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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cropsia Jul 07. 2024

포식자가 아닌 포식자의 등장

토르의 망치

2024년 한국에 살고 있는 인간의 일상에는 더 이상 포식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포식자에게서 느끼는 공포를 다른 대상에서 느끼고 있다.


학원 수학 시험을 앞둔 강남의 한 초등학생을 떠올려 보자. 강남에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이 몰고 온 의대 입시 준비 광풍이 불고 있다. 수학은 그 광풍을 헤치고 나가기 위한 ‘토르’의 망치와 같은 존재다. 하지만 누구나 토르의 망치를 가질 수는 없다.


“초5가 고2 수학 푼다"…'초등 의대반' 선 넘은 커리큘럼 충격(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0344)


의대를 가기 위해선 이 수학 학원에 꼭 들어가야 한다, 그러려면 이 정도 수학 문제는 풀 수 있어야 한다, 이 정도 선행 학습은 해줘야 한다고 아이에게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엄마가 있다. 아이가 학원에서 수학 시험 문제를 틀릴 때마다 엄마는 실망하거나 화를 내며 아이를 나무란다. 이 아이의 편도체는 반복적으로 활성화되면서 무의식적으로 수학 시험을 포식자로 여기게 될 가능성이 생긴다.


더 나아가 수학 시험을 치는 것도 아닌데 ‘수학 시험에서 내가 문제를 못 풀면 어쩌지’, ‘등수가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등의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편도체를 활성화시켜 포식자를 눈앞에 맞닥뜨린 것처럼 입에 침이 마르고 손에 땀이 나고 평소에는 어디 있는지 느껴지지도 않던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나 여기 있다는 것을 알린다. 수학 불안(math-anxiety)이 시작되어 버린 것이다.


수학 불안은 작업기억(working memory, 경험한 것을 짧은 시간 동안에만 저장하고 인출하는 뇌의 인지기능)을 저하시켜 오히려 수학 성취도를 저하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해외 연구에 따르면 약 20%에서 25%의 어린이가 적어도 약간의 수학 불안을 경험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아주 뛰어난 아이들은 수학 불안을 이겨내고 토르의 망치를 손에 쥘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아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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