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경색이 발생해서 응급 시술을 받았던 30대 후반 남자 환자가 있었다. 시술은 다행히 부작용 없이 잘 이뤄졌다. 하지만 혈관이 막혀 있던 시간 동안 좌측 뇌에 손상은 발생했고 언어 장애가 후유증으로 남았다. 그래도 다행히 오른쪽 편마비는 거의 완전히 회복되어 거동과 일상생활에는 문제가 없었다. 퇴원 후 외래 진료에서도 한동안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다. 그런데 언제인가 환자의 아내가 이제는 더 이상 못 견디겠다는 듯이 나에게 이야기를 했다. 남편이 별것도 아닌 일에 너무 화를 많이 낸다는 것이다. 자기한테만 그러는 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화를 내는 일이 잦아서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뇌졸중 후 우울증(post-stroke depression)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항우울제 복용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뇌졸중 후 화냄(post-stroke anger)은 우울증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 편이다. 보고에 따르면 뇌졸중 후 화냄은 뇌졸중 환자 중 약 10~30% 정도에서 발생하는 것 같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화냄은 서서히 줄어드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데 정확한 통계는 아니다. 뇌신경과학 연구자들은 어떤 문제가 특정 뇌 부위와 관련이 있는지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런데 뇌졸중 후 화냄이 특정 뇌 부위의 손상과 관련이 있는지는 애매모호한 상황이다.
스토아 학파 철학자 세네카는 화는 그 사람의 생각이 만들어내는 것이지 생리적인 반응이 아니라고 했다. ‘자신이 부당하게 해를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화를 일으키는 진짜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넷플리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을 보면 세네카의 말대로 화가 어떻게 시작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극 중 남자 주인공 '대니 조'는 미치도록 안 풀리는 개인사 때문에 화로를 사서 불 피워 놓고 생을 마감하려고 했지만 그마저 실패한다. 화로를 환불하려고 마트에 갔지만 영수증이 없어 망신만 당하고 주차장에서 낡은 픽업트럭을 빼는 도중 하얀 고급 벤츠 SUV와 충돌할 뻔한다. SUV의 운전자(극 중 여자 주인공, 에이미 라우)는 대니를 향해 미친 듯이 경적을 울리고 가운데 손가락 욕까지 날린다. 이미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던 대니는 미친 듯이 화를 내며 추격전을 시작하게 된다. 대니 조는 '자신이 부당하게 해를 당하고 있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화를 폭발시킬 상대로 에이미 라우가 걸려든 것이다.
그럼 뇌졸중 후 화냄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의학적으로는 특정 뇌 부위(전두엽)의 손상과 관련이 있다, 우울증과 관련이 있다, 유전적 요인과 관련이 있다 등등 여러 가설들이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밝히지는 못하고 있다. 세네카가 주장하는 화의 원인으로 생각해 보자면 뇌졸중 후 화냄은 '자신이 부당하게 해를 당하고 있다'라는 생각을 별일도 아닌 일상생활에서 너무 쉽게 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