고 손에는 땀이 흐르고 심장은 눈치 없이 계속 쿵쾅거린다. 중간고사를 앞둔 고등학생은 수학 시험만 생각하면 입이 바짝 마르고 손에 땀이 흐르고 내 심장이 여기 있었구나를 느낀다. 도로 위의 초보운전자도 떠올려보자. 나만 빼고 빠르게 스쳐가는 자동차들 사이에서 입이 바짝 타들어가면서 스티어링 휠을 잡고 있는 손은 땀으로 흥건하고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경험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은 우리의 일상에 비일비재하게 널려 있다. 나는 이런 것들을 ‘소소(小小)한 불안 (micro-anxiety)’라고 부르고자 한다. ‘사소(些少)한 불안’이라고 하기엔 그 순간 당사자에게는 사소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작지만 반복되는 것은 큰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도 하다. 반복되는 양치질 하지 않는 행동은 충치를 일으킨다. 반복되는 군것질은 중단하지 않으면 비만이라는 변화를 가져온다. 반복되는 흡연은 각 종 암을 발생시킨다. 소소한 불안도 반복되면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다.


나는 내가 겪은 그런 변화들과 다른 사람에게서 내가 관찰한 변화들을 나의 글에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모건 하우절은 ‘불멸의 법칙’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들을 책으로 쓰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없다”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오늘도 나는 불안을 느끼고 있고 마찬가지로 불안을 느끼며 살고 있을 많은 호모 엥셔스들에게 나의 경험과 나의 글이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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