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숨 쉬듯 견뎌낸 시간들
누구나 자기만의 영화 속에 산다.
그리고 나는 그 영화의 조용한 주인공이었다.
자막도, 배경음도 없었다.
오직 나 혼자만 아는 감정들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어릴 적, 나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아이인 줄 알았다.
친구들은 모두 반짝이는 아파트에 살았고,
나는 작은 주택에 살았다.
"어디 살아?"
친구들의 물음에
괜히 움츠러들며
"주택"이라고 답하고는
조용히 땅만 바라봤다.
친구 아빠들이 데리러 온 차들은
언제나 번쩍였고,
내 눈엔 그 차들이
우리 아빠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8살쯤이었을까.
나는 알게 모르게
세상에 대한 자격지심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 마음을,
나는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엄마 아빠에게 들키면
그게 칼처럼 그들의 마음을 찌를까 봐
조용히 꾹, 눌러 담았다.
한 번은 친구의 생일 파티에서
그 아빠가 사다 준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세트를
함께 먹었다.
수많은 맛의 아이스크림을
실컷 먹은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작고 사소했지만,
내게는 축제 같은 날이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선
입을 꾹 다물었다.
자랑하고 싶었지만,
엄마 아빠는
어떻게든 나에게 다 해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마음을 더 무겁게 하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이 학원에 가는 시간,
나는 집에 혼자 남아
만화를 보며 웃고,
또 울었다.
학원이 어떤 곳인지도 몰랐지만,
“가고 싶다”는 말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들이
내 마음을 자라게 했다.
스무 살이 넘어,
세상을 가까이 들여다보니 알겠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던 사람들도
모두 자기만의 굴곡과 그림자를 안고 있었다.
넉넉해 보이던 아이,
밝고 당당하던 친구도,
말하지 못한 고단함을 품고 있었다.
세상에,
비극 없는 삶은 드물었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너무 아파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다 아플 수 있으니까.
조금은 아파도 괜찮다는 걸.
바닷속 잔잔한 파도처럼,
그 감정들을 천천히 흘려보내면 된다.
많이 아팠던 만큼,
나는 단단해졌다.
그 아픔이 나를 키웠고,
그 시간들이
내 이야기를 만들었다.
별거 아닐지도 모른다.
남들도 그렇게 견디며 산다.
우리도, 그렇게
다시 좋은 날을 향해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오늘은 너무 아파하지 말고,
그저
조금만 숨 쉬듯 견뎌내 봐.
당신의 이야기도
어딘가에서
조용히 빛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