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사람을 만나보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새해가 되면 빠지지 않고 하는 덕담이 “항상 건강하세요”인 것으로 미루어 봤을 때 아프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을까라고 짐작해 본다. 건강의 사전 상 뜻은 ‘몸에 아무 탈이 없이 튼튼한 것. 또는, 그러한 몸의 상태'라고 하니 ‘항상 건강하세요’라고 덕담해 주는 사람에게는 감사함을 표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몸에 탈 나는 가장 흔한 원인은 아마도 감기지 싶은데... 감기 걸려 몸에 탈이 났다고 해서 사람들이 불안해하지는 않는다. 대부분 감기는 걸려봤고 충분히 쉬면 점차 회복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전에 겪어 보지 못 한 몸의 이상 증상이나 징후를 경험하게 되었을 때는 상황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런 경우에는 나름 몸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의사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얼마 전 저녁에 치킨을 주문해서 아이들과 먹고 있었다. 그런데 입안에서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말로 표현하기도 어려운 이상한 느낌이었다. 먹는 것을 멈추고 거울 앞으로 가서 입안을 살펴보았다. 혀의 오른쪽에 어두운 보랏빛을 띠는 경계가 불분명한 무언가가 약간 솟아 있었다. 순간 심박수가 빨라지면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는 것이 병이다. 나의 머릿속에는 안 좋은 병들부터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설암이면 어쩌지', '이비인후과 진료를 봐야 하나', '조직검사 하자고 하면 어쩌지' 등등의 생각이 폭주하였다. 그야말로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원숭이 한 마리가 난동(monkey mind)을 피우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순간 치킨을 먹고 있었다는 사실이 떠오르면서 통증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닭뼈 조각에 찔리면서 혈종이 찬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몇 분 지난 뒤에 다시 거울을 보니 보랏빛은 옅어져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음 본부에서 난동을 피우던 원숭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다음 날에는 보랏빛 병변도 사라져 있었다.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원숭이가 한 마리가 아니라 순식간에 수십, 수백 마리가 되어버리면서 어지럽고, 숨 쉬기가 어렵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끼는 공황 발작(panic attakc)으로 진행해버리기도 한다. 실제로 입원했다가 안정되어 퇴원했던 환자가 공황 발작을 경험해서 응급실로 급하게 오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있다. 퇴원 후 외래 첫 진료 때 환자는 아직도 진정되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 그날의 이야기를 상세히 나에게 전한다. 나는 환자에게 공황 발작이 왜 일어난 건지 설명을 해주지만 죽을 것 같은 느낌을 경험한 환자는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