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은 인간뿐만 아니라 생명을 가진, 식물이든 동물이든, 모든 생명체에게 벌어지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병에 걸린다는 것은 건강을 잃고, 건강이 회복될 때까지 시간을 잃는 일이며, 회복이 완전하지 못하면 신체기능을 잃기도 하는 일이다. 즉 손실과 관련된다. 채집과 수렵의 시대에는 병에 걸리면 먹거리를 채집 못하고 사냥을 못해서 굶었을 것이다. 농경 시대에는 병에 걸려 파종 시기라도 놓치면 한 해 농사를 망칠 수도 있다. 지금의 자본주의 시대에서는 병에 걸리면 일을 못하고 돈을 벌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시대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은 병에 걸리고 싶지 않았고, 여전히 병에 걸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일이 바라는 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병에 걸리고 싶지 않아 하는 바람은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EBS의 ‘명의‘는 2007년부터 방영 중이고, KBS의 ‘생로병사의 비밀‘은 2002년부터 방영 중이다. TV 프로그램이 이렇게 장수할 수 있는 것은 시청자들의 힘일 것이다. 아마 이 프로그램들의 시청자 연령대를 살펴보면 중장년층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한국 사회에 점점 나이 든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TV 뿐만 아니라 유튜브에도 건강과 관련된 콘텐츠들이 넘쳐나고 있다. 초창기에는 젊은이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이제는 나이 드신 분들도 유튜브를 통해 정보를 접하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다.
"새벽 5시부터 챙겨봐요"…70대 노인도 푹 빠졌다는 이것(https://www.hankyung.com/amp/202402068395g)
나의 아버지도 자신께서 본 건강 관련 유튜브 콘텐츠의 링크를 가족 단톡방에 자주 올리신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관심이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그런 관심은 인스타그램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인스타그램에는 지금도 수많은 건강기능식품들이 건강 정보를 전달하는 듯 한 광고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만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건강이고 그와 관련된 큰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에 따르면 국내 건강기능식품 시장 규모는 지난해(2023년) 6조 2022억 원이며, 2030년에는 인구 고령화 등으로 25조 원 규모까지 커질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진료실에서도 많이 듣는 질문들 중 하나가 건강기능식품 관련 질문이다. "폴리코사놀, 약이랑 같이 먹어도 될까요?", "(크릴오일 상자를 내밀며) 딸이 외국 다녀오면서 사 온 건데 먹어도 될까요?", "옆집 할매가 자기는 치매 예방약 먹는다고 나 보고도 먹으라고 하는데 처방해 줄 수 있는교?" 등등 구체적인 예들은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건강검진에서도 동일한 바람을 확인할 수 있다. 질병관리청에서는 건강검진을 '건강 상태 확인과 질병의 예방 및 조기 발견을 목적으로 건강검진기관을 통해 진찰 및 상담, 신체검사, 진단검사, 병리검사, 영상의학 검사 등 의학적 검진을 시행하는 것입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경계가 없고 한계가 없다. 사람들은 ‘더 먼저, 더 자세하게, 더 정확하게’를 원하고 건강검진 서비스 제공자들은 그 순수한(?) 마음을 그냥 넘기지 않는다. 아래 기사를 확인해보자.
과잉검진시대, 이대로 괜찮나(https://www.k-health.com/news/articleView.html?idxno=69814)
얼마 전에는 아직까지 특정 뇌혈관 질환을 진단할 때 참고하는 정도로 활용하는 특정 유전자의 돌연변이 유무 검사를 건강검진 때 받고서는 결과를 설명 듣고 싶다고 외래 진료를 받으러 온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역시 '불안'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