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의 고백
나는 뚜벅이다. 운전을 못한다. 면허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신분증을 대신한 고운 면허증이 있다. 심지어 갱신도 꼬박꼬박 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면허를 땄다. 친구와 둘이 운전학원에 등록해 필기를 수월하게 통과했다. 운전 학원에서도 강사님의 말씀을 쏙쏙 받아들여 큰 실수 없이 연수를 끝냈다. 면허시험장에서 본 실기 시험도 무려 99점을 받았다. 교차로를 지날 때 조금 속도를 높인 것이 그만 1점이 깎인 이유였다. 도로주행을 연습하며 조금 가슴 떨림을 느끼긴 했지만, 모든 시험을 한 번에 합격했다.
문제는 첫 실전이었다. 들뜬 마음에 아빠 차로 시내 운전에 도전했다. 목적지는 남동생이 다니는 고등학교였다. 아빠를 옆에 태우고 호기롭게 출발했다. 당시 우리 집은 전철역 앞 번화가였기에 골목 양쪽으로 주차한 차를 신경 쓰며 도로에 닿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도로를 가득 채운 차를 비집고 끼어들기에 성공할 때까지는 좋았다. 아빠도 그날은 더 차분하게 나를 격려해 주셨다.
"주변 차들이 알아서 피해 갈 거야. 신경 쓰지 말고 천천히 움직여도 돼."
사거리에 들어섰다. 좌회전 신호. 오른쪽의 버스가 무서워 왼쪽 차선을 침범해 버렸고, 지나가는 차들로부터 호되게 혼이 났다. 머리끝이 쭈뼛 서고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온몸이 나무 막대기처럼 뻣뻣하게 굳었다. 천신만고 끝에 목적지에 도착해 운전대를 아빠에게 넘겼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직장도 걸어서 20분인 거리였기 때문에 나의 운전 경험은 이것으로 끝이 났다.
올해 칠순인 엄마는 내가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운전을 시작하셨다. 당시 아빠 건강이 악화된 이유도 있고, 둘 다 뚜벅이인 우리 부부를 위해 50대에 들어선 엄마가 용기 있게 나선 것이다. 출산 후 복직을 앞두고 남편도 차를 구입했다. 아이가 둘이 되며 혼자 이동할 때 어려움도 있었지만, 튼튼한 다리를 십분 활용해 몸으로 아이들을 키웠다.
그렇다. 운전을 못해도 지금까지 사는데 지장이 없었다. 먼 거리는 포기하고, 손이 무거우면 택시 타고, 상황이 되면 얻어 타기를 반복했다. 그 사이 남편도 다리 수술을 두 차례나 했고, 엄마도 이제 칠순이 되었다. 얻어 타고 다닌 20년 세월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지 운전 생각을 하면 체기가 올라온다.
며칠 전 글쓰기 모임에서 '딴짓'을 해보자는 얘기를 나눴다. '어떤 딴짓을 할까?' 생각 끝에 운전에 닿았다. 세월이 많이 지났으니 다시 한번 도전해 보면 두려웠던 감정이 사라지지 않을까 싶었다. 용기 내어 남편에게 말을 꺼냈다.
"운전 연습을 한 번 해보면 어떨까? 운전대 잡은 느낌을 글로 쓰면 좋을 것 같아. 그러다 괜찮으면 시작해 볼 수도 있고……."
딴짓이라는 글쓰기 주제에 호의적이었던 남편이 운전 얘기에 얼굴색이 변했다.
"안 돼! 딴짓에 왜 목숨을 걸어. 생각도 하지 마!"
호되게 거절당했다. 기분이 묘했다. 오락가락하는 내 마음을 남편의 판단에 기대었나 보다. 거절해 주니 서운하면서도 한 편 안도의 숨이 나왔다.
다른 일에는 빠르게 결정 내리고 뒤돌아보지 않는 편이다. 유독 '운전'에는 마음이 오락가락하고 나약해진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책상 한구석 깊은 곳에 숙제를 숨겨둔 심정이다. 숙제를 꺼낼 수나 있을지, 들춰볼 날이 있을지. 미지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