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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마 Dec 20. 2023

정신과 의사가
가족을 멀리하라고 할 때

말 안 들어서 죄송합니다 선생님

네 인생에서 네가 바라는 건 단 하나도 이뤄지지 않을 거야.


만취한 엄마가 얼마 전 내게 말했다. 나는 이런 저주를 살면서 떠올려본 적조차 없다. 아무 맥락도 없이 시작되어 나를 세뇌시키듯 반복되는 저주를 그저 듣고만 있었다. 술에 취하면 사람이 이토록 잔인해지기도 하는구나, 그땐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리고 같은 말을 오늘 맨 정신의 엄마에게서 들었다. 앞으로의 계획이 뭐냐고 묻기에 그저 대답했다. 곧이어 응원도 격려도 아닌 저주가 돌아왔다.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요즘 걷기에 빠져 많이 건강하고 온화해진 엄마가 아주 친절한 투로 말했다. "살아보니 내 뜻대로 되는 일 하나도 없더라. 너도 네 인생에서 네가 바라는 건 단 하나도 이뤄지지 않을 거야." 


엄마를 변호해 보자면 아마 이런 거겠지. 엄마는 내가 자신만만한 채로 기대하고 꿈꾸며 살다가 뜻밖의 실패와 고난을 맞닥뜨리면 속절없이 무너질까 우려되어 그런 건지도 모른다. 허황된 기대치를 현실로 끌어내리고 나면 추락할 때의 낙차가 줄어드니 정말로 나는 덜 다치게 될지도 모른다. 


라고 쓰고 나서 내가 지나치게 애쓰고 있음을 깨닫는다. 나는 자신만만하지도 않고, 허황된 목표를 꿈꾸지도 않는다. 그리고 혹여 그렇다 한들, '네가 바라는 건 단 하나도' 이뤄지지 않을 거라는 저주를 반복해서 듣고 살아야 할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그러니 나도 그 말을 주워섬길 필요가 없다.


말은 이렇게 해도 엄마의 이런 말은 내게 아주 오랫동안 머문다. 큰 파장을 일으키며 나를 동요하게 한다. 왜 이런 말을 할까? 왜 엄마가 딸에게 이런 말을 할까? 나는 이런 말을 들어도 되는 사람인가? 이런 생각들에 골몰하게 한다. 




언젠가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하신 말을 떠올린다. "가족을 멀리하세요." 그 말을 들은 게 한두 번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새겨듣지 않고 흘려 넘겼다. 지금 생각하면 좀 웃기지만, 그땐 그게 으레 하는 말일 것이라 생각했다. 나 말고도 아주 많은 환자들이 정신과 진료실에서 이런 말을 들을 것이라 착각했다. 그래서 "산책 자주 하세요."만큼이나 울림 없는 권고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오늘에서야 그 말을 다시 떠올린다. 요 근래 엄마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걷기에 재미를 붙여 하루에 2만 보가 넘게 걸어 다닌다. 초반에는 저러고 나가서 또 취해서 들어오려니 했다. 이전엔 정말로 그랬으니까. 그러나 엄마가 맨 정신으로 나가서 맨 정신으로 돌아오는 감격스러운 나날들이 연이어 이어지자 마치 지난날들이 다 꿈같았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날들에 빠르게 익숙해졌다. 


그래서 진료실에서 말했던 계획을 내심 번복하기도 했다. 엄마를 알코올중독전문병원에 입원시키려 했지만 다른 가족의 반대에 부딪혀서 차라리 혼자 나가 살기로 했다는 계획이었다. 표정 변화가 크지 않은 의사 선생님이 그 말을 반가워하셨던 것 같다. 다시금 거리를 두는 것이 좋을 거라 하셨다. 그땐 선생님의 반응이 내 다짐을 더 굳혔다. 내가 이제 옳은 길로 가는구나 했다. 그러고 나서 물러터진 나로 돌아왔지만 이제 다시 맘을 다잡는다. 엄마가 퍼붓는 말들이 진실은 아니다. 나는 그런 말을 듣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소중하다.




언젠가 친구가 말했다. "네가 그런 말 들을 때 다른 가족들은 뭐 하는데?" 만취한 엄마가 폭언하는 대상은 주로 나다. 나는 차라리 이게 내 피해의식이나 주관적인 느낌에 불과하길 바랐다. 그러나 동생의 증언을 통해 진실이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편이 생긴 기분보단 가혹한 현실에 맨몸으로 내던져진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간에, 친구가 그 말을 하기 전까지는 다른 가족이 나를 보호해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유난스러운 오지랖은 나한테만 있었다. 이따금 나 아닌 가족이 피해자가 될 때면 나는 내 일처럼 맞서 그들을 보호했다. 그러나 그런 보호를 정작 나는 돌려받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이상하단 느낌을 조금도 못 받았다.


몇 달 전 알코올중독 관련 기관에 찾아가 도움을 구했다. 그때 내 가장 큰 동기는 내 동생이 나처럼 크지 않길 바라서였다. 그 앤 아직 어리니까 내가 더 노력하고 방법을 찾으면 내가 겪은 일들을 겪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상처 깊은 어른으로 자라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그곳에서 들은 말은, 내가 가족을 떠나는 것이 그들을 전부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전략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내가 막으려고 애를 쓰는 일들이 차라리 그들 안에서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면, 엄마가 심각한 알코올중독자이고 집중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내 주장이 비로소 받아들여질 거라는 게 그분의 주장이었다.


여기까지 쓰고 나서 나는 이 글이 몹시도 불친절하다는 걸 깨달았다. '알코올중독'이라는 표현만으로 아주 많은 것들이 전달되리라는 믿음은 순전히 내 착각이다. 인내심을 갖고 읽어주신 분이 계신다면 깊이 감사드린다. 몇 가지 에피소드와 사례를 더 끼워 넣는다면 훨씬 쉬운 글이 됐겠지만 나는 아직 수치심을 극복하지 못한 것 같다. 내가 한 말과 행동이 아닌데도 엄마가 느껴야 할 수치심을 내가 대신 느낀다. 그러나 내가 완전히 치유되고 성장해서 쓰는 글만큼이나 지금의 내 한계를 솔직히 드러낸 글도 나름의 가치가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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