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술이야기
어릴 적부터 아빠는 매일 저녁,
소주 한 병과 밥을 꼭 함께 드셨다.
술이 몸에 해롭다는 걸 알게 된 이후부터
나는 매번 말했다.
“술 좀 그만 마셔요.”
떼도 써보고, 화도 내봤지만 소용없었다.
아빠는 늘 그 한 병을 놓지 않았다.
어느 순간, 화도 나지 않았다.
가끔은 휘청이며 들어오는 모습에,
왜 저 고단한 몸으로 또 마시나 싶어
짜증보다 의문이 앞섰다.
엄마는 아빠의 모든 걸 좋아했지만,
그것 하나만큼은 정말 싫어했다.
“저렇게 자제 못할 만큼 마시는 건… 진짜 싫어.”
엄마가 싫다니까 나도 싫었다.
단순하고도 단단한 동맹이었다.
어릴 때 한 번은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아빠, 술은 왜 마셔?”
아빠는 웃으며 말했다.
“하루 종일 고된 일 끝나고 술 한 잔 마시면, 긴장이 풀려.
그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 술이 친구야.”
그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렇게 자란 우리 삼남매는
셋 다, 술과 담배와는 꽤 먼 삶을 택했다.
지긋지긋해서였을까.
아니면, 너무 익숙해서였을까.
그런데, 내가 직장인이 되고 나서야
그 말의 온기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매일 적응 안 되는 사람들과 마주하고,
버겁고 지치는 일을 반복하며 돌아오는 길.
아빠도 그랬겠구나.
그에게도, 오롯이 자기만을 위한 시간은
겨우 그 한 병의 술이었을 것이다.
가벼운 탈출, 무해한 위로.
그걸 또 하나의 버팀목이라 여긴 아빠의 마음을
나는, 이제야 조금 안다.
한 번은 내가 아빠의 건강검진을 모시고 간 적이 있다.
며칠을 잠 못 이루며 걱정하는 아빠를 보며
우린 당일에 장난처럼 말했다.
“이제 그만 친구랑 이별하실 시간이에요~”
"의사 선생님이 술 끊으라 하겠지~"
아빠는 우리의 장난도 안들릴정도로 긴장했는지
나의 손을 꼭 쥐고,
마치 초등학생처럼 따라왔다.
그 손, 분명 나를 늘 감싸던 손이었는데
그날은 내가 접수를 하고,
수납을 하고,
작은 글자가 안보이는 아빠의 눈을 대신해
나는 설문지를 하나하나 꼼꼼히 써드렸다.
검진을 마치고, 수면 내시경을 기다리며
아빠는 내내 굳은 얼굴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말했다.
“아빠 괜찮아. 그동안 술로 간을 소독해서 아주 깨끗할걸?”
말도 안 되는 농담이었지만,
아빠는 진심처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도 안 되는 위로 속에
우리 둘은 묘한 평화를 느꼈다.
그렇게 우리는,
의사 선생님 앞에서 진단을 받았다.
결과는 의외로 괜찮았다.
작은 담석 하나 발견되서 바로 제거 했고
나이에 맞게 줄이라는 권고뿐이었다.
그제야 아빠의 얼굴엔 햇살이 들었다.
오후 두 시쯤, 들어오는 화창한 창가 빛처럼.
“봐라, 아빠랑 술이 체질 맞다니까.”
나는 말없이 웃었다.
여전히 술을 좋아하는 아빠지만,
그 마음은 이제 나도 조금은 안다.
그리고 언젠가,
아빠가 그 친구를 조용히 내려놓을 날이 오더라도
그 옆엔 따뜻한 찻잔 하나
내가 내밀 수 있으면 좋겠다.
아빠,
난 언제나 곁에 있어요.
그러니 필요할 땐 말해주세요.
언제든지, 기다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