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와 불확실성의 콜라보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 공항과 항만을 통한 이동이 차단되면서 세계 경제는 급작스런 타격을 입었다. 전세계 증시는 급락하였고 그야말로 혼돈 상태였다. 미 연준(Federal Reserve)은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 전대미문의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를 시행하였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에너지, 원자재 가격이 상승했고 물가가 치솟았다. 물가 안정을 위해 고금리는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고 우리는 아직도 양적긴축(Quantitative Tightening)의 여파에 힘들어하고 있다. 아래 2023년 10월 9일 BBC의 한 기사를 살펴보자.
Financial anxiety: The alarming side effect of inflation(재정적 불안: 인플레이션의 우려스러운 면; https://www.bbc.com/worklife/article/20231005-financial-anxiety-the-alarming-side-effect-of-inflation)
이 기사에서 '재정적 불안'을 '돈, 빚, 지출 및 재정적 안정에 대한 우려를 포함하여 재정 상황으로 인해 사람들이 경험하는 스트레스, 걱정 또는 불안'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영국 대출 기관인 Creditspring이 2,000명의 영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경제 위기가 시작된 후 정신 건강이 악화되었다고 보고한 사람이 30%에 달했다. 25~34세 연령 대에서는 48%로 가장 많았다. 미국에서 Bankrate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2,300명 이상의 미국 성인 중 52%가 돈이 정신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으며, 정신 건강에 가장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제 문제는 비상시 사용할 수 있는 저축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돈이 스트레스 요인이라고 답한 사람 중 29%는 매일 돈에 대해 걱정한다고 답했다.
저축(저장)이라는 개념은 인간 사회에서 오래된 듯 하지만 저축(저장)은 농경사회가 시작되면서 나타났다고 알려져 있다. 약 400만 년 전 인류가 지구에 나타났다고 하는데 농경이 시작된 것은 약 1만 년 전으로 추산하고 있으니까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난 후 대부분의 시간 동안 채집과 수렵의 시간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수렵 생활에서는 그날 사냥한 것을 며칠 내에 다 먹고 또 사냥하는 생활을 했기 때문에 먼 미래를 위해 저장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해가 뜨고 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끝을 냈고, 출퇴근하는 생활을 하는 게 아니니까 시간을 지켜야 할 이유도 없었고,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정교한 방법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 월, 일, 시, 분, 초에 대한 개념도 존재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지금이 중요하지 과거와 미래는 중요하지 않았고, 6개월 뒤, 1년 뒤, 2년 뒤의 먹거리가 저장되어 있지 않다고 불안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먹거리가 떨어지면 그냥 '사냥하러 가자'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농경이 시작되면서 씨를 뿌리고 추수를 하는 일에 시간을 아는 것이 중요해지고, 흉년이 들었을 때를 대비해서 종자와 곡물을 저장해 두는 것이 중요해졌다. 그러면서 머릿속에 미래라는 개념이 점점 자리 잡고,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덕분에 '만약 가뭄이 오면 어쩌지', '만약 홍수가 나면 어쩌지', '만약 저장된 식량이 바닥나면 어쩌지' 등의 불안이 싹트게 되었을 것이다. 저축되어 있는 돈이 얼마 없어서 불안해하는 현대인의 모습과 똑같지 않은가. 똑같이 미래라고 하는 시간적 개념과 '만약 1년 뒤 저축한 돈이 바닥나면 어떻게 하지'라는 미래의 불확실성이 만나면서 머릿속에서 불안이 피어난 것이다.
그럼 재정적 불안은 몸을 힘들게 할까? 아래 기사를 읽어보자.
경제 불황, 스트레스성 통증 유발한다(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20612/113900968/1)
2003년 영국 런던대학교, Lucía Macchia의 연구도 살펴보면 한 국가 내에서 소득 순위가 낮을수록 통증과 연관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효과는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 모두에서 나타났다고 한다. 불안과 몸의 통증이 연관 있다는 연구 결과는 꽤 많다. 2006년 독일 괴팅겐 대학 연구팀이 44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우울증과 불안이 목 통증과 밀접한 상관성이 있었다. 그리고 근골격계 통증은 범불안장애(generalized anxiety disorder)의 중요한 증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돈 때문에 생기는 불안도 통증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하니... 얼마 전 흥미롭게 읽었던 기사가 떠오른다.
"돈으로 행복 못 산다?"... 정말 그럴까?(https://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36057)
‘일정 수준 이상의 돈은 행복과 무관하다’라는 통념을 뒤집는 연구 결과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면 돈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중 박혁권의 대사가 증명되는 것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