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감 2편

by Aroana

A는 가게를 그만두고 나서도 종종 나와 연락을 유지했다. 독학으로 영어를 익히고 산티아고 순례길도 다녀온 그는 여러 면에서 나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책을 좋아하고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하는 그는 ‘경험’을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는 내 가치관을 진지하게 존중해주는 녀석이었다. 틈틈이 우리는 안부를 물었고 그는 스마트스토어를 운영하며 마침내 의미 있는 수준의 소득규모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가게 일을 그만두게 될 때쯤, A와는 많이 친해지게 되었다. 그는 특유의 붙임성으로 나를 굉장히 잘 따랐다. 나는 A를 내가 가장 아껴하는 동생(C)에게까지 (친구해보라며) 소개해주며 곧 그를 내 인생 친구 목록으로 올려놨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사소함과 진지함을 오가는 고민들을 털어놓는 사이가 되었다.


의류회사 물류팀에 합격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K에 대한 내 속내를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조금씩 주변 동료들의 이야기와 정황들이 이건 서로가 호감인 것 같다고 생각하게끔 해주었다. 그러면서 나는 조금씩 K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A와 또 다른 동생 C에게 그녀에게 접근하는 방법에 관한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회사에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어 퇴사를 저울질하던 시기에는 A와 K에게 의지하며 고민 상담을 했다. 후에 나는 A를 가게의 술자리에 초대하며 우리는 다 같이 술을 마시기도 했다. A는 그때 처음 K와 인사를 나누며 나이가 같은 그들은 쉽게 친구가 되었다. 나와 K하고만 맺어졌던 관계에서 이제 A가 들어왔다. 그 후로도 우리 셋은 따로 술자리를 가졌을 만큼 서로 친하게 지냈다.


퇴사 후 다시 취준 기간을 가질 때도 다른 가게 동료들과 달리 K와 A와는 개별적으로 자주 만났다. 특히 A는 내가 쉴 때 우리 집에 놀러와 자고 갔을 정도로 돈독했다. 서울에서 어울린 친구 중에서는 처음으로 아빠가 있는 시골집에도 데려갔을 정도였다. 한편 K는 자신의 집에 나와 A를 초대해 같이 홈파티를 하기도 했다. A와 K는 연락을 주고받는 것처럼 보였으나 크게 대수롭지 않아 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우리 셋의 관계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C에게 ‘그날’ 있었던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까진, 나는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아무런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은 내가 기자로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나는 가게의 동료들에게 전화해 재취업 축하 기념으로 우리 집에서 다 같이 파티를 벌이자고 했다. 이때 가게 동료 두 명과 K와 A를 불렀다. 우리는 다 같이 술을 마시며 서로의 근황을 물어가며 술기운은 점점 고조에 달하고 있었다. 어느덧 K가 취해 조금씩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때 나는 K를 부축하려 했지만 이미 옆에는 A가 그녀에게 다가서며 부축을 도왔다. K가 집에 간다고 하자 곧이어 A가 바래다준다면서 자신도 가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 둘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A와 K는 집이 반대 방향이어서 조금은 의아했지만 그래도 친구라 그렇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며칠 뒤 나는 C에게 K에 관한 연애 관련 조언을 듣고자 이날 있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C는 나에게 섬뜩한 경고문을 하나 날려주었다.


“형, 아무래도 이제 A에게 K에 대한 이야기는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게 무슨 소리야?, 왜 그러는데?”

“확실한 건 아닌데, A와 K가 둘이 나갔다는 건 좋은 신호가 아니야”

“아니, 둘이 친구고 너도 A 잘 알잖아”

“형, 내 말 믿고 A 신경 쓰지 말고 그냥 형은 형 방식대로 나가. 그리고 나중에 K하고 또 술자리 가질 기회가 되면 A 말고 차라리 나를 불러. 그때 내가 확실히 상황 파악 해줄게”

“그래. 알았다”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나는 K의 집에서 술자리를 가질 기회를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