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어떤 남자를 만나야 할까, 엄마?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오래된 대답

by 이연


요즘은 이혼이 흔한 시대다.
직장인들이 마음속에 사직서를 품고 사는 것처럼,
부부들도 이혼 서류를

가슴 어딘가에 넣고 살아가는 시대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결혼을 했을까?
왜, 아빠였을까?


나는 물었다.
“엄마는 왜 아빠를 선택했어?”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엄마 아니면, 아무도 그 사람이랑 결혼 안 해줄 것 같아서.”

그리고는 덧붙였다.
“장난이고… 아빠 눈빛이 너무 선했어.
좋은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지.”


외할아버지도 아빠를 무척 마음에 들어 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몇 번의 만남이 지나고, 두 사람은 결혼했다.
엄마는 말했다.
“그 뒤로는 오로지 아빠의 ‘선함’ 하나로 버텼지.”








내가 본 부모님의 부부 관계는,
좋을 때만 함께하는 관계가 아니었다.
무너지는 순간에도, 흔들릴 때에도
서로를 붙잡아주는 평생의 동반자였다.


아빠의 회사가 IMF로 무너졌을 때,
우리는 큰 집에서 단칸방으로 이사했다.
산 중턱, 공동 화장실이 있는 곳이었다.


그 무렵, 아빠는 많이 무너졌다.
잘 나가던 사장이 한순간에 모든 걸 잃었다.
돈 많을 때 그렇게 많던 친구들은
연락 한 통 없었다고 했다.


사람들은 엄마에게 말했다.
“아이들 데리고 떠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다시 시작해.”


하지만 엄마는 단호하게 말했다.

“힘들다고 사람 버리는 거 아니에요.”


우리는 1살, 4살, 5살.


엄마는 우리를 보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이 아이들 지켜야겠다.
그 마음 하나로, 다시 시작할 수 있었어.”


엄마는 혼자 벽지를 바르고,
페인트칠도 하며 단칸방을 조금씩 고쳐갔다.
그 작은 공간을
아이들이 머물 수 있는 집으로 만들었다.


그 공간이 사람 사는 곳처럼 변하자,
아빠가 돌아왔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매일 막노동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 자존심 강하던 아빠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엄마는 그때 겨우 서른셋,

아빠는 서른다섯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짠하다.
그 어린 나이에,
그 힘든 시간을
어떻게 그렇게 버텨냈을까.


그냥 포기할 수도 있었을 텐데.
엄마가 떠날 수도 있었고,
아빠가 무너진 채로 주저앉을 수도 있었는데.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서로를 놓지 않았고,
우리를 위해 끝까지 버텼다.


요즘 우리는
관계를 너무 쉽게 놓아버리지는 않나 싶다.
조금만 아파도, 흔들려도,
버티는 대신 등을 돌리는 일이 많아졌다.


사랑이란,
언제나 설레고 아름답기만 한 감정이 아니라
함께 무너지고도 다시 일어나는 마음이라는 걸
나는 부모님을 보며 배웠다.


결혼이란
한 사람의 밝은 면만을 보고 결정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사람이 흔들릴 때,
넘어질 때,
끝까지 옆을 지킬 수 있는지를 묻는 일이다.


엄마는 아빠의 선한 눈빛을 보고 결혼했다.
그 눈빛 하나로
가장 어두운 터널도 함께 지나왔다.






가끔은 나도 묻는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무너진 자리를 다시 붙들 수 있을까.


그 질문이 떠오를 때면
나는 단칸방의 벽지를 바르던 엄마를 떠올린다.
어린 세 아이를 바라보며
다시 시작할 용기를 낸 사람.


그것이, 내가 아는 가장 단단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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꺾이지 않던 마음이, 우리를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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