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가 어려운 일을 만나 힘들 때 우리는 '인생의 쓴맛을 봤다'라는 표현을 흔히 쓴다. 반대 상황을 이야기할 때는 '인생의 단맛'이라고 표현해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단맛이라는 표현을 쓸 때는 기쁜 일과 힘든 일을 연달아 겪을 때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봤다'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더 많은 거 같다.
영화 <달콤한 인생>은 극 중 주인공(이병헌)의 ‘험난한’ 인생을 반어적으로 ‘달콤함‘이라는 미각과 연결 지어 잊기 힘든 멋진 제목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인생을 여러 가지 맛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맛만큼 우리가 매일 경험하면서도 좋고 나쁨을 빠르고 직관적으로 느끼는 감각이 없기 때문이지 싶다. 우리는 기분이 나쁘다가도 맛있는 것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기분이 좋다가도 맛없는 것을 먹으면 불쾌해지곤 한다.
단맛, 짠맛, 쓴맛, 신맛 등을 느끼는 혀의 위치가 정해져 있다고 알고 있다면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우리가 예전에 학교에서 배웠던 것처럼 각각의 맛을 느끼는 영역이 깔끔하게 구분되어있지 않다고 한다. 혀는 부위와 상관없이 무슨 맛이든 느낄 수 있고 일부 영역은 특정 맛에 약간 더 민감하지만 이러한 차이는 ‘미세’하다고 한다.
맛은 1차적으로 혀가 감지하지만 뇌로 전달되어야 맛을 느낄 수 있다. 맛 정보는 안면신경(facial nerve), 혀인두신경(glossopharyngeal nerve), 미주신경(vagus nerve) 등의 3개의 뇌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된다. 동물이 맛을 느끼는 이유는 먹어도 안전한 먹이인지 판단하기 위함이 첫 번째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쓴맛을 느끼는 것은 중요하다. 쓴맛은 상한 먹이거나 독이 든 먹이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단맛은 칼로리가 높은 먹이라는 신호이므로 먹이 구하기가 쉽지 않은 환경에서 중요했을 것이다. 식물들은 이런 동물들의 미각의 특성을 이용해서 쓴맛으로 먹히는 것을 피하거나 열매는 단맛을 내게 해서 동물들이 열매를 먹어 씨를 퍼뜨리게 진화했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에는 종종 밥맛이 없다고 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왜 밥맛이 없을까? 여기에는 행복 호르몬으로 알려진 세로토닌이 관련 있을 수 있다. 2006년 영국 브리스톨 대학의 생리학교실 연구팀이 세로토닌을 증가시키는 우울증 약을 투여함으로써 단맛과 쓴맛을 느끼는 미각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불안을 가진 사람들은 쓴맛과 신맛을 느끼는 역치가 높아져 있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심한 불안은 쓴맛과 신맛을 잘 느끼게 하지 못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기분이 안 좋으면 밥맛이 없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고, 기분이 안 좋을수록 더 강한 맛을 찾는 것도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