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몇 번을 넘어져야, 덜 아플까요

어른이 되어도 괜찮지 않은 날들에 대하여

by 이연


어릴 적 나는 정말 자주 넘어졌다.


운동장에서, 골목길에서, 달리기 대회 도중에도.

넘어질 때마다 무릎은 까졌고, 피가 났다.


그런 상처는 눈에 보이니 다행이었다.

사람들도 물어봐줬고, 나도 울어도 되는 듯했다.


하지만 나중의 넘어짐들은 달랐다.

대학 입시에서, 면접장에서, 인간관계에서,

그리고 사랑 앞에서도 나는 수없이 넘어졌다.


피 한 방울 나지 않았지만, 훨씬 더 아팠다.

차라리 피가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울 수 있을 테니까.

사람들 앞에서 이상하지 않게 울 수 있을 테니까.


어른이 되면, 아프다고 말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상처가 곪아도, 터지지 못하고

조용히 마음속에서 썩어가는 느낌.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아빠 앞에서는 여전히 울 수 있었다.


울어도 괜찮다며,

말 없이 어깨를 내어주는 사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아 더 고마운 사람.


아빠는 늘 그렇게

내 울음의 안전한 공간이 되어주었다.


“소리 내서 울어라.
그래야 안에 있는 응어리가 터지고,
얼른 낫는다.”


그 말에,

나는 조용히 울 수 있었다.




현대 사회는

우리를 너무 일찍 어른답게 만들었다.


‘괜찮다’는 말이 인사처럼 굳어버린 세상에서

정작 우리는 괜찮지 않은 날이 더 많다.


우리가

10살이든, 30살이든, 60살이든, 90살이든

상관없다.


우리는 여전히 아플 수 있다.

넘어져도 울 수 있다.

그럴 자격이 있다.


감정에도 나이는 없다.


그저 다 자란 것처럼 보이는 몸 안에

작고 연약한 마음이 여전히 살아 있을 뿐이다.




요즘은 모두가 너무 잘 견디는 것처럼 보인다.

잘 사는 척, 잘 버티는 척,

아무 일 없다는 듯 살아가는 얼굴들 사이에서

나만 무너지는 것 같아 괜히 초조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넘어졌을 때, 일어나는 것보다

그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세상은 우리를 어른답게 살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아프고,

여전히 울고 싶고,

여전히 다 안 괜찮을 수 있다.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저, 인간답다는 증거일 뿐.




그래서 나는 요즘 생각한다.


“몇 번을 넘어져야, 덜 아플까”보다는

“넘어졌을 때, 누가 내 옆에 있어줄까”를.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늘 아빠를 떠올린다.


그 사람은,
내가 넘어졌을 때
말없이 손을 내밀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울지 말라는 말보다

울어도 괜찮다는 말이

더 깊은 위로가 되는 나이.


그렇게 나는,
한 번씩 울어가며
조금씩 어른이 되고 있다.


아직도 때때로 넘어지지만,
그래도 이제는 안다.


상처도,
천천히 흐르는 눈물도
모두 나를 자라게 해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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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요즘은 하루의 끝마다,

조용히 글을 쓰는 일이 참 행복합니다.


라이크 하나,

짧은 댓글 하나에도

제가 쓴 마음이 누군가에게 닿았다는 걸 느껴요.


그저 나누고 싶었던 마음을

한 줄 한 줄 꾹 눌러 담았을 뿐인데,

그 마음을 읽어주는 분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저는 이미 충분히 감사한 마음입니다.


당신의 하루가

이 글을 읽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조금 덜 무겁고, 조금 더 따뜻하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늘 당신의 평온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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