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등산화 속 하이힐
나는 선을 지키는 여자. 오늘도 선을 지키기 위해 남들보다 일찍 움직인다. 목적지는 경상북도 안동시. 그들과의 점심식사를 피하려면 오전 11시 전에 도착을 해야 12시 전에 미팅을 마칠 수 있다.
부산에서 쉬지 않고 밟아도 3시간은 족히 달려야 하니, 아침 출근 시간 도심을 빠져나가는 시간을 감안하면 적어도 오전 7시에는 출발해야 마음이 놓인다. 아침잠이 많은 나로서는 전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선을 지키는 미팅을 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이다.
토목 현장에 착공식이 시작되기 전 먼저 들어가 사전 작업이라는 걸 한다. 이 말은 정말 논, 밭, 산만 있는 촌에서 공사 관계자들과 미팅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난 20대부터 약 30년 간 빡센 남자들로 둘러 쌓인 거친 토목 현장에서 일을 해 온 더 빡센 여자이다.
공사 현장이 대부분 촌이다 보니 작은 빌라, 원룸, 허름한 상가 사무실 같은 곳이 미팅 장소가 되거나 이마저도 준비가 안 된 곳은 근처 다방에서 처음 인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비록 논밭밖에 없는 촌이지만 미팅 가는 날은 난 언제나 예쁜 원피스를 입고 고층 빌딩같이 높은 하이힐을 신고 나간다. 미쳤다고 할 수 있겠지만 장소가 어디든 상대가 누구든 미팅에 나오는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게 미팅에 대해 선을 지키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안동 미팅을 가는 그날도 선을 지키기 위해 새벽부터 서둘렀다. 미팅을 마치고 나니 점심시간. 배가 너무 고팠다. 사실 내가 선을 지키는 것 중 하나가 미팅을 한 사람들과 점심을 같이 먹지 않는 것. 그래서 점심시간 전에 미팅을 끝내기 위해 항상 일찍 움직인다. 그러다 보니 미팅을 끝내고 나면 배가 고프기 일쑤였다.
날씨마저 찌는 한 여름이라 너무 더워 뭐라도 먹어야 3시간을 운전해서 부산으로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안동 IC에서 현장까지 오는 길에도 식당이 보이지 않았었다. 어디 가서 이 배고픔을 채워야 하나? 난 유명 관광지 근처에 가면 큰 식당이 많겠다는 생각에 안동 하회마을로 냅다 출발했다.
식사를 위한 목적지를 향해 30분쯤 운전했을 때 큰 식당이 보였다. 어린아이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거처럼 너무 기뻐 동생과 나는 동시에 "와!!" 하며 기뻐서 서로를 잠시 바라보았다.
허기에 빨리 뭔가 먹어야 된다는 생각하나로 안동 하회마을로 직진한 지 30분 정도가 지나자, 그렇게 애타게 찾던 큰 식당이 드디어 나타났다. 나는 동생 두나와 함께 차 안에서 탄성을 질렀다. 예전 남자 친구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을 때도 이거보다 더 기쁘지 않았었던 거 같다.
큰 식당 앞 드넓은 주차장 한가운데 급하게 차를 주차하고 움직임만은 우아하게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두나는 나를 도와 함께 일하는 내 친 여동생. 나는 식당 크기만큼 넓은 주차장 한가운데 잽싸게 차를 주차하고 두나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마음은 정말 오두방정을 떨며 뛰고 싶었지만 원피스에 하이힐을 신고 있는 선을 지키는 여자인지라, 우아함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천천히 걸어 식당으로 들어섰다.
식당에 들어서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마치 결혼식 피로연을 막 끝낸 것처럼 모든 테이블이 초토화되어 있었다. 테이블에는 빈 그릇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수많은 의자는 여기저기 제 자리를 벗어나 정신이 없다. 하지만, 이 식당은 100명 이상은 너끈히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식당이라 사장님을 불렀다. 한참을 불러도 나오지 않는 사장님. 나와 두나는 오줌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학수고대하던 사장님이 땀을 뻘뻘 흘리며 나타났다.
이제 밥을 먹을 수 있다! 난 사장님을 보자마자
“어디에 앉을까요?”라고 자리부터 찾았다.
“아... 그게...”사장님의 난처한 표정이 슬픈 예감을 던져주었다.
“방금 관광버스 여러 대로... 단체 손님들이 계속 오시는 바람에...재료가 다 떨어졌어요...”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재료도 떨어졌고 우리의 희망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며칠을 굶은 것도 아니고 고작 아침 한 끼와 이제 막 지난 점심 한 끼일 뿐인데 그 나이 땐 왜 이렇게 허기가 졌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와 동생은 배고픔을 정말 조금도 참지 못했다. 나와 두나는 떨어졌던 희망을 다시 주워 담으며 이대로 포기하지 말자며 식당을 나왔다.
먹어야 한다는 집념 하나로 하회마을로 달렸다. 하회마을에 도착하자, 초등학교 운동장 크기의 주차장이 나타났고 평일임에도 주차장은 관광버스와 차들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차를 대고 내리는데 하이힐 굽에 이상한 게 밟힌다. 주차장 바닥에 철길에 까는 돌이들이 깔려있었다. 하이힐 발로 간신히 주차장을 빠져나오자, 주변에 온통 알록달록 등산복에 등산화를 신은 사람들 전치다. 이 사람들 가운데 원피스와 하이힐이라니! 게다가 8월 뙤약볕에 시폰원피스에 하이힐을 신은 두 여자를 보며 등산객들은 힐끔거리고 수군거렸다. 순간 부끄러움이 확 밀려오고 돌멩이에 까진 뾰족한 굽과 땀에 젖은 원피스 등이 흥건했지만 이건 잠시 뿐. 먹어야 한다는 본능이 날 자극하며 매표소로 걸어갔다. 등산화 속 하이힐로 매표소에 줄을 섰다.
“몇 분이세요?”
“두 명인데... 혹시 표 끊고 하회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식당이 있나요?”
“네?”
“안에 식당이 있냐고요.”
매표원은 다짜고짜 식당부터 묻는 게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알 게 뭐야? 난 하회마을 관광이 아니라 밥을 먹어야 한다고!!
다행히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식당이 있다고 했다. 나와 두나는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인 후 매표소 직원이 알려준 식당 방향으로 직진했다.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식당이 나타났다. 내 생전 식당을 이렇게 경롭게 바라보다니! 하회마을답게 초가 형태로 지어진 전통 분위기의 식당이 줄지어있다. 식당은 많았지만 고를 여유도, 위장도 없다. 그냥 첫 번째 식당으로 들어갔다. 메뉴판도 펼치기 전에 안 동하면 ‘간고등어’라는 생각에 그냥 간고등어를 주문했다. 간고등어는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구워서 나오는 건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마치 듣기 싫은 수업이 잠시 멈춘 느낌이랄까. 음식을 기다리는 설렘 가득한 시간을 만끽하며 밥을 먹고 할 일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좀 전까지만 해도 목표물을 향해 돌진하는 맹수처럼 식당만 찾느라 그 어떤 여유도 없었지만 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올 때가 다르다 하지 않았던가? 이제 밥을 먹은 후 우아한 원피스와 하이힐 차림으로 하회마을도 구경하고 아기자기한 기념품도 살 생각을 하니 눈가에 미소가 절도 번진다.
그런데 이런 기분 좋은 상상도 잠시,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간고등어는 나오지 않고 저 멀리 번개가 내리꽂더니, 비를 잔뜩 머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먹구름이 몰려오는 게 보인다. 즐거운 시간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비가 오기 전에 부산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런 조급함을 알았는지 드디어, 간고등어님께서 당도하셨다.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간고등어! 막 썸을 타기 시작한 남자 친구의 연락도 이렇게까지 기다리지 않았던 내가 심장이 콩닥거렸다. 기대감과 설렘이 잔뜩 실린 젓가락으로 간고등어의 살점을 떼어 한 입 넣어본다.
헉! 이건 뭐지? 넣었던 간고등어 살점을 그대로 뱉어 두루마리 휴지에 돌돌 말아버렸다. 마치 소금을 집어삼킨 것처럼 짜기만 짜고 한 겨울 논바닥처럼 말라비틀어진 간고등어! 우리 둘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숟가락을 내팽개치듯 놓고 식당을 나왔다.
그래, 이 식당이 무슨 죄가 있겠어. 배고픔에 마비돼 냅다 들어와 먹을 생각만 한 내가 죄지. 부산에서 싱싱한 생선만 먹고살았던 나에게 간을 세게 한 생선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요즘 같았으면 스마트폰으로 검색이라고 해봤을 테지만 라떼는 스마트폰이 없던 아날로그 시대였기에 먹어보기 전에 이 집이 맛집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었다.
우리는 결국 그토록 바라던 밥을 포기하고 시간낭비, 체력낭비, 돈낭비 이 세 가지 낭비를 한꺼번에 하며 바보 같은 하루를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항상 선을 지키기 위한 미팅 준비를 한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있을 때면 난 생각한다.
‘나는 과연 선을 지키는 여자인가, 아님 쓰잘데기 없는 고집을 피우는 여자인가?’
여러분의 의견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