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시대의 너와 나의 이야기
코로나 시대가 시작된 건, 딸아이가 다섯 살 되던 해였다. 설연휴가 지나고 코로나로 온 나라가 시끌거렸지만 남의 일이니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당분간 어린이집을 휴원한다는 원장님의 갑작스러운 통보가 전해지면서 코로나는 중요한 내 일이 되어 버렸다. 여느 때처럼 1-2주만 버티면 끝나겠지 싶었던 예상은 빗나갔고 연일 뉴스에서는 늘어가는 코로나 확진자 소식을 전해왔다. 난리가 난 세상에 아이를 바깥에 내놓을 용기가 없으니 꼼짝없이 아이와 집안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어린이집을 보내면서 아이와 분리된 삶이 익숙해진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하루하루를 무얼 하고 지내야 할지 몰랐다. 육아가 어려운 숙제였으니 아이와 둘만의 시간이 부담스럽고 두려웠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집안이 아닌 바깥을 선택했었다. 전시관으로, 과학관으로, 문화센터로 언제나 아이와 함께 갈만한 곳을 검색하곤 했다. 그렇게 어디든 갔다 오면 반나절이, 좀 먼 곳은 한나절이 훌쩍 지나가니 수월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었는데 코로나라는 전염병으로 인해 바깥나들이가 쉽지 않아진 현실을 마주하고 있었다. 딸바보 남편은 마트도 가면 안 된다는 염려의 말들로 날마다 겁을 주어 나를 더 집안에 옭아맸다. 마침표가 없는 둘만의 시간은 내 몸을 가두고 내 마음을 가두었다. 이를 어쩐담.. 남몰래 한숨을 쉬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나날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이의 눈에 다래끼가 생긴 것도 그 무렵이었다. 아주 작게 시작한 다래끼는 아이의 눈을 다 덮을 만큼 커졌다. 약을 부지런히 먹여도 다래끼의 진행은 막을 수가 없었다. 병원에선 이 정도면 외과적 수술이 필요하다며 아이가 어리니 큰 병원에 가라고 했다. 아이가 어리기도 했지만 나 또한 수술을 지켜볼 자신이 없기에 다래끼가 저절로 없어지길 기다리기로 했다. 나 어릴 적엔 다래끼는 며칠만 지나면 그냥 낫는 것이었으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한번 생겨난 아이의 다래끼는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았다. 눈만 뜨면 아이의 눈부터 확인했다. 오늘은 얼마나 줄어들었나, 내일은 없어지려나.. 하루종일 내 시선은 아이의 눈에 머물렀고 한숨은 더 깊어지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등원하라는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아이와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생겼고 하루종일 아이의 눈을 보지 않아도 되니 살 것 같았다. 빠른 속도로 아이의 다래끼가 줄어드는 것처럼 보였고 드디어 흔적이 없어졌다. 다래끼가 생긴 지 세 달 만이었다.
일상회복은 아주 잠깐 뿐이었다. 또다시 코로나 확진자의 급증으로 떠들썩해졌다. 당연한 순서로 어린이집이 또 문을 닫았고 가정보육이 시작되었다. 나라에서 시키는 모든 지침을 따르며 조심하고 조심하는데 사태는 점점 심각해져 갔다. 망할 코로나. 나와 아이를 가두는 모든 것들이 원망스러웠다.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아이의 눈에 또다시 다래끼가 생겼다. 하루 종일 둘이 마주 보고 앉아 다래끼를 보고 한숨 쉬는 일이 되풀이 되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에 잔뜩 겁먹은 내 마음이 다래끼를 만들어 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죄책감이 얹어지니 하루하루가 더 고통이었다. 내가 엄마가 맞나? 내 새끼를 누구보다 사랑하는데 둘만의 시간이 왜 이렇게 힘이 들까?
또래 아이를 키우는 동네 언니가 재택근무를 하는 처지라 본인은 아이에게 영화를 가끔 보여준다며 나에게도 그렇게 해보라고 제안 했다. 취향이 확고하고 극적인 상황을 무서워해 만화영화도 잘 안 보려는 아이에게 절실한 마음으로 다양한 영화들을 선택지로 제시했다. 이거 재밌겠다. 이거 어때? 엄마의 추천 영화에 고개를 저어대던 아이가 겨울왕국을 선택했다. 엘사와의 첫 만남이었다. 겨울왕국의 힘은 실로 엄청났다. 날마다 겨울왕국을 보고 또 봤다. 집안에는 하루 종일 렛잇고 노래가 흘렀다. 엘사 드레스를 입고 싶어 해서 한벌 장만해 줬더니 엘사 사랑은 더 깊어졌다. "영화 볼까?"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이는 엘사 드레스를 꺼내왔다. 빛을 받으면 반짝반짝 빛나는 파란색의 드레스를 입고 기다란 망토를 늘어뜨렸다. 거기에 더해 왕관과 목걸이, 귀걸이까지 장착하여 완벽한 엘사가 되면 앉아서 겨울왕국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아이가 영화를 보는 두 시간은 내 마음의 여유를 찾는 시간이기도 했다.
영화를 원어로 보여줘서 인지 시간이 지나자 아이는 영어로 노래를 따라 부르고 엘사의 대사들을 드문드문 따라 말하기 시작했다. 엘사가 살고 있는 디즈니랜드에 가는 것이 꿈이라던 아이가 어느 날 "엄마, 엘사처럼 영어말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라고 했다.
주변에서 영어학원 보내는 사람들이 돈이 많이 들어간다며 하소연하는 소리를 종종 들었던 터라 학원을 보낼 생각은 없었다. 아이가 줄줄 외우는 렛잇고의 가사도 제대로 모르는, 시험으로만 영어를 배운 엄마는 아이의 바람에 부응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때 맘카페에서 "엄마표영어" 글을 만났다. 엄마표 영어 관련 책을 몇 권 읽고 나니 아이와 함께 할 일이 눈에 보였다. 아이가 볼만한 영어그림책을 사고, 엄마표 영어 가르쳐 준다는 수업을 들으며 방법을 익혔다. 투박하고 못난 발음으로 매일 영어 그림책을 읽어주고 아이가 좋아할 만한 영상들을 찾아냈다. 서로가 힘을 빼지 않을 적당한 루틴을 만들고 규칙을 정하는 약속들을 해나갔다. 그러는 사이 아이의 눈다래끼는 더 이상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루한 공백을 채우는 할 일을 찾고 나니 둘만의 하루가 더 이상 길지 않았다. 엄마표 영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아이가 원하는 것에 눈을 맞추고 귀를 기울이게 되니 아이와의 시간이 즐겁고 행복해졌다.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아이의 눈다래끼는 꼬박 2년간을 이쪽저쪽 눈에 골고루 생겼다 없어졌다를 반복했다. 다래끼가 생긴 것은 누구의 탓이 아닌 알레르기가 많은 아이의 성장과정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아이의 모든 부대낌이 그러하리라. 코로나 또한 우리의 일상을 앗아간 원망의 대상이 아니었다. 코로나 덕분에 우리를 지켜주는 안락한 집안에서 아이와 나는 서로를 자극했고 도왔고 사랑했다. 그리고 같이 훌쩍 컸다.
아이는 바라던 대로 영어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고 나는 아이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면서, 나를 사랑하게 되었고 세상을 사랑하는 법까지 배우고 있는 중이다. 작아진 엘사드레스는 지금도 아이의 최애 소장품이다. 여전히 빛나는 엘사 드레스를 가지고 조만간 디즈니랜드에 가려고 내가 버는 돈을 잘 모으는 중이다. 엘사를 만나는 꿈을 이루고 나면 아이는 또 어떤 꿈을 이야기할까? 지금의 나는,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여정에 동참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