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살아도 괜찮은 삶을 위하여

에필로그

by 서옹

인생을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로 구분해 본다면 분명 나는 노년의 문턱에 서 있다. 연극에 비유하자면 3막 하나만을 남겨두고 있는 셈이다. 더 이상 물릴 수도 없어 지금의 삶이 더욱 소중하다.


지나 보낸 청년기와 장년기를 돌아보면 불안해하고 쫓기듯이 살았다는 느낌이 든다. 이길 수 없는 시간과 경쟁했다.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가진 걸 지키려 했고 더 인정받으려 노력했다.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기도 했고, 어쩔 수 없다며 현실과 타협했다.


그렇게 살아도 시행착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고통, 비굴, 자긍, 부끄러움, 모멸, 감사, 후회, 연민이 끊임없이 교차했다. 그중 고통이 최고였다. ‘인생은 고통이다’라는 말이 명제임을 확인했다. 그런 인생을 버티고 살아냈음을 스스로 대견해하며 합리화했다.


그러다 은퇴하기 몇 년 전, 여러 일을 겪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을 열심히 살아도 고통이고 걱정해도 고통을 피할 수 없는데 굳이 그렇게 살 필요가 있을까. 아니, 주위를 돌아보면서 조금은 느리게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나는 ‘느림보’ 기질을 타고났다. 출근이나 약속을 준비할라치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음식을 느리게 먹는다. 낯선 상황을 마주하면 반응도 느리다. 말조차 느려 말다툼에서 이기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니 예측되는 것들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내가 정한 루틴대로 살려고 했다.


은퇴해서 의무 독서 의무 산책이 아닌, 읽고 싶을 때 읽고 걷고 싶을 때 걸었다. 가급적 루틴도 만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일상의 삶에 문제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잇몸이 말썽부리고 아들과 갈등이 생겼다. 매일매일 부딪치고 해결해야 하는 일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덜 조급해하니 여유가 생겨서일까. 고통은 줄어든 듯 느껴졌다. 느리게 문제를 보니 원인을 여러모로 생각하게 되고 스스로 성찰도 하게 만들어 오히려 전보다 빨리 문제가 해결되는 듯했다. 은퇴해서 육체적으로 편해서라기보다는 마음의 여유와 ‘자기 돌아봄(성찰(省察))’이 젊었을 때 꿈꾸었던 그림을 그리게 해줬고 글을 쓰게 해줬다. 좋아하는 일을 느긋하게 하니 자유로움이 더불어 들어왔다.


내 기질대로 느리게 살아도 괜찮은 것이다. 현역 시절 끊임없이 목표만을 추구하며 살면서 남은 건 허전함뿐이었는데, 이제 김영민도 원한 ‘목적이 없어도 되는 삶’을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도 될 것만 같다.


“나는 오랫동안 목적 없는 삶을 원해왔다. 왜냐하면 나는 목적보다는 삶을 원하므로. 목적을 위해 삶을 희생하기 싫으므로. 목적은 결국 삶을 배신하기 마련이므로.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해보자. 대개 기대만큼 기쁘지 않다. 허무가 엄습한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제 뭐 하지? 목적 달성에 실패했다고 해보자. 허무가 엄습한다. 그것 봐, 해내지 못했잖아. 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았지?” (김영민 지음,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사회평론, 2022, 288쪽)


“목적 없는 삶을 바란다고 하면, 누워서 ‘꿀 빨겠다’는 말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큰 오해다. 쉬는 일도 쉽지 않은 것이 인생 아니던가. 소극적으로 쉬면 안 된다. 적극적으로 쉬어야 쉬어진다. 악착같이 쉬고 최선을 다해 설렁설렁 살아야 한다. 목적 없는 삶도 마찬가지다. 최선을 다해야 목적 없이 살 수 있다.” (같은 책, 291쪽)


그래서다. 이제는 나대로, 나답게 사는 삶을 놓치고 싶지 않다. 인생의 마지막 3막만을 남겨둔 나에게 더 이상 기회도 없다. 김영민의 표현을 빌려 다짐한다. 최선을 다해 목적 없이 ‘느리게’ 살 것이다. 느리고 자유로운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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