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마 Jul 04. 2024

정신과 진료실에서도  남 걱정을 하는 사람

저는 괜찮으니까 다음 환자 봐주세요


자살을 계획하고 준비했다가 맘을 고쳐 정신과를 제 발로 다시 찾아갔을 때, 당시 정신과적 응급환자였던 나로 인해 진료가 많이 지체됐었다. 긴 상담 후에 의사 선생님이 시간을 할애해 우리 엄마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나를 입원시켜야 한다고 설득하기까지 하셨다. 그 사이 나는 다른 치료사 선생님께 인도돼 상담을 받고 있었고, 다시 진료실에 들어갔다 나오니 시간이 말도 안 되게 흘러있었다. 약을 처방받고 학생회관에 있는 약국에 들렀더니 이미 6시가 지난 시각이었고 약사 선생님께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그 부끄러움, 죄책감, 무언가 어긋났다는 불쾌감을 아직 잊을 수 없다. 진료실에서 나와 시계를 봤을 때, 나 때문에 여러 환자들이 힘들게 기다리다가 그중 누군가는 포기하고 집에 돌아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었다. 나 때문에 학생회관 약국이 아직 문을 닫지 못하고 있었단 사실을 깨달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나는 나 스스로에게 있어 세상 가장 열등하고 더러운 존재였다. 그래서 감히 나 아닌 누군가에게 폐를 끼친다는 게 가당치가 않았다. 그저 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했다. 내가 안 아팠으면 좋았겠단 생각을 했다. 그럼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지 않았을 테니까.




4년이 흘렀다. 사는 지역도 달라지고 다니는 병원도 달라졌지만, 여전히 정신과는 대기가 길다. 이따금 정신과 진료의 암묵적 특수성을 모르는 이들이 예약 없이 찾아와 초진을 보려고 하다가, 두 달 뒤에나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아연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걸 볼 때, 어쩐지 내가 정신과를 너무 오래 다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진료실 문이 유난히 길게 닫혀있다 열릴 때는, 4년 전의 나를 떠올린다. 진료실 문을 막 나선 환자에게 혹여 불편한 시선이 꽂히지 않도록 열렬히 딴청을 부린다. 속으로는 죽음만이 구원이 되는 순간들을 버티고 있는 그의 시간이 얼마나 끔찍하게 길고 지루할지를 생각한다. 징그럽게 이기적인 상상 속에서 그는 잠시 내 편이 되고, 내 외로움은 한 움큼 덜어진다.


대기환자가 유난히 많은 날에 기어이 내 이름이 불릴 때면, 나는 누구도 원하지 않고 바라지 않은 어떤 책임을 부여받은 채로 진료실 의자에 앉는다. '이제 난 좀 괜찮으니까 약만 그대로 타가야지' 하면서 최대한 의사와의 대화를 짧게 끝내야겠단 결심을 한다. 이유는 하나다. 내 차례가 빨리 끝나면 나 아닌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진료를 볼 수 있으니까. 나보다는 누군지도 모를 다른 누가 훨씬 소중하니까.




그러다가 가장 최근에는 생각이 또 바뀌었다. 무슨 일로 말미암아 생겨났는지 모를 생각이 싹트자마자 무럭무럭 자라나 깊이 뿌리를 내렸다. 그건 다름 아닌 '나는 특별하지 않다'라는 생각이었다. 숙련되고 자동화된 자학마저도 어떤 관점에서 보면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독특하고 비대한 자의식에서 비롯한 특별대우가 아닌가 싶었다. 그런 대우가 응당할 만큼 내가 유별나게 못나거나 죄지은 사람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스치자 어쩐지 민망해졌고, 나는 나를 '보통사람'의 범주에 넣는 것을 허락하게 됐다.


내가 무한히 작아져가던 지난날에는 병든 자의식을 키워갈수록 내 존재의 희미함이 만회될 줄 알았다. 결국 그건 착각이었다. 왜냐면 진실이 아니니까. '특별히' 못난 사람이 되기를 포기하고 뒷걸음질 치다 내려온 보통사람의 지위는 의외로 막강했다. 이제야 나는 내가 가끔 실수하고 잘못을 저질러도 괜찮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보통사람이니까. 누군가에게 욕먹고 미움받아도 내 세상이 단숨에 와르르 무너지진 않게 됐다. 역시나, 보통사람이니까.




그리하여 정신과 진료실에서도 남 걱정을 하던 나는, 이젠 별 생각이 없다. 생각이 없어서 달리 걱정도 없다. 머릿속이 덜 심오해지자 내 존재는 그보다 더 가벼워졌다. 정신과적으로 보다 건강해진 나는 조금 당황스러우리만치 허술하고, 단순하고, 동물적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 낯선 내 모습이 그럭저럭 맘에 든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맘에 들고 말고 자체도 그다지 생각해 본 바가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존감을 흉내 낸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