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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정 Jan 17. 2024

우아한 일요일


아이가 없는 일요일을 보내적이 있었던가? 내 숨소리마저 크게 들리는 고요한 집안에 혼자 앉아 기억을 더듬어 본다. 아마도, 오늘이 처음인 듯하다. 일요일의 우리 집은 언제나 아침, 점심, 저녁 세끼를 차려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조카가 우리와 함께 일요일을 지낼 때면 인기 오락프로그램이었던 "삼시세끼" 촬영하는 것 처 힘들다며 투덜대곤 했었다. 현재 시간 일요일 저녁 7시, 몹시 분주해야 할 이 시간에 우아한 일요일은 보낸 나는 글을 쓰고 있다. 


며칠 전부터 남편은 아이를 데리고 스키장을 다녀오겠다며 의욕이 충만해져 있었다. 아이들 친구 아빠로 만나 오면서 친해진 아빠 모임에서 아이들만 데리고 가는 강원도 여행을 기획했다고 한다. 요즘 부쩍 사이가 좋아진 부녀는 1박 2일 일정을 계획하느라 바쁜 며칠을 보내는 것 같았다. 나 또한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했던 차라 자유 부인이 될 날을 기다리며 1박 2일을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하며 설레는 시간이 가졌다.


오늘 아침 8시, 아이가 아빠 손을 잡고 현관 앞에 섰다. 아이가 “엄마 갔다 올께. 보고 싶어도 전화는 안 할 거야” 한다. “왜~애?”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것이 이제는 걱정이 아닌 설렘이 되었구나 싶어 아이에게 약간의 서운함을 느끼며 물었다. “친구들 있는데 어떻게 전화해? ” 한다. 아기가 아님을 늘 강조하는 딸은 벌써 어리광 부리는 모습을 친구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가 보다. 날이 갈수록 저만치 앞서 나가는 딸아이에게 아쉬워해야 할지, 반가워해야 할지 아직 결정을 못 내린 채 어정쩡하게 서있는 엄마를 남겨두고, 아이는 아빠를 따라 집을 나섰다. 1박 2일간 동지가 될 두 사람을 응원하며 다시 고민에 빠졌다.

'자, 떠날 사람들은 떠났으니 남아 있는 나는 이제부터 무얼 한담?'


하고 싶은 것은 정하진 못했어도 절대 하지 않을 일은 정해뒀다. 바로 집안일. 혼자 맞이하는 귀한 일요일을 집안일 따위를 하면서 시간을 낭비할 순 없는 노릇이다. 일단 운동부터 하려고 헬스장으로 향한다. 러닝머신 위에서도 고민은 계속된다. 집으로 오는 길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에 가야겠다고 결정했다. 어제저녁에 만들어 두었던 치아바타 하나를 꺼내 점심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만들고 핸드드립으로 정성스레 커피 한잔을 내려 집 근처 도서관으로 향했다. 항상 가는 미디어실 문을 열자 익숙한 내 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여유롭고 넓은 책상, 따뜻한 실내 공기, 조용히 책장을 넘기는 소리, 타닥타닥 춤추듯 들리는 컴퓨터 자판소리, 그리고 아직 향긋하고 따뜻한 커피 한 모금. 맞아, 이곳만큼 좋은 곳은 없어. 도서관은 늘 나를 평온하게 해 주지. 책들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순간이 좋아.

여러 분야의 잡지도 좀 보고, 빌리고 싶었던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마침 있어 책도 빌리고,  "코스모스" 책을 보면서 과학 지식이 어려워 낑낑대기도 하면서 몇 시간을 보냈다. 집에 가서 밥을 챙겨야 할 식구가 없으니 한없이 자유로웠다.


즐겁게 책의 페이지를 넘기다 창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가 오는 일요일엔 탕목욕을 해야지. 부랴부랴 짐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뜨끈한 물을 받는 사이 평소 보고 싶었던 영화 한 편을 넷플릭스에서 고르고 달짝 지근한 유자차도 준비했다. 따끈한 물이 차올라 수증기로 가득 찬 욕조 안에 몸을 담갔다. 신년부터 바쁘게 지내느라 고됐던 몸과 마음이 녹아내린다. 로맨스 영화에 푹 빠져 있을 무렵 아이아빠가 사진을 보내주었다. 비 대신 눈이 펑펑 내린다는 강원도 스키장에서 눈썰매를 타는 아이의 밝은 미소를 보니 나까지 덩달아 행복해진다. 


피로가 풀리는 목욕을 끝내고 간단하게 이른 저녁을 먹은 이 글을 쓰고 있다. 시원한 맥주 한잔을 홀짝이면서 내일이면 만날 남편과 아이를 그리워한다. 나만 있는 이 집은 적막하지만 집안 곳곳 보이는 그들의 흔적은 혼자라도 함께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움마저 행복이 되는 지금 이 순간이 반짝거리며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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