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소방관이 되겠다는 말 앞에서, 우리는 잠시멈췄다

남매가 아니라, 나의 첫 번째 어른이었다

by 이연


형제가 아니라, 나의 첫 번째 어른이었다

형제가 아니라, 나의 첫 번째 어른이었다


우리 큰오빠는 참 든든한 사람이다.


큰오빠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둘째 오빠를 임신했다.


작은오빠가 8개월 만에 조산으로 세상에 나오자,

엄마 아빠의 모든 관심은 작고 연약한 둘째에게 향했다고 한다.


그렇게 큰오빠는 1993년 1월생, 작은오빠는 같은 해 12월생.

같은 해에, 쌍둥이도 아닌 형제가 두 명 생긴 셈이다.


겨우 걷기 시작한 아이였지만,

동생에게 유모차를 양보하고 제 발로 걸었던 오빠는

그때부터 조용히,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다.


엄마는 그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조그마한 발로 성큼성큼 걷는 오빠를 보며,

그 아이가 너무도 크게 느껴졌다고.




부모님이 일에 가면

방이 무섭지 않았던 건,

그저 오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빠는 늘 의젓했다.


그게 원래 성향이었는지,

아니면 누군가를 위해 먼저 자라야 했던 상황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릴 적 울던 나를 안아주고,

눈물을 닦아주던 오빠의 손길은 어른처럼 다정했다.


아빠는 종종 말하곤 했다.

“아빠 없으면 큰오빠가 아빠야. 말 잘 들어야지.”

그래서였을까.

나는 오빠를 어른처럼 느끼며 자랐다.


오빠는 책을 좋아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늘 책을 펼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좋았다.


큰오빠의 중학교 입학식 날, 엄마는 그저 친구와 웃으며

“전교 1등 하면 이름 크게 나오겠네. 그 엄마 좋겠다.” 하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장면의 주인공이 우리 오빠였다.


슬라이드에 또렷이 뜬 오빠의 이름 석 자.

엄마는 아직도 그때 그 장면을 잊지 못한다.


오빠는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부모님에게 늘 한 방의 효도를 선물했다.


공부가 마냥 좋았던 줄 알았다.

하지만 오빠는 조용히 자기의 길을 준비하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연히 부산대 장학생이나 서울권 대학으로 진학할 줄 알았던 가족들 앞에, 오빠는 조용히 지원서를 꺼냈다.



소방관이 되고 싶어요.



모두가 놀랐다.

위험하고 험한 일이라는 걱정과

더 좋은 선택지가 많다는 아쉬움 사이에서 오빠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오빠는 부산의 국립대학교 소방학과에 수석 입학했고,

진짜로 소방관이 되었다.


엄마는 가능하면 행정직으로 남기를 바랐지만 오빠는 늘 현장에 있었다.

지리산 산악구조대로 발령이 났을 때,

나는 밤에 혼자 훈련 사진 올라온것을 보고 울었다.


가파른 계곡, 타오르는 불, 헬멧 속 그 얼굴.

그건 내 오빠였다.


무릎에 물이 차 수술도 했고,

그 뒤에도 그는 자신의 일을 너무 좋아해서 다시 현장으로 돌아갔다.


그때 알았다.

사랑하는 일을 한다는 게 어떤 얼굴인지.

자부심이 얼굴에 깃드는 사람을, 나는 알게 되었다.



오빠, 그 일이 그렇게 좋아?


어느 날, 조심스럽게 물었을 때 오빠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내 일을 사랑하면서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알아?

남들은 몰라줘도, 너랑 부모님이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너무 좋아.

무엇보다 누군가를 구해줄 수 있다는 거, 그거 꽤 멋지지 않아?”


나는 오빠의 그 웃음을 기억한다.

그 말투와, 그 눈빛.


그래서 나는 자주 별을 본다.

누구보다도 따뜻하고, 강하고, 멋진 그 사람이

다치지 않고 오래도록 그 일을 할 수 있기를.

나는 별에게 소원을 빈다.


그리고 늘 말한다.

“우리 큰오빠는 참 멋진 사람이라고.”


그리고 이 글을,
세상에서 가장 조용히 빛나는 사람에게 바친다.


누구보다 깊은 마음과 무거운 책임을 품고 살아가는,
나의 오빠에게.





당신을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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