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빠 바보
우리아빠는 진짜 딸바보다.
바보 중의 바보.
딸 앞에선 늘 무장해제되는 사람이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이 사람, 나를 정말 많이 사랑하는구나.
내가 울면 마음이 미칠 듯이 아파했고,
내가 웃으면 세상이 다 자기 것처럼 기뻐했다.
무서움에 떨면 그 어둠을 대신 걸어줄 것 같았고,
아프면 제발 자기 아픔으로 바꿔달라 기도하던 사람.
그 눈빛을 보며 자랐다.
“공주야, 세상에서 네가 제일 예쁘다.
세상이 너를 위해 돌아가도, 이상할 게 없어.”
나는 그 사랑 속에서 아주 따뜻하게 자랐다.
어릴 적, 집엔 방이 하나뿐이었다.
우리는 꼭 붙어 자야했고,
나는 꼭 아빠 옆자리를 차지했다.
서로의 애착인형처럼.
아무리 힘든 하루였어도,
아빠와 엄마의 손을 양손에 꼭 쥐고
잠이 들던 그 순간은 내게 가장 포근한 밤이었다.
마치 꿈속에서 꿀이 흐르는 것처럼.
아빠는 지금도 가끔 내 머리를 말려준다.
수건을 조심스럽게 들어,
혹여나 아프지는 않을까
꽃을 다루듯
젖은 머리를 닦아주는 손길.
거칠고 투박한 손끝에서
늘 조용한 사랑이 묻어난다.
엄마는 웃으며 말한다.
"다 큰 애 머리를 왜 말려줘?"
그럴 때마다 아빠는 이야기한다.
"다 크긴 뭐가 다커! 아직 아기구만"
그럴 때마다
나는 아빠의 손길 하나로,
하루의 피곤이 물기처럼 말라간다.
초등학생 시절,
오후 6시 20분이면 골목에 나가 아빠의 차를 기다렸다.
멀리서 차가 보이면
전봇대 뒤에 숨었다가
"까꿍!" 하고 달려 나가던 그때.
아빠는 피곤한 얼굴로도 늘 웃었다.
내 손을 꼭 잡고 계단을 함께 올랐다.
그게 내 하루의 하이라이트였다.
아빠는 나를 제일 좋아하니까.
내 얼굴만 보면 힘이 날 거라 믿었다.
그래서 매일 기다렸다.
그 단순한 마음으로.
아빠는 내가 태어난 뒤로
몸을 쓰는 일을 시작하셨다.
나는 그 손과 발을 보며 자랐다.
굳은살로 뒤덮인 손, 갈라진 발뒤꿈치,
구두처럼 딱딱했던 그 발에서 피가 맺히기도 했다.
나는 작고 조그만 바가지에 따뜻한 물을 담고
녹차가루를 풀어
조심스럽게 발을 씻겨드렸다.
어린 나이에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바세린을 바르고, 비닐 팩을 씌우고, 양말을 신겨드리며
늘 같은 생각을 했다.
어떻게 해야 아빠의 고단함을 덜어줄 수 있을까.
그 생각이 내 하루의 숙제였다. `
그 투박한 손과 갈라진 발이
나에겐 세상에서 가장 성실한 사랑의 모양이었다.
이제 나는 어른이 되었다.
예전엔 아빠가 나를 지켜주는 것이 당연했는데,
이젠 그 어깨가 조금 기울어진 걸 본다.
그래서 더 자주 아빠를 생각한다.
어릴 땐 몰랐던 것들을
이제는 알 것 같다.
아빠는 술에 취하면 종종 우리에게 말하곤 했다.
“작은 집에서 살게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우린 안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큰 집,
아빠라는 하늘 아래서 자랐다는 걸.
햇살이 쏟아지든, 비가 내리든
그 하늘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그 하늘을 바라보며 자랐다.
그래서 언제나 따뜻했다.
이제는,
그 하늘이 지치지 않도록
내가 바람을 막아줄 차례다.
아빠는 말이 없지만,
그 눈빛 하나로 마음을 다 보여주던 사람이다.
그 사람을 위해,
조용히 나의 마음을 꺼내어 본다.
아빠,
나는 당신의 딸로 살아서 참 다행이에요.
당신의 삶이
나를 키운 햇살이었고,
바람이었고,
가장 든든한 집이였어요.
이제는,
제가 당신을 지켜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