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찡긋거리는 일이 많아졌다.
폰을 보거나 책을 읽을 때는 쓰고 있던 안경을 벗는 것이 더 편안해졌다.
노안이 시작된 것을 모르지 않는다. 신체 부위 중 가장 빨리 노화가 진행된다는 눈이 내게 보내는 신호를 난 이미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런데 대상포진을 앓고 나서부터 더 심하게 눈의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오른쪽 눈은 무언가에 짓눌리는 것처럼 눈을 뜰 때마다 무게감을 느낀다. 아무도 알 수 없는, 온전히 나만 느낄 수 있는 무게감. 컨디션 난조로 오는 일시적인 증상이기를 바라며 버티다가 주말 김장을 하고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안과 진료를 보기로 했다. 올해 1월에 안경 도수를 조정하고 1년이 채 지나기 전에 다시 찾은 안과. 그때는 분명 정말 한참은 안과에 갈 일은 없겠다 생각했는데.
몇 가지 검사를 하고 진료실로 들어가 원장님에게 불편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이렇게 저렇게 눈도 들여다보고... 검사 결과도 확인하시더니. 최근 생활에 변화가 있는지를 물으셨다. 올해 새롭게 시작한 공부가 있어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이야기와 백내장은 아닐까 걱정스럽다는 내게 아주 명료한 답을 주셨다.
"눈에 보이지는 않고 나만 아는 증상이라 답답하죠? 그런데 지금 느끼고 있는 그 모든 게 노안의 증상입니다. 돋보기 쓰실 단계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초점 안경을 쓰실 건 아니죠? 그럼 아무 변화 없으신 거예요. 괜찮아요. 건강하십니다."
그 답을 듣고 싶어서 온 것 같았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혼자 끙끙거리다가 더 병이 날 것만 같아서 전문가의 판단이 필요했던 거 같다.
기분 좋게 진료실을 나서는데 원장님이 한마디 덧붙이신다.
"공부를 그만하시면 눈이 훨씬 편해지실 거예요."
허걱~
진료실 밖에서 대기하던 H가 듣고는 명의라고 좋아한다. 자기가 하고픈 말을 대신해 주는 원장님이 고마웠는지. 자기의 심리치료까지 함께 받은 거 같다며, 의사 말을 들어야 건강하게 사는 거라며 당장 공부를 그만뒀으면 좋겠다는 말을 랩하듯 하는 H. '
그래. 그만둘 마음은 없지만 그래도 내 몸 생각해서 조금만 살살하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