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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정 Nov 14. 2023

면접을 준비하는 그대들에게


겨울이 오면서 1년 계약직의 면접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여기저기서 내년 강사 모집 구인 정보가 속속들이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작년 보드게임 강사로 재취업하기 위해 교육청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갈만 한 거리에 있는 모든 학교에 지원서를 제출했었다.


경력란의 공백이 초라해 보여 십여 년 전 캐캐 묵은 이력을 적어 넣고, 일할 기회를 주십사 정성 들여 자기소개서를 썼다. 커리큘럼은 미숙하지만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내용으로 계획해서 기재하고 자격증, 각종 증명서도 준비했다. 1차 서류접수를 마치고 나면 합격을 알려주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오랜만의 도전은 활력을 주었다. 하지만 무경력자에게 기회는 그리 쉽게 오지 않았다.


드디어 한 곳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해왔다. 새로운 도전을 위한 첫 면접. 결혼과 육아로 10년이 넘는 시간을 사회활동과 떨어져 있었으니, 면접의 모든 단계가 낯설었다. 떨림은 1차 서류 합격 문자를 받는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면접 볼 학교를 찾아가고, 내 순서를 기다리고, 면접관 앞에 앉는 순간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질문에 대답하는 떨리는 목소리는 점점 갈라지더니 목이 매이기까지 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면접관들의 애처로운 시선에 힘을 내보지만 결과가 어떨지 예감할 수 있었다. 첫 면접을 마치고 나오니 큰 장벽 같았던 처음을 처리했다는 후련함에 스스로가 대견하고 감격스러웠다. 서류를 준비면서도 수많은 망설임이 있었다. 괜히 힘만 빼는 것 아닐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까? 취업한다고 해도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일어나지 않은 수천 가지 일들을 상상하면서 뒷걸음치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첫 신고식을 치르고 나니 해내고 싶은 마음이 명확해졌다. 드디어 걸음마를 시작했으니 앞으로 걸어 나가기만 하면 된다.


그날 이후 면접전쟁이 시작되었다. 50여 곳이 넘는 학교에 서류를 보냈다. 어떤 곳으로 흘러 들어간 나의 경력 없음 지원서는 버려졌을 테지만 면접기회를 준 학교는 20여 곳이나 되었다. 1월 한 달은 그야말로 면접의 연속이었다. 여러 학교를 갔고 여러 면접관을 만났다. 다양한 질문을 받았고 생각하는 바를 떨지 않고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면접 가기 전 머릿속에 면접 상황을 그려보고 예상질문에 대답하는 연습을 했다. 뭐든 해보면 는다고 면접의 떨림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할 수 있는 말도 많아지고 자신감도 더 생겨났다. 그럼에도 결과는 처참했다. 면접을 보고 나면 스스로를 자화자찬하며 합격소식을 기다렸으나 기대와 달리 연일 불합격 소식이 전해졌다. 매일매일이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는 나날이었다.


폭설주의보가 내리진 어느 날 아침, 눈길을 뚫고 엉금엉금 기다시피 또 면접을 보러 갔다. 언제나 그렇듯 경력 없음은 큰 난관이었다. “누구나 한 번은 처음이 있지 않습니까? 비록 경험은 없지만 열정이 가장 높은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기회를 주시면 열심히 할 자신이 있습니다,” 마음을 꺼내 보여줄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마지막 말을 남기고 면접장소를 떠나왔다.


눈길을 헤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음이 부서지고 있었다. 재도전하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좁은 틈바구니로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 난 내가 안쓰러웠다. 지겹게 쏟아져 내리는 눈마저도 내 앞길을 막는 것 같아 서러웠다. 그리고 그날 합격 소식을 들었다.

“브라보”

물론 그 뒤로도 도전은 멈추지 않았고 줄줄이 떨어졌다. 어지간한 면접에는 떨지 않는 의연함을 얻긴 했다.


많은 도전 끝에 2곳에 합격했고 올해 열심히 배우고 일했다. 어느새 1년이 흘렀고 또다시 찾아왔다. 1년 계약직 강사들의 소리 없는 전쟁의 시간. 구인란을 살펴보며 작년의 전투력이 많이 사그라들었는지 한숨부터 새어 나온다. 또 시작해야 하는구나. 긴장으로 뻐근해지는 시간을 두어 달은 거쳐야겠구나. 이런 염려들이 쌓이고 있을 무렵 동행책방 토론을 위해 읽고 있는 논어의 공자님 말씀에서 답이 보인다.


"자리가 없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그 자리에] 설 수 있을지를 걱정하라.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알아줄 만한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한다."

- 우리말 속뜻 논어 제4편 이인 14절


공자의 제자들도 취업이 큰 문젯거리였는지 취업걱정만 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일침을 가했다는 구절이다. 치러내야 할 골치 아픈 과정들을 생각하느라 정작 스스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고민은 제쳐두고 있었으니 구절을 접하는 순간 뜨끔하다. 몇 년 전 코로나로 바깥활동이 쉽지 않을 때 아이와 함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주말농장을 분양받은 적이 있었다. 재미로 시작한 일은 풀과의 사투가 되었다. 풀은 막 자라기 시작할 때 뽑지 않으면 땅밑으로 얽혀 들어가 단단히 뿌리내려갔다. 그러고 나면 도저히 그냥은 뽑히지가 않았다. 낫으로 베어낸다 해도 뿌리가 깊게 박혀 있으니 다시 무성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풀의 강한 회복력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미미하게 보이는 풀조차도 살아남기 위해 흙과 하나라도 되려는 듯 부단히도 땅속으로 곧고 넓게 뿌리를 내린다. 나도 실력을 제대로 갖추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면 누구나 알아줄 만한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깊은 뿌리 덕분에 시련이 와도 바로 회복하는 풀처럼,  내면이 튼튼하다면 어떤 어려움이든 걱정 없이 마주할 수 있을 테고 나는 지금 그 과정 속에 있음을 확신한다.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은 작년에 충분히 경험했다. 이 한 가지만 잊지 않고 기억하면 된다.



이제 한숨을 거둬들여야겠다. 비로소 1년의 경력이 생겼으니 나를 제대로 보여 줄 자기소개서부터 다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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