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에서 '쓴맛'의 정의를 찾아보면, '소태나 씀바귀 따위의 맛처럼 느껴지는 맛'이라고 되어 있다. 이 정의는 "너희들도 소태나 씀바귀 알지? 그거 먹었을 때 느껴지는 게 쓴맛이야"라는 서로의 경험에 의존한 설명이다. 아마도 맛은 주관적인 감각이니까 무언가에 빗대어 설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일 텐데, 이 설명이 효력을 가지려면 우리 모두가 동일한 미각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쓴맛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쓴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미맹(味盲)'이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taste blindness'라고 한다. 한자말과 영어 모두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와 연결 지었다는 점은 재밌는 부분이다. 그리고 쓴맛을 모르는 사람들이 '인생의 쓴맛'이라는 표현을 들었을 때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다.
미맹은 미국 백인이나 아랍인은 약 30%-40%, 아시아인, 아프리카인, 미국 인디언은 약 10%-20% 정도로 인종적 및 지역적으로 차이가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평균 약 25% 정도를 차지한다고 보고되고 있다. 아마도 식생활의 차이가 인종간 미맹 빈도의 차이를 만들지 않았을까라는 추측을 하고 있다. 백인은 육식 위주의 식생활을 했기 때문에 식물성 독성분인 쓴맛에 둔감하고, 아시안인이나 아프리카인은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했기 때문에 독을 피하기 위해 쓴맛을 민감하게 느끼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입안에 음식이 없는데도 입안에서 쓴맛 또는 금속맛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여러 이유로 입안에 침이 잘 분비되지 않아 입안이 건조해지면서 쓴맛을 느끼거나 금속맛을 느낄 수 있다. 침 분비는 교감신경, 부교감신경 모두의 영향을 받는데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 침샘에서 물 성분 분비가 많아져 침 분비량 자체가 많아지고,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 침샘에서 물 성분 분비는 줄어들고 단백 성분이 많아지면서 끈적한 침이 적게 분비된다. 그런데 불안은 우리 몸의 자율신경계 중 부교감신경보다는 교감신경을 활성화시키게 된다. 따라서 지속된 불안으로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 침분비에 영향을 주어서 우리는 실제로 '인생의 쓴맛'을 느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